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2024년 6~7월에 진행된 만화비평모임 <하기오의 뒷모습 pt.2>에서 『포의 일족』애장판 1권에 대한 기조 발제를 위해 글이다.)
아마 <포의 일족>의 내용이나 장르적 성격에 대해선 다른 분들이 충분한 얘기를 해주실 터이니, 저는 다소 우둔한 질문을 던져보고 싶습니다. <포의 일족>은 왜 이리 읽기 어려울까요? 몇몇 멤버분들이 말씀해 주신 것처럼, 당대의 인기작이었던 것 치고 <포의 일족>은 쉽게 읽히지 않습니다. 순전히 옛날 만화라서, 요즈음의 작법이나 연출과는 차이가 있는 작품이라 그런 걸까요? 하지만 같은 1972년에 연재를 시작했던 나가이 고의 <데빌맨>, 테즈카 오사무의 <붓다>, 이케다 리요코의 <베르사유의 장미> 등 당시의 초인기작들을 함께 떠올려보면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아요. 한 번 아래의 페이지들을 보고 오시죠.
이렇게 예시를 들어보았는데요, 저 세 작품과 비교하면 <포의 일족>은 분명 가독성의 층위에서 훨씬 난해해 보입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서사나 은유를 갖고 있는 건 전혀 아닌데도 말이에요. 그러고 보니 김**님이 번역해 주신 쿠로카와 소의 에세이 「세계의 연못에서」에는 다음의 구절이 있습니다. "[<메쉬>의] 이야기가 20대 하기오의 장편과 달리 오래된 기존 만화의 스타일에 가까운 '명료함'으로 돌아가고 있다". 1949년생인 하기오 모토에게 있어 20대를 보낸 시절은 1970년대입니다. 이 점에서 우리가 느끼는 난해함이 더 명료해지는 것 같습니다. 옛날 만화라서 안 읽히는 게 아니라, <포의 일족> 자체가 당대에도 잘 안 읽히는 만화로 독자들에게 받아들여졌다는 거죠. 그렇다면 여타의 의미화는 일단 제쳐두고, 이 난해함이 어디서 기인하는 건지를 내재적으로 파악하고 규명하려는 시도가 먼저 필요하지 않을까요.
첫 번째 가설입니다. 좀 포괄적으로 말해서, 어느 정도 발전한 이후의 전 세계 (출판) 만화는 오랫동안 Z자 독법을 가져갔습니다. 독자의 시선이 지그재그의 Z자로 (혹은 일본 만화의 경우엔 뒤집힌 Z자로) 자연스럽게 움직이게끔 하는 걸 이르는 말인데요, <포의 일족>을 포함한 하기오 모토의 70년대 작품들은 그보다 시선이 더 미시적이고 복잡하게 움직이도록 칸을 설계하곤 해요. (87쪽, 268쪽) 앞서 예시로 든 <베르사유의 장미>의 한 페이지처럼 Z자 독법과는 다른 방식을 쓰는 만화들도 있긴 했지만 ―가령 <블랙 잭>을 비롯한 후기 테즈카 오사무 작품들― , 대부분은 일회성 시도에 그쳤고, 그걸 떠나 <포의 일족>은 Z자 독법을 기반 삼되 한 페이지 안에서 시선이 그보다 더 많이, 더 역동적이고 복잡하게 움직이도록 설계를 해놨죠. 일반적인 만화 독자가 여기서 피로를 느끼는 건 당연힌 일인 것 같습니다.
두 번째 가설입니다. 첫 번째에서 이어지는 얘기이기도 한데, <포의 일족>에선 한 페이지에 (서사와 무관하기도 한) 미시적인 정보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제시되곤 해요. (73쪽, 208쪽) 한 페이지에 쓰이는 칸의 수가 동시대의 다른 인기작들에 비해 평균적으로 더 많은데(<포의 일족>는 평균 8~9개로, <데빌맨>과 <베르사유의 장미>는 평균 7~8개입니다), 칸의 수를 비슷하게 쓰곤 하는 후대의 <기생수>가 한 장면을 잘게 나누어 보여준 후 널찍한 칸을 이어 붙여 시각적인 긴장을 이완시키는 것과도 달리(이다음에 보시겠습니다), 여기서 하기오는 1권 내내 비슷한 리듬으로 칸을 구성합니다. 서사를 충실히 구성하지도 않는, 밀도 높고 촘촘한 리듬을 따라가는 독자는 기진맥진해질 수밖에 없죠.
