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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2024 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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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저냥 ㅏ랑 Dec 08. 2024

형상과 배경에 글리치를 끼얹자

(커버 이미지) 문유소, 〈지복〉, 2024


12월 6일, 미술비평 플랫폼 abs의 새 자유 기고 코너 '액자들'이 출범했다. abs》 측에 따르면 '액자들'은 "형식적, 주제적, 기타 등등의 제약으로 발표하지 못한 시선과 목소리를 선보이는 자유 기고 코너"로서, "새로운 이름과 얼굴을 계(系)에 소개하고 예술, 제도, 비평의 관계를 대하는 창의적이고 유연한 동시대적 태도를 발굴하고자" 한단다. (모집 분야나 기고 방법 등 구체적인 사항은 2025년 1월 30일에 공개된다고 하니 관심 있는 분은 참고하시라) 감사하게도 abs》 측에서 내게 이 코너의 첫 단추를 꿸 기회를 내주셨고, 나는 지난 6월 갤러리 인 HQ에서 진행된 화가 문유소의 개인전 《새해》의 리뷰 「형상과 배경에 글리치를 끼얹자」를 기고했다. 문유소의 회화를 볼 때마다 받았던 기이한 느낌들을 《새해》를 경유 한 번 파고들어 본 글로, 당신께서도 짐작하시듯 그 키워드는 '형상과 배경' 그리고 '글리치'이다. 이전에 미술 계열 전시에 대해 글을 몇 번 발표한 적이 있긴 하지만 이른바 파인 아트, 그것도 회화 작업에 대한 글을 비평으로서 각잡고 쓴 것은 처음인지라 개인적으로 감회가 남다르다. 귀한 기회를 주신 (《abs》의 멤버인) 황재민 평론가님과 문유소 작가님, 그리고 이들과 만날 다리를 놔준 임다울 작가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전한다. 아래의 링크를 통해 글을 읽을 있다.








"당연하게도, 거의 대부분의 회화는 밑에서부터 레이어를 쌓아 올리는 식으로 만들어진다. 먼저 그려진 것을 나중에 덧칠한 것이 뒤덮든, 아니면 먼저 그려진 것이 전반적인 그림의 배경이 되든, 붓과 물감을 통해 그려진 것들이 이루는 각각의 레이어가 시간 속에서 공간에 겹치거나 뒤섞이면서 하나의 작품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 자신이 인스타그램에 작업 과정을 게시하기도 했듯) 문유소의 회화 역시 그렇게 만들어진다. 한데 정작 그의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자꾸 정반대의 느낌을 받게 된다. 레이어를 쌓아 올린 게 아니라, 완만한 산에 비가 내리듯 레이어와 물감을 밑으로 흘러가게 한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가령 〈그 어디도 아닌 곳 3〉(2024)의 경우 거칠고 두터운 마띠에르가 화폭을 거의 점령하고 있으나, 아래를 잘 보면 은근한 삼각형 속에 상대적으로 완만한 부분이 드러난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수직으로 흐르던 물감이 그 위를 가로지르기에 이 삼각형의 존속은 아슬아슬해 보이지만 말이다. 다시 ‘형상과 배경’을 끌어오자면, 이 삼각형은 수줍게 모습을 드러낸 배경일 것이다. 배경답지 못한 배경, 즉 형상의 작용에 의해 물들고 뒤덮이는 배경. 여기서도 레이어들은 쌓인 게 아니라 흘러내리며 중첩된 듯하다. 이쯤에서 처음으로 돌아가건대, 형상의 아래를 향한 작용이 배경을 변형시키고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문유소의 캔버스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닐까?"


"처음 전시를 다 보고 나온 직후 문유소가 간단한 소감을 물어봤을 때, 나는 다수의 그림에서 글리치 아트에 가까운 감각을 느꼈다고 말했다. 물감의 물성을 아주 도드라지게 활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붓 터치가 퍽 거칠면서도 일정하고 세밀한 모양새를 띄어 마치 자글거리고 윤곽이 늘어진 디지털 노이즈 화면처럼 보인다는 얘기였다. (사실 이는 《Ring》(2024)과 《fe, yi》(2024)에 전시됐던 문유소의 작품들에도 해당되는 진술이다) 한데 놀랍게도 문유소는 작업에 있어 글리치 아트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으며, 심지어 글리치 아트가 무엇인지 잠깐은 이해하지 못하기도 하였다. (...) 그래, 확실히 그는 동시대 한국의 정희민이나 조효리처럼 디지털 이미지의 컨벤션을 직접적으로 회화에 끌어들여 대결하는 화가가 아니다. 하지만 이런 느낌을 밀고 나갔을 때 문유소의 작업에 대해 납득할 수 있는 지점들이 분명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짐작하자면, 이러한 형식적 유사성은 형상성에 대한 문유소의 방법론과 글리치 이미지의 특이성 사이에 서로 공명하는 지점이 있기 때문일 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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