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냥저냥 ㅏ랑 Oct 27. 2024

만약 우리의 손에 피를 묻힐 수밖에 없다면

양지훈 개인전 《다르게 총 쏘기》 비평


(아래는 2023년 12월 12일부터 12월 31일까지 상업화랑 을지로에서 열린 양지훈의 개인전 《다르게 총 쏘기》에서 배포되었던 팸플릿에 실린 원고를 일부 수정 및 보완한 글이다.)






이번 전시 준비를 위한 마지막 미팅에서, 나는 대뜸 양지훈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왜 작가님 본인의 모습을 자꾸 작품에 노출하시는 건지 궁금해요. 〈테이큰〉에서도 잠깐이지만 본인 모습으로 시작하시잖아요.” 그러자 양지훈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어떤 사람은 ‘이거 나르시스트 아냐?’라고 당연히 욕할 수도 있겠는데, (웃음) 사실 저는 카메라에 찍히는 거 정말 싫어하거든요. (…) 사람들을 촬영하고 그걸로 작품을 만들어 전시를 하는 저도 그 사람들의 부담, 그러니까 이미지가 되고 퍼진다는 부담을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마 당신께서도 이 말을 무리 없이 받아들일 것이다. 말하자면 이미지에 대한 윤리적 태도.


하지만 좀 더 신중히 생각해보면, 이런 말이 종종 수사학적으로 무람없이 쓰이기도 한다는 것 역시 떠오를 것이다. 창작 과정에서 도입된 어떤 구속적인 조건을 그 자체로 윤리적 형식으로 치환하려는 작가나 평자들. 한때 그들 사이에 있었던 나로서는 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미간이 절로 찌푸려지는데, 왜냐하면 여기서 윤리라는 낱말은 그 강력함으로 인해 이중으로, 즉 특정한 형식을 다른 것들보다 우위에 올려놓으려는 오만한 물신주의와, 그 형식을 사용했다는 것만으로 ‘중요한’ 문제를 건드렸다 자신하는 게으른 나르시시즘에 의해 오용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양지훈 역시 이런 오용의 궤에 속한 작가일까? 물론 그랬다면 애초에 이 글이 쓰이지 않았을 게다. 나는 양지훈이 “이미지가 되고 퍼진다는 부담”을 직접적으로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에 신경이 쓰인다. 그게 왜 피사체에게 부담이 될까. 또 왜 그런 부담을 원천 차단하는 대신 자신도 그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고 생각한 걸까. 어쩌면 그의 작업들 속에서 답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먼저 작가 자신의 부계 쪽 할아버지인 양서옥을 축 삼은 두 작업을 살펴보자. 16살이었던 양서옥은 제주 4.3 사건을 겪었다. 그런 그가 약 70년 후인 2019년에 자신의 경험을 늦게나마 기사화했을 때야 양지훈은 그 경험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촬영 장비와 함께 무작정 할아버지가 계신 제주도로 내려간 양지훈은 (작가노트에 서술된 바에 따르자면) 한편으론 “기사에 언급된 파편적인 지명으로 할아버지가 올랐던 피난길을 그려보”며 “변화된 모습으로 남아있는 할아버지의 타의적 이동 경로를 따라가 보”고, 다른 한편으론 “무작정 할아버지를 찾아”가 4.3 때 얘기를 해달라며 “자신도 카메라 앵글 안에서 같이 술을 마시며 조금씩 대화”를 이어가면서 두 개의 작업을 만들어갔다. 전자는 사진 작업인 〈서옥에서〉이고, 후자는 영상 작업인 〈포수〉이다.