달리 말해, 여기서 하기오 모토는 흘러가듯이 읽는 독법을 거의 차단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읽기에 더더욱 피곤하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거죠. 원래 보편적으로 쓰이던 독법도 쓰지 못하고, 아주 잘게 쪼개진 리듬을 쭉 쫓아가야 하니 말이에요. 그리고 여기에 당연히 이어져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이렇게 가독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연출을 어떻게 정당화할 것인가?
우리가 흔히 어떤 작품을 볼 때 찬사로 쓰곤 하는 말이 있죠. '시간 가는 줄 몰랐어!' 그런데 <포의 일족>은 정반대입니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 같아!'가 적합한 작품이죠. <포의 일족>은 앞에서 말한 이유들 때문에 실제로 읽는 속도도 느려지고, 그래서 (디제시스 내적인 시간보다는) 작품 자체의 픽션적인 시간이 더디게 흘러간다는 느낌을 줍니다. 그런데 작품 안에서도 이런 대사들이 종종 나오지 않던가요? 시간의 흐름에 대한 대사들 말이에요. 「포의 일족」에서 열렬히 구애하는 앨런에게 "앨런! 우리랑 같이 멀리 갈 테야?... 시간을 넘어서... 멀리 갈 테야?"라고 에둘러 말하는 메리벨, 「글렌스미스의 일기」에서 "산다는 건 아주 고달픈 일이라서, 묵묵히 하루하루 살면 되는데도 가끔은 너무 힘들기 때문에... 약한 사람은, 특히나 약한 사람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꾸는 거란다."라며 간접적으로 고백하는 엘리자베스, 「리델♥숲 속에서」에서 "나는 해마다 나이를 먹었지만 그들은 그대로였다. 그래서 날 버린 거야. 나만 나이를 먹어서."라고 뒤늦게 깨닫는 리델라...
이쯤에서 하기오 모토가 평생 매달린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정체된 시간'이라는 것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죠. 저는 이전의 <하기오의 뒷모습 pt.1>에서 발표했던 한 기조 발제문에서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좀 길게 발췌해 볼게요.
"하기오 모토는 적어도 시간에 대해서라면 안티 휴머니스트예요. 하기오가 인간에 관심이 없다는 얘기가 아니라, 인간들의 유한성과 주관성을 믿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하기오에게 중요한 건 거대한 시간, 자연으로서 시간이 인간이 체감하는 시간과 무관히 현존하며 종종 인간 주위에 우글거린다는 사태인 것 같아요. (...) 이런 생각이 듭니다. 만화가 하기오 모토의 '논리'란, 우리네 삶을 찢어 발기는 무시무시하고도 무심한 바탕으로서 시간이 있다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 속을 살아가는 인간 주체들의 몸짓이 마냥 시간에 짓이겨지는 게 아니라 바로 그 시간 속을 살아가며, 심지어는 (<라기니>의 사례가 보여주듯) 그 주체들 없이는 바탕으로서 시간도 제 역학을 갖거나 마냥 지속될 수는 없다는 상호순환의 프로세스가 아닐까 하는 것이요. 그리고 어쩌면, 이 상호순환야말로 하기오 모토가 쭉 열정적으로 만화를 그리게 만드는 근본문제 중 하나가 아닐까요?"
하기오가 굳이 이렇게 만들기도 읽기도 어려운 연출을 여기서 한 것은, 어쩌면 시간의 이러한 잔혹함을 형식의 층위에서 육화해보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요? 흔히 쓰이는 비평적 수사대로 '내용과 형식의 일치'를 철저하게 추구하기 위해 말입니다. 또 이런 생각도 듭니다. 하기오 모토는 뱀파이어 만화를 그리고 싶었던 게 아니라, 뱀파이어 설정에 따라오는 시간의 잔혹함을 만화로 구현하고 싶었던 거라고 말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