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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도둑일기』, 미학의 문제로서 저작권

by 그냥저냥 ㅏ랑


(아래는 2025년 3월 29일 출간된 독립영화비평전문지 《독립영화》 54호에 실린 원고 옮긴 글다.)






원래 책이란 것은 한 권만 따로 읽을 때보다 두 권을 같이 읽을 때 그 세부를 제대로 더듬을 수 있다. 그 더듬는 방식이 조화든 충돌이든 말이다. 가령 린다 콜리의 『총, 선, 펜』과 앨리슨 케이퍼의 『페미니스트, 퀴어, 불구』를 함께 읽으면 여성과 법 사이의 불균형적인 관계를 더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존 벨라미 포스터의 『마르크스의 생태학』과 브뤼노 라투르의 『존재양식의 탐구』를 함께 읽으면 ‘자연’과 ‘경제’의 역학에 대한 동시대의 논증들을 좀 더 꼼꼼히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2024년에 국내 출간된 (지난 해 한국어로 쓰이고 출간된 영화 관련 서적 중 가장 중요한) 한민수의 『영화도둑일기』와 (프란츠 카프카 타계 100주년을 기념하여 국내 (번역-)출간된 여러 서적들 중 단연 눈에 띄는) 베냐민 발린트의 『카프카의 마지막 소송』을 함께 읽을 때, 우리는 저작권이 그저 ‘작품의 주인이 누구인가’ 수준을 넘어선 심각한 딜레마를 몇 겹으로 내포한 문제임을 실감하게 된다.


예컨대 다음의 구절들. “한국에서 공식적인 경로로 서비스되고 있는 상당수의 고전 영화들과 몇몇 아트하우스 영화들의 경우에, 정품과 불법 복제판(리핑판)의 경계가 기실 희미하다는 것이다.”(『영화도둑일기』, 18쪽), “카프카를 (독일어를 지키는 유대인 청지기로서, 그리고 나치에 희생당했을 시점이 오기 전에 사망한 유대인으로서) 다시 독일의 울타리 안으로 데려온다는 것은 과거의 도덕적 오점을 제거하는 방법이자 추락한 위신을 회복하는 방법이며, 히틀러와 괴벨스의 허무주의적 악다구니로 오염되기 전의 독일어를 되찾아올 방법이라는 인식이 있었던 듯하다. 카프카의 마지막 소송에 양념이 되어줄 또 하나의 아이러니―자기 비난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작가를 자기변명의 수단으로 이용한다는―가 여기 감추어져 있다.”(『카프카의 마지막 소송』, 240쪽) 그런데 저작권에 관한 일반적 담론은 왜 자꾸 창작자와 수용자 사이에 있는 기업이나 사회를 누락하거나 단순화하는가? 어쩌면 이는 쟁점을 도덕화하여 논의 자체를 저지하려는 야비한 수법이 아닐까?


이렇듯 저작권은 창작, 유포/유통, 감상 등에 얽힌 여러 이해관계와 맞닿아 있으며, 심지어 그것을 수호하겠다며 나서는 이들에 의해 제멋대로 뒤죽박죽 활용되기도 하는 것이다. 하나 아직까지 우리에겐 크게 두 가지 길만이 길로 여겨지는 듯하다. 그저 저작권을 준수하거나, 그저 저작권을 우습게 여기거나. (허구한 날 '자본주의의 폐해'를 입에 올리면서 정작 온라인 해적질에 대해서는 선을 긋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구도는 특히 인터넷이 자연화된 오늘날에 더더욱 의심스러워진다. 적지 않은 독자들이 『영화도둑일기』를 온라인 해적으로서의 시네필 문화에 대한 민속지로만 이해하곤 하나, 나는 (적어도 이 자리에선) 이 책을 디지털 문화경제의 근본적 (불)균형성에 대한 모험록으로 이해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