[그림 1] <누운오름>, 2020
[그림 2] 서옥의 집, 2021


새삼스럽고 우둔한 질문 하나, 왜 양지훈은 두 개의 작업을 해야만 했을까?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왜 하나의 폭력적인 경험에 대해 두 개의 접근법이 필요했(다고 생각했)던 걸까? 〈서옥에서〉를 이루는 개개의 사진들을 보고 있노라면 4.3의 흔적을 ‘더 잘’ 보여주려는 태도 같은 걸 여기서 찾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가령 곤포 사일리지들이 고즈넉하게 늘어서 있는 누운오름의 사진[그림 1]과, 양서옥의 어머니가 늦둥이 아들 “창옥의 우는 소리가 굴 밖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빈 젖을 계속 물”렸던 곳이 바로 여기 누운오름이란 사실은 곧장 중첩되는가? 70년 전 양서옥의 피난길과 거기서 일어난 사건들을 가능한 한 세세하게 정리하고, 그에 따라 북마크를 찍어 놓은 구글 지도 화면을 캡쳐해놓기도 했음에도, 아니 어쩌면 당연하게도, 양서옥이 걷고 보았던 길과 양지훈이 걷고 보았던 길은 쉬이 겹쳐지지 않는다. 그 사이에 모습이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그 길을 걷고 보는 데 있어 두 사람이 놓인 조건이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종종 등장하는 불안정한 구도나 기이하게 프레임에서 잘려 나간 신체들[그림 2]은 마치 장소 자체에선 더 이상 발견할 수 없는 이러한 시차(時差/視差)를 어떻게든 육화해보려는 시도로 느껴지기도 한다. (당연하지만 참사의 재현에 있어 이런 지표적(indexical) 불일치의 전략에도 계보는 있어서, 가령 사진에서라면 우리는 마사 로슬러의 『세 작품』(1981)이나 질 페레스의 『텔렉스 이란』(1983) 등 떠올릴 수 있다)


한편 양서옥이 직접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포수〉에서, 우리는 맨 처음과 마지막에 그가 4.3 때 얘기는 하기 싫다고 말하는 것을 듣는다. 정작 그 사이의 러닝타임을 채우는 건 대부분 그의 4.3 때 경험담이지만, 한편으론 여러 노이즈들이 종종 끼어들어 이를 방해하기도 한다. 카메라 노출값을 조절하는 게 선명히 보이는 화면, 양지훈 자신 혹은 개가 의도치 않게 말을 가로막는 순간, 다소 뜬금없이 또 번잡하게 끼어드는 인서트 컷… 양지훈은 “할아버지 말을 정확히 들었다가 이걸 증명할 수 있어야 돼.”라는 양서옥의 주문을 완전히 받아들이지도 완전히 거부하지도 않는 미묘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어째서 그럴까?


[그림 3]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대답을 구한다. 사담이 길게 나오기 시작하자 편집점이 눈에 띄게 이어지더니 곧 양지훈이 직접 그에게 주문한다. “할아버지, 4.3 때 얘기해주시면 안 돼요?”[그림 3] 그리고 이어지는 거절. 앞서 말했듯 이런 거절은 맨 처음과 마지막에 수미상관처럼 배치되어 있다. 이쯤에서 피어오르는 외설적인 상상. 어쩌면 지금까지 자연스럽게 나온 줄 알았던 양서옥의 경험담은 모두 이런 주문의 반복 속에서 겨우겨우 나왔던 건 아닐까? 즉 그의 경험담은 전부 투명하게 기술된 게 아니라, 계속 양지훈에 의해 어느 정도 매개되었던 게 아닐까? 양서옥의 발화를 방해하던 노이즈들은 이 지점에서 달리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와 우리 사이의 매개 속에서 발생한 시차를 폭로하려는 제스쳐로 말이다.


〈서옥에서〉와 〈포수〉에서 드러난 두 겹의 시차는 이 자리에서 매우 중요한데, 왜냐하면 양지훈의 관심이 보다 핍진하고 구체적인 재현에 있지 않다는 것을 뚜렷이 증명해주기 때문이다. 그는 제주 4.3 사건을 ‘지금 여기’에서 다루는 일에 얽힌 문제를 (앙드레 바쟁의 비유를 맘대로 가져다 쓰자면) 한편으론 (사진을 통해) 원심적으로, 다른 한편으론 (영상을 통해) 구심적으로 다루었다. 그런데 어떤 문제? 재현의 윤리라는 문제. 단언컨대 이야말로 양지훈에게 진정 문제다운 문제라 해야 할 것이다. 새삼스레 재현의 윤리라니! 누군가는 땀을 훔치고 누군가는 콧방귀를 뀌리라. 그게 이 포스트 SNS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문제란 말인가? 이 질문에 양지훈은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일 터이다. 다만 이때의 윤리란 그 사건을 재현할 수 있냐 없냐, 혹은 재현해도 괜찮냐 아니냐 따위의 구린내 나는 푸닥거리가 아님을 먼저 분명히 해야겠다.


