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월간 미스터리 잡지 《미스테리아》54호(2024년 11월호)의 연재 기획VILLAIN코너에 두번째 글을 실었다. 제목은 「『라모의 조카』라는 예언」으로, 나는 여기서 드디 디드로의 저 유명한 소설을'악의 재현'에 있어 근대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구축한 예술작품으로 다시 볼 것을 제안해보았다. 개인적으론 (가장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인지라) 글을 쓰는 것 자체보다는 여러 논점들을 축약하거나 제거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썼고, 그런 만큼 곱씹을수록 아쉬우면서도 열의가 다시 생기는 글이다. 이후의 연재와 책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 지에 대해서는, 아마 이 글을 읽으면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지난 첫번째 에세이 「악, 악당, 부정적인 것의 삼각형」에서 나는 우리가 악을 재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주요 모티프로 ‘악’, ‘악당’, ‘부정적인 것’ 세 가지를 제안했다. 그리고 이들이 갈수록 “서로에게서 멀어지고 있으며 또한 악을 재현하는 방식들도 그에 따라 변모하고 있다고”도 썼다. 즉 저 세 모티프들은 원래 하나로 뭉쳐 있던 게 아니라 서로 중층적이고도 역동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었으나, 종래의 인류에겐 더 친숙하고 보편적으로 뭉친 형태로서 주로 받아들여졌으며, 이에 있어 사고의 광범위한 전환은 비교적 최근에야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 시작점을 어디로 잡아야 할까? 나는 19세기 초 유럽이 적절하다고 본다. 물론 여기 다 쓸 수 없는 무수한 변화가 그 시공 속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주 중요한 책 한 권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라모는 그 이전의 셰익스피어의 마녀들이나 이아고보다 기묘하고, 또한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사드의 변태들과 견줄 만큼 불온한 악당이었는데, 이는 라모의 악행이 저들보다 더 끔찍하고 거대했기 때문은 아니다(적어도 라모는 저들처럼 흉계로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아넣거나 자기 딸을 구워 먹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또한 디드로가 역사상 유례가 없는 사건을 라모를 통해 창출했기 때문도 아니다. ‘악의 재현’이란 문제계에 있어 라모의 기묘함과 불온함은, 다름 아니라 저 위대한 악당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매달렸던 개별적인 문제들을 디드로가 한데 종합했다는 점에서 생성된다."
"앞서 나는 ‘악의 재현’에 대한 사고의 전환이 비교적 최근인 19세기에야 광범위하게 일어났다고 썼다. 그리고 당신께서 짐작하듯 라모는 미학에 있어 이를 가능케 한 기념비적인 존재다. 달리 말해 드니 디드로는 저 세 모티프가 하나의 캐릭터 혹은 집단에 있어 단단히 결부되지 않아도 악을 적확하게 재현할 수 있음을 이 『라모의 조카』에서 통렬하고도 탁월하게 증명한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단일한 내면이 없고, 내면이 없어 언제나 복수의 정체성을 갖고 있으며, 또 그런 스스로의 성질을 너무나 잘 아는 라모를 통해. 아무래도 이 자체로는 잘 설명이 안 될 것 같으니 조금만 더 풀어 써보도록 하겠다."
"하지만 라모/디드로가 직접 이런 변화를 촉발했다고, 즉 이후의 무수한 예술가들이 라모/디드로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말해선 안 된다(나는 줄곧 『라모의 조카』를 ‘예언’이라고 썼다). 분명 『라모의 조카』는 당시 유럽 지식인들에게 인지도가 꽤 있는 소설이었으나, 19세기 전반에 걸쳐 천천히 발굴되고 새로 유통되었듯 아주 널리 읽히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 신기한 것은 그럼에도 에드거 앨런 포나 헨리 푸젤리처럼 『라모의 조카』를 읽어보지 못했을 이들 역시 라모/디드로가 제기한 고찰의 연장선에서 악을 탐구했다는 것이다(이에 대해선 다음 에세이에서 좀더 논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