1995년 인터넷의 완전한 상용화 이후 여기에 법적·사회적 제도를 적용하려는 시도는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지만, (저작권의 기본 문제인) 작품의 활용에 있어 합법과 불법/기성과 대안/공유와 착취/보존과 훼손이 서로 분리 불가능한 수준으로 뒤얽히고 또 보충하는 인터넷 공간은 그런 시도를 계속 미꾸라지처럼 벗어난다. 당장 우리 시대의 보편성을 점유한 '커뮤니티'인 유튜브만 따져도 그렇지 않은가? 해적질이 엄연한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면(혹은 그 사실이 이제야 수면 위에 드러났다면), 그것은 인터넷을 기반 삼은 디지털 문화경제가 그 근간에 있어 온라인 해적질과 긴밀한 유착 관계로써 구성되었기 때문일 터이다. 때로는 해적질의 의지를 자극하는 프로토콜을 퍼트리면서, 때로는 해적질을 통해 은밀하게 이익과 발판을 취하면서. 『영화도둑일기』는 그런 정세의 한 측면이 이 나라의 ‘해적왕’의 언어로써 (종종 지나칠 정도로 솔직하게) 육화된 모험적인 수기인 게다. 이 맥락에서 다음의 일화를 함께 읽어보자.


하지만 사실 내가 카라가르가[전설적인 비공개 영화 트래커 사이트 - 인용자]에 처음 발을 들여 놓았을 때 가장 궁금했던 것은, '이곳에 한국인이 있을까?'였다. (...) 그러다 우연히 토렌트 클라이언트의 피어 목록을 보다가 한국의 아이피 주소를 사용 중인 피어를 하나 발견했다. (...) 카라가르가 같은 경우는 닉네임만 알아내면 그 유저가 다운로드한 영화 내역을 쭉 확인할 수 있어서 사실상 누가 어떤 영화를 다운로드하는지에 대한 프라이버시는 전혀 없는 세계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 한국 아이피의 유저가 어떤 분일지 궁금해 받아 간 영화들을 쭉 살펴보았다. 2021년 한국에서 모 영화제가 열리기 2~3달 전에 해당 영화제의 상영작들을 쭉 몰아서 받아간 기록이 있어 그 영화제의 프로그래머분이 사용하는 계정이겠구나 추정할 수 있었다. (...) 이는 해적질 사이트의 대안적인 큐레이션이라고 할 만한 것이 실제 영화제의 프로그래밍에 까지 알게 모르게 기여한 사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카라가르가 같은 사이트들이 어둠의 페스티벌 스코프[영화계 ‘내부자’들을 위한 비공개 VOD 사이트 - 인용자]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영화도둑일기』, 31~32쪽.)


더군다나 ChatGPT, 캔바(Canva), 수노(Suno) 같은 생성형 AI 사이트들은 저작권에 대한 담론을 온라인 해적질 이상으로 난해하게 만들고 있다. AI를 교육하기 위한 소스(Source)로 쓸 수 있는 ‘작품’의 범위는 어디까지 인가? (이 질문은 현재 수많은 소송에서 첨예하게 다뤄지고 있다) 또 AI의 결과물에서 우리는 소스들의 흔적을 어떻게 모두 발견하고 따질 수 있는가? (영향과 표절을 온전히 분간하고 분리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그리고 명령어를 제시한 인간 유저와 AI 모두가 나름대로 애쓰며 나온 결과물의 ‘저작권자’는 누구여야 하는가? (오늘날 AI 기술과 씨름하는 많은 예술가들이 이 질문을 내재하고 있다) 즉 저작권의 근간에는 가성비의 논리도 있지만 정치적 정당성의 논리도 있으며 또한 (그럼으로서) 미학의 성질을 건드리는 논리도 있는 것이다. 나는 '지식'의 입장에 선 자라면 실정법 내지 상식으로서의 저작권을 응당 실천적으로 의심하거나 거부해야 한다는 생각이지만, 이에 대해 이 자리에서 자세한 얘기를 풀고 논박하는 것은 분명 무리이리라. 그러니 여기서는 '논쟁을 위한 서설' 격으로, 근현대 예술사에서 저작권 담론에 관한 흥미로운 세 가지 사례를 여러분께 소개해보려 한다.


"The Yellow Kid", 27 December 1896.


첫번째는 옐로우 키드(Yellow Kid)의 사례다. 1896~1897년 미국 뉴욕의 주요 언론들 사이에선 아주 치졸한 싸움이 벌어졌는데, 이 중심에는 한 캐릭터가 있었다. 그 이름은 옐로우 키드로, 훗날 근대 만화의 시초로 흔히 여겨지는 금자탑격의 작품(군) 〈옐로우 키드〉의 주인공이다. (참고로 연재 당시 제목이 빈번히 바뀌었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그냥 〈옐로우 키드〉로 통칭한다) 신문의 교육성에 대한 믿음과 ‘재미없는 신문은 죄악’이란 믿음을 (다소 모순적으로) 함께 가졌던 «뉴욕 월드»의 사주 조지프 퓰리처, 그리고 미국-스페인 전쟁을 야기한 원흉으로 꼽히는 «뉴욕 저널»의 사주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는 신문의 유명세에 있어 서로 치열히 경쟁을 벌이며 정보, 표현, 편집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저널리즘을 더더욱 자극적이고 흥미진진하게 바꾸어 갔다.