〈서옥에서〉의 으스스함이 상이한 풍경을 담은 사진들을 하나로 묶는 담론이 다름아닌 (비가시적인) 피난길이란 데서 기인하듯, 또 〈포수〉의 탁월함이 ‘당시 제주에서 살아남으려면 제주도민을 학살한 자들 사이에 섞여야 했다’는 4.3 사건의 아포리아를 여러 노이즈로써 ‘내가 말하려면/내 말이 기록되기 위해선 폭력적인 매개의 구도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재현의 아포리아와 과감하게 겹친다는 데서 기인하듯, 여기서의 윤리란 (이미지를 제작하고 유포하는 일로서) 재현 자체가 늘 근본적으로 폭력에 연루되어 있다는 외설적인 사실에 대한 것이다. 즉 이미지의 가능성의 조건으로서 폭력. (본 개인전에선 전시되지 않았으나, 불법 경로에서 한 번 ‘걸러진’ 영상 콘텐츠들을 다룬 사진 작업 〈dox〉 역시 이 맥락에서 몹시 흥미로운 태도를 견지한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작가로서 양지훈의 중핵이 바로 이 작업에 있다고 보는 편이다.)


[그림 4]

이를 더욱 전면화하는 것은 2채널 영상작업 〈테이큰〉으로, 여기서 양지훈은 (포스트 인터넷 아트에서 클리셰가 된 화면 캡쳐 영상을 바탕으로) 이미지와 폭력적 사건 사이의 관계에 대한 변증법적 반전의 아포리즘을 연이어 직설적으로 던진다. “사진을 위해 산불이 있다.”, “전쟁은 권력으로부터 이미지를 해방한다.”[그림 4], ”해방된 이미지를 위하여 풍경이 만들어졌다.”… 물론 우리에겐 멀리로는 “서로를 예속시키는 부단한 일련의 이미지들이 우리를 대신한다”고 말한 장 뤽 고다르가, 가까이로는 “이미지에 참여함은 곧 이 모든 것에 참여함을 뜻한다”고 말한 히토 슈타이얼이 있으므로 이런 아포리즘 자체는 아주 생경하거나 충격적인 것은 아니다. 하나 〈테이큰〉에서 진정 우리의 주의를 끄는 것은, 실제로 자신이 사는 지역 근처에서 일었던 산불을 포착하려 양지훈이 들고 나갔던 카메라에 찍힌 시퀀스 숏-POV가 이 아포리즘과 함께 나란히 스크리닝 된다는 사실이다. 양지훈은 지나치게 솔직해 보일 만큼 스스로의 연루를 자꾸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종종 들리는 그의 거친 호흡은 계속되는 언덕배기를 올라서가 아니라 포토제닉한 순간을 마주한다는 흥분 때문이 아닐까 하는 헛된 상상도 문득 들었다) 그러면서 아포리즘과 POV는 서로에 대한 코멘트가 되고, “사진을 위해 산불이 있다”는 말은 더 없는 무게감을 갖는 것이다.


그렇다면 양지훈이 문제다운 문제로서 재현의 윤리를 어떻게 돌파하(려)는지 이젠 당신께도 분명히 보이리라. 더 잘 재현하는 게 아니라 재현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폭력(성)을 직시하는 것. 그러면서도 폭력을 마냥 ‘비극적’으로 수긍하려 들지도, 마냥 ‘영웅적’으로 기각하려 들지도 않으며 그 폭력으로 인해 재현의 시도가 곤란을 겪는 지점에서 시작하고 이를 다름 아닌 재현으로써 육화할 방법을 찾는 것. 그리고 그런 폭력에 연루된 자신을 운명의 아이러니한 꼭두각시가 아니라 우스꽝스러운 광대로 여기는 것. 달리 말해 양지훈이 “이미지가 되고 퍼진다는 부담”을 감수하는 것은 무엇보다 재현의 윤리라는 문제를 마냥 ‘윤리적 딜레마’로 승화하길 저지하고 (지극히 물질적으로) 책임의 영역에 묶어 두기 위함인 게다. 재현의 윤리를 ‘정치적인 것’으로 밀고 나가는 소수의 첨예한 작업은 재현에 대한 양자택일을 단호히 거절할 때 시작된다는 것을, 양지훈은 분명히 알고 있다. 자신 있게 말하건대, 내가 양지훈을 지지하고 그의 앞길에 기대를 거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써야지 뭐 어떡해>를 이제 그만 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