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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저냥 ㅏ랑 Oct 14. 2024

<써야지 뭐 어떡해>를 이제 그만 씀


2023년 9월 8일부터 웹진 《채널예스》에 격주로 연재하던 칼럼 <써야지 뭐 어떡해>가 2024년 10월 11일자로 완결됐다. 나는 여기서 (《채널예스》 측의 협조 덕분에) 내 관심사들을 자유롭게 혹은 마구잡이로 오가는 짧은 글 24편을 발표했으며, (독자 여러분의 호응 덕분에) 예정된 기간을 한참 넘겨 약 1년 동안 연재를 계속했다. (물론 내 고질적인 문제인 마감 지각도 여기에 한몫 했다...) 짧은 글을 짧은 간격 속에서 지속적으로 새로 쓰고 공개하는 일이 아직은 좀 벅찬 지라 여러 글을 다소 불충분하게 썼고, 그래서 돌아보면 몹시 부끄럽고 또 민망하다. 하지만 동시에 나의 번잡한 생각들을 좀 더 정리하고 남들과 나눌 기회를 (입에 풀칠도 하면서) 분에 넘치게 받았다는 점에서, 내게는 첫 연재란 타이틀을 넘어 아주 의미있는 지면이었다. 아래는 지금까지 발표된 순으로 나열한 각 칼럼들의 링크이다.


























... 이 중 어떤 글은 팟캐스트 <영화 카페, 카페크리틱>의 녹음용 리뷰를 약간 고친 것이, 어떤 글은 행 중인 작업의 일부를 다듬어 선공개한 것이지만, 대부분은 론장에 있어  말의 필요 여부를 판단해 서둘러 쓴 것들이다. 가령 「토리야마 아키라, 혹은 고독한 외계인」은 한국에서 이 이질적인 만화가 토리야마 아키라를 제대로 맵핑하여 애도할 사람이 얼마 없다는 위기감에 쓰기 시작했었다. 허무맹랑한 자의식 과잉으로 읽힐 수도 있기에 분명히 하자면, 여기서의 필요 여부란 '나만 할 수 있다'가 아니라 '나라도 해야겠다'에 가깝다. (연재 제목을 다시금 음미해주시기 바란다) 게다가, 오히려 그런 자의식(과 그에 걸맞은 지식)이 없다면 글을 쓰고 읽는 재미도 없지 않겠는가? 


하여튼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스스로가 참 욕심  또 그걸 잘 절제하지 못한 생각이 든다.  자리에서도 말했었지만, 내가 이리 다양한 분야에 대해 글을 쓴 것은 결코 내가 남들보다 똑똑했기 때문이 아니다. 한국에 나보다 똑똑하거나 정보 습득력이 높거나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은 당연히 적지 않다. (가령 같은 시기에 채널예스에서 연재된 김지승의 <끔찍하게 민감한 질문들>을 읽으며 '난 왜 이런 글을 못 쓰지'라는 생각에 자꾸만 한숨을 내쉬었더랜다) 오히려 나는 몹시 속물적이고 참을성 없는 성격의 필자이기 때문에, 쓰고 싶은 주제와 분야에 대해 서둘러 말을 얹은 것이다.  장점이자 단 이 성격이 <써야지 뭐 어떡해>를 어찌어찌 이어가게 만들었다. 이 다음에 다시 칼럼을 장기 연재할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는 단점만 좀 죽이며 글을 쓰고 싶다. 그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적당히 잘 마무리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결국 쓰지 못한 주제들이 자꾸 아른거린다. 침착맨, 웨스 앤더슨, '시체관극'과 '관크',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히트맨>, 하랄트 얘너의 『늑대의 시간』, 『인생샷 뒤의 여자들』과 『빈틈없이 자연스럽게』... 당장은 이렇게 패를 잠깐 노출하는 것으로 만족해야겠지만, 언젠가 이들에 대해 간접적으로라도 말을 얹을 수 있으면 좋겠다. 아니, 그럴 수 있도록 직접 노력을 해야겠지. 때로는 순전히 남들에게 영업하고 싶어 휘리릭 쓴 글이 엄청나게 많이 읽혀 놀라기도 했고, 때로는 야심을 갖고서 열심히 쓴 글이 별로 읽히지 않아 아쉬워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이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일희일비하지 않는 법을 조금씩 배웠다. 기대하지 않되 기다리는 것, 어쩌면 그것이 글쟁이로서 가져야 할 주요 덕목이 아닐까? 물론 생계라는 문제는 그것을 정말 열심히 방해하곤 하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올해 내내 끈질기게 읽고 있는 한 책의 구절을 옮겨둔다. <써야지 뭐 어떡해>의 전반을 가로지르는 문제의식과 은밀히 궤를 같이하는 구절을.


그렇다면 하나로부터 여러 가지가 생겨났으니

하나의 죽음을 하느님과 유대인이 다 좋아하고

그로 인해 땅은 진동하고 하늘은 열렸도다.

의로운 복수가 또다시 의로운 법정으로부터

이루어졌다 함이 이제 바야흐로 그대에게

그다지 까다롭게 보이지 않으리라.


(단테 알리기에리, 최민순 역[2019년 판, 일부 수정],『신곡』 천국편, 제7곡 46~51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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