그러던 와중 «뉴욕 월드»에서 1895년부터 연재된 리처드 F. 아웃코트의 일러스트 겸 초기 코믹 스트립 시리즈 〈호건 골목 아래(Down in Hogan's Alley)〉가 소년 캐릭터 옐로우 키드와 함께 (한때는 순전히 옐로우 키드를 보기 위해 «뉴욕 월드»를 구매하는 독자들이 다수였을 정도로) 압도적인 인기를 끌자, 허스트는 직접 지시를 내렸다. 아웃코트를 갑자기 «뉴욕 저널»로 스카우트하고, 심지어 아웃코트로 하여금 옐로우 키드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계속 그리도록 만든 것이다. 상도덕 따위 그의 안중에는 없었다. 하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아서, 이를 안 퓰리처는 조지 럭스라는 화가에게 〈호건 골목 아래〉를 더 그리게끔 시켰을 뿐만 아니라, «뉴욕 월드»가 미리 따낸 옐로우 키드의 특허권을 내세우며 다시금 옐로우 키드를 〈호건 골목 아래〉에 출연시키도록 하였다. 요컨대 한 인기 캐릭터가 같은 시기에 두 개의 신문에서 서로 다른 작가에 의해 등장한 것이다.


직접적인 소송으로 비화되진 않았으나 이미 개싸움이 된 경쟁은 (바로 이 때문에 옐로우 키드의 인기가 사그라든) 1897년까지 약 1년 동안 이어졌으며, 당시 다른 신문 «뉴욕 프레스»의 어빈 워드맨은 이 우스운 스캔들을 두고 '황색 언론(yellow press)'이라 부르며 비꼬았다. 그래, 바로 여기서 오늘날의 용어 ‘옐로우 저널리즘’이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쟁의 중심에 있던 옐로우 키드는, (100여 년 후 한국에서 홍은영의 〈그리스 로마 신화〉가 그런 것처럼) 저작권이 창작자로부터 유리될 때 일어나는 파국의 대표 사례로도 기억되게 되었다. 당연한 결과다.


한데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저작권이 창작자 개인으로부터 유리되는 게 반드시 나쁜 일일까? 보다 정확히, 작품에 대한 창작자의 통제력과 저작권이 일치하는 게 늘 당연한 일일까? 나는 지금 슈퍼맨과 배트맨에 있어 DC 코믹스가 지닌 지적재산권, 혹은 〈드래곤볼〉에 있어 버독같은 애니메이션 오리지널 캐릭터들이 원작 만화의 세계관에 ‘역수입’된 것을 떠올리고 있다. 세월이 흘러 하나의 작품이 여러 미디어믹스로 확장 및 분열되면서 수용자들 사이에 (흔히 2차 창작의 방식으로) 지지를 얻던 파생작품에 대해, 저작권의 유리는 '원본'의 지위를 법적·상징적으로 상속하는 반전의 결과를 내기도 하지 않는가? 그리고 그럼으로서 캐릭터의 힘을 일찍 소진시킨 옐로우 키드의 사례와 달리 캐릭터(를 포함한 작품)의 힘을 갱신할 여지도 있지 않은가? 물론 여기서 중요한 건 (원 창작자와 2차 창작 사이의 암묵적 동조 관계나, 원 창작자에 대한 관리 회사의 경제적·명예적 보상처럼) 저작권이 작가로부터 구체적으로 어떻게 유리되었느냐일 테지만 말이다. 우리는 작품의 생명력과 작가의 생명력이 별개라는 것, 그리고 때로는 서로가 서로를 차용하며 생명력을 얻기도 한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어야한다'는 명제가 그 자체로 윤리적/미학적 당위성을 지녔는지 한 번쯤 의심해봐도 좋을 테다.


오슨 웰스, 〈오셀로 만들기(Filming Othello, 1978)〉 중


두 번째는 오슨 웰스(Orson Welles)의 사례다. 흔히 ‘그’ 〈시민 케인〉의 창작자로 유명한 영화감독 웰스는 한편으론 미국 영화사에서 저작권에 관해 가장 격렬한 수난을 평생, 아니 죽고 나서도 겪은 기구한 인물인데, 〈위대한 앰버슨가〉, 〈상하이에서 온 여인〉, 〈악의 손길〉 등 그가 할리우드 자본을 통해 만든 장편 영화들이 그의 의도와 무관한 편집본으로 개봉해 그의 절망을 부추겼다는 것은 이젠 거의 상식이며, 사후에는 그의 저작권이 딸 비어트리스 웰스와, 생애 후반의 연인이자 예술적 동지 오야 코다르에게 나누어져 두 사람이 다투면서 ―사실 정확히는 비어트리스가 거의 훼방을 놓으면서― 작품의 복원과 공개가 무기한 연기되기도 했다. 자신의 작품을 자신의 통제 하에 두기 위해 끊임없이 동분서주한, 그러나 끝없이 실패한 웰스. 이런 면에서 그는 확실히 세간에서 말하는 ‘저주받은 작가’에 속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미국의 저명한 영화평론가 조너선 로젠봄은 『오슨 웰스 발견하기(Discovering Orson Welles)』에서 이런 견해가 웰스를 실패자로만 여기는 후대의 이중적 신화화(영화 산업에 해악을 끼친 허황된 감독, 아니면 당대인들보다 너무 앞서간 선구적인 감독)에 따른 것이라며 단호히 고개를 젓는다. 넓게 보면 그가 활동한 40~50년대 할리우드에선 감독이 최종편집권을 쥐는 게 외려 이례적인 일이었으며, 애초에 웰스는 투자 자본과 상관없이 대부분의 자기 영화에 있어 다양한 판본을 만들었다는 게다. 달리 말해 웰스는 환경에 있어서 만이 아니라 자기 기질적으로도 작품의 완전한 통제와는 거리가 먼 예술가였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웰스 자신의 영화에 줄곧 이와 비슷한 사건들이 여러 층위에서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어떤 사건? 주인공이 세계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는 사건. 당장 그의 데뷔작이자 대표작인 〈시민 케인〉을 떠올려 보라. 이야기에 있어서는 세상 모든 것을 자기 통제 하에 두려 한 광폭한 남성이 정신적 추락을 향해 질주하고, 플롯에 있어서는 직접 말할 수 없는 주인공에게서 발언권을 빼앗은 이들이 각자의 입장과 방식으로 주인공의 삶을 재구성하며, 미장센에 있어서는 (흔히 딥 포커스 촬영으로 수식되는) 주인공의 의지를 넘어서는 몸짓과 사물이 도처에 우글거리는 이 영화부터 이미 웰스는 주인공의 주인됨을 모든 층위에서 박탈하는 잔혹한 세계관을 드러내지 않았던가? 그의 영화들이 뒤로 갈수록 눈에 띄게 그로테스크한 외양을 띈 것은 아마 이런 세계관 때문이리라. 하여 마지막(이자 미완의) 장편 영화인 〈바람의 저편〉에 이르면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을 차용해) 영화의 모든 이미지가 캐릭터들에 의해 채집된 것이라는 설정을 과격하게 밀어붙이는 수준까지 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웰스는 한편으론 자기 영화의 통제를 가능한 한 추구한 동시에 다른 한편으론 그러한 통제의 불가능성을 줄곧 외쳐왔다고 말이다. 요컨대 저작권을 희구하는 동시에 경멸하기. 언뜻 모순적인 태도로 비칠 수도 있겠지만, 요즈음에 이를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적극적으로 체화하는 창작자들이 적지 않다는 걸 떠올리면 아주 그렇지도 않을 터이다. (가령 2003년에 자신의 정규 앨범 〈The Black Album〉의 리믹스 열풍이 불자 이를 즐기고 또 촉진하기도 했던 제이 지는 어떤가?) 아니, 어쩌면 이런 태도는 자신이 ‘기술 복제 가능성 시대의 예술작품’을 다룬다는 걸 인지하는 이들의 전유물일지도 모르겠다. “완성된 영화는 아주 많은 영상과 그 영상들을 몽타주한 것 중에서 편집자가 취사선택한 것으로 만들어진다. (…) 영화의 이러한 수정 가능성은 영화가 영원성이라는 가치를 철저히 포기하는 것과 관련한다.”(발터 벤야민, 신우승 옮김 「기술적 복제가 가능한 시대의 예술작품(제2판)」, 15~16쪽) 물론 벤야민은 후대의 인간들이 그런 포기의 방식으로 (이른바 인플루언싱으로서의) 가치를 추구할 줄은 예상치 못했겠지만 말이다. 이 점에서 웰스의 영화는 여전히 우리에게 교훈적이다.


키메코나


세번째는 카오스 라운지(カオス*ラウンジ)의 사례다. 이는 본디 일본의 창작 그림 커뮤니티 사이트 픽시브(Pixiv)에서의 활동을 계기로 화가 후지시로 우소가 주축이 되어 (당시에는 포스트 포퍼스라는 이름으로) 결성된, 간간이 디지털 아트로 전시회에 참여하던 오타쿠 미술가들의 모임이었으나, 2010년 미술평론가 쿠로세 요헤이와 미술가 우메자와 카즈키가 여기에 가입하고 나아가 쿠로세가 대표가 되어 모임 방향을 주도하면서 곧 공격적인 동시대미술 콜렉티브로 바뀌었다. 이후 카오스 라운지는 인터넷 상에 떠돌아다니는 온갖 이미지들을 활용해 팝 아트의 방법으로 오타쿠 콘텐츠를 탈구축하는 작업을 주로 발표했는데, 2011년경에 갑자기 연달아 추문에 휩싸이게 되었다. 자신의 콜라주 아트를 픽시브와 (또 다른 창작 그림 커뮤니티 사이트인) 후타바 채널에 게재하던 우메자와 카즈키가 (늘 그랬듯이) 한 캐릭터의 이미지를 자신의 작업에 사용했다가 다른 오타쿠 유저들로부터 신고를 당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이 캐릭터의 이름은 키메코나(キメこな, 키메라 코나타의 준말)로, 후타바 채널에서 TVA 〈러키☆스타〉(2007)의 주인공 이즈미 코나타를 바탕삼아 (하츠네 미쿠나 카나메 마도카 같은) 여타의 유명 여자 캐릭터들의 신체 일부분을 여러 유저들이 돌아가며 짜집기해 만든, 거창하게 말하자면 공동(2차)창작의 결실이었다. 그런데 우메자와가 어떤 키메코나 일러스트를 자신의 작업에 그대로 차용하고 또 이를 고스란히 «미술 수첩»이란 잡지에 게재한 것이 알려지자 유저들이 대대적으로 반발한 것이다. 분노에 찬 이들은 곧 카오스 라운지가 (산업과 동인을 불문한) 오타쿠 콘텐츠에서 추출한 이미지, 초국적 대기업의 상표, 물을 맞거나 짓밟힌 캐릭터 그래픽 프린트, 확대 및 컬러 프린트된 천엔 지폐 등 판권/저작권에 대한 허가를 받지 않았을 작품들을 판매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에 후타바 채널을 넘어 픽시브, 2ch, 트위터 등에서도 카오스 라운지를 성토하는 분위기가 고조되었고, '이게 무슨 현대미술이냐' 혹은 '현대미술은 다 이렇게 조잡한 쓰레기냐'라는 발언도 속출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건 다름아닌 당시 대표 쿠로세 요헤이로, 온라인 토크에서 이 추문에 해명과 반박을 하다가 "인터넷에 있는 모든 화상은 다 써버립니다. 아트니까 사과하지 않아요. 불만이 있으면 재판에서."라고 경솔히 말을 뱉어버린 것이었다. 겉잡을 수 없이 악화된 여론 속에서 그는 한참 동안 협박과 조롱과 욕을 먹어야만 했다. 게다가 픽시브 내 저작권에 저촉되는 일러스트 중 우메자와의 작품만이 계속 신고를 당해도 큰 제재가 없(어보였)었다는 점에서, 픽시브와 카오스 라운지는 양자 사이의 부정한 유착 관계를 의심받기까지 했다. 이에 후타바 채널에서 건너온 유저들이 '#現代アート(#현대아트)' 태그를 달고 무수한 양의 자작 합성 일러스트를 픽시브에 투고하는 테러를 감행하였고, 결국 우메자와를 비롯한 카오스 라운지 주요 멤버들은 해명도 진상 조사도 없이 억지로 서둘러 픽시브를 탈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10년도 더 전에 일어난 소동이고, 카오스 라운지는 이 이후에도 (저작권에 관한 고소 없이) 일본 미술계의 중요한 콜렉티브로 인정받으며 활동하긴 했으나, 당시의 살벌한 여론은 아직까지 이어져 그들을 여전히 옭아매고 있다. (멤버들은 최근의 인터뷰에서도 이 소동에 대한 질문을 받고 있다) 대체 무엇이 그토록 문제였을까? 카오스 라운지 측은 자신들의 작업이 코미케(일본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동인-오타쿠 행사) 부스와 동류이며 저작권 관념에 있어서는 그보다 좀 더 과감했을 뿐이라고 말하는 반면, '일반' 오타쿠 유저들은 판권/저작권의 소유자에 대한 눈치와 예의가 없었다는 점에서 저들의 작업이 코미케 부스와 전혀 달랐다고 말한다. 여기서 나는 논점을 다소 이탈해, 카오스 라운지의 작업 방법에 대해 따져보고 싶다. 저작권에 저촉되는 작업도 괜찮고, 원 창작자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는 작업도 괜찮다. 하지만 최근의 미술에 있어 그런 작업은 대개 (흔히 ‘내부’에서 얘기되듯) 저작권 담론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소스가 된 작품을 기존의 맥락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이전에, 작품을 손 쉽게 다른 창작자의 소유물로 만들어 버리진 않는가? 즉 대기업식 횡포를 현대-동시대미술의 방법으로 수행하는 것은 아닌가?


앞선 오슨 웰스의 사례에 이어서 생각해보자. '자아'나 '창조' 같은 개념들을 해체하려는 급진적 시도들이 20세기 이래 미술사의 굵은 줄기였단 사실은 어느새 인가 '교양'의 영역에 들어섰다. 하나 한편으로 이 시도들은 (크레딧과 몸값을 의식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자본의 타율성에 의해 자꾸만 '자아'나 '창조'로 호명되거나 거기에 기대야 하는 딜레마에 노출되었으며, 나아가선 미술가(나 큐레이터)들이 직접 이 딜레마를 교활하게 활용해 명성을 얻기도 하였다. (가령 제프 쿤스의 추한 구상을 더욱 추한 조각으로 만들기 위해 동원되고 강판되는 조수들을 떠올려 보라) '자아'를 해체하기 위해 동원한 형식이 오히려 과잉된 '자아'를 창출하고 말았달까? 카오스 라운지의 사례가 대중과 동시대미술 사이의 간극이 충돌한 사건이라고 한다면, 거기에는 저작권과 미술의 제도 사이의 불균형한 관계에 대한 역풍의 성격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2023년 앤디 워홀의 프린스 초상화가 저작권 침해 판결을 받았듯, 그 역풍은 2010년대 이래 끊임없이 불고 있다) 물론 카오스 라운지가 미술 콜렉티브로서 실패했다거나 책임을 져야한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저작권에 대한 동시대미술의 근본적인 한계가 당시 카오스 라운지의 작업 방법에 내재되어 있었고, 그것이 오타쿠 문화의 '역린'을 건드렸다고 하는 것이 옳으리라. 그리고 카오스 라운지 측이 정말 과감해지고 싶었다면, 오타쿠 문화만이 아닌 동시대미술의 저작권 관념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어야 할 테다.


… 이렇듯 저작권에 대한 논의는 지난하고 고되다. 그리고 나날이 더더욱 지난하고 고되질 것이다. 이 세 가지 사례들을 가로지른 당신께 이 말이 실재적인 무게감의 언어로 받아들여 지기를 조심스레 바라본다. 그리고 감히 덧붙이자면, 나는 광의의 해적질을 지지하나 그것이 사적 독점과 재화 거래를 위한 전단계로 취급되는 순간에는 우리 모두 강하게, 아주 강하게 의심하고 저항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러니 아무래도 마무리는 『영화도둑일기』의 한 구절로 하는 게 좋겠다. 앞의 말과 공명하며 (적어도 내게는) 이 책에서 가장 감동적인, 그러나 널리 제대로 읽히진 않은 듯한 구절로 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이 모든 일들을 재밌어서 한다. 영화 자막을 번역하고, 성배 영화들을 찾아다니고, 그걸 일부 사람들과 공유하고. 마니 파버의 말을 빌리자면, “이보다 더 값진 일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다.(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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