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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험미 Oct 16. 2024

조지아의 떠돌이 개들은 사랑스럽다

조지아의 개 팔자가 부러운 일인

여행 첫날 아침 일찍 트빌리시 자유 광장에 처음 나왔을 때, 우리를 반긴 것은 수많은 대형견이었다.


실제로 보면 더 큰 느낌이다
여행 첫날 나오자마자 마주한 떠돌이들
횡단보도 앞에 앉아 신호를 기다리는 떠돌이 개/ 한쪽 귀에 칩이 달려있다.
맥도널드 앞을 어슬렁거리는 떠돌이

그야말로 길거리 떠돌이 개들인데, 개들이 전부 웬만한 리트리버 정도의 크기다.

어슬렁어슬렁, 조지아 어디를 가도 어슬렁거리는 큰 개들을 볼 수 있다.


첫날 트빌리시 워킹 투어를 하며 가이드에게 물어보았고, 거리의 개들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떠돌이 개들은 한쪽 귀에 전부 칩이 달려있다.

정부에서 관리한다는 표식이라고 한다.

개들은 전부 중성화되었고, 모든 개를 정부에서 따로 모아 관리할 예산이 없기 때문에 그냥 길에 풀어놓고 관리(?)한다는 설명이었다.

그냥 알아서 자생하게 두는 것이다.


무뚝뚝하지만 무정하진 않은 조지아 인들이 먹이도 많이 준다고 한다.

특히 레스토랑에서 저녁에 남은 음식들을 거의 개의 먹이로 주기 때문에 떠돌이 개들은 대부분 잘 먹고 다닌다고 한다.

개들은 대체로 조지아 전통 품종으로 크기가 매우 큰 편이다.

가이드가 보여준 사진에 의하면 거의 성인과 엇비슷한 크기까지 자랄 수 있다고 한다.

가이드는 떠돌이 개의 머리를 긁적이며 사람을 잘 따르며 온순하다고 설명을 마쳤다.


나는 큰 개들을 무서워하는 사람이라, 가이드의 설명을 한 발 떨어져서 듣고 있었다.

사실 나는 아침에 나오자마자 거리의 개 한 마리가 끈질기게 내 옆을 쫓아와서 약간 질린 상태였다.

그런데 가이드의 설명을 들은 이후 많은 개들을 지나치며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르다 보니, 마침내 가이드의 설명을 받아들일 있었다.  


조지아의 개들은 무해하다.

그리고 조지아의 떠돌이 개들은 사랑스럽다.


멋을 아는 떠돌이, 저 멀리 뒤에도 누워있는 한 친구가 보인다

어느새부터인가, 나는 떠돌이 개를 전문적으로 찍고 다니는 조지아 떠돌이개 전문 사진작가가 되어 있었다.

너른 초원에 느긋하게 앉아 있는 떠돌이 개의 늠름한 모습.

홀린 듯 찍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낮잠을
초원과 인도 경계에 누워 낮잠
벤치 그늘에 누워
난간 그늘에 누워
간혹 일광욕을 즐기는 친구들도 있다
일광욕과 낮잠을 한 번에


주변 상인들이 먹이를 많이 줘서 그런지 배고파 보이지도 않는다.

사람들이 음식 냄새를 풍겨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배부르고, 등 따시고.

햇살이 따사로운 낮 시간, 대부분의 떠돌이 개들은 바닥에 드러누워 늘어지게 낮잠을 잔다.

보고 있으면 마음도 늘어지는, 그런 모습이다.

마음이 꼭 따뜻한 프라이팬 위에 녹아내린 인절미가 된 기분이다.


너는 앉아서 자는 거니?
난 눈 뜨고 있다고요


떠돌이 개들을 몇 날 며칠이고 보다 보니 자연스레 그런 말이 떠오르는 것이다.

개 팔자가 상 팔자다.

걱정 없이 어슬렁어슬렁 거려도 되는 삶.

애들이 확실히 삶에 여유가 있어서 그런지 뛰는 법도 없고 여간해선 잘 짖지도 않는다.

어슬렁어슬렁 가벼운 산보 정도로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게 전부다.

사람들에겐 짖는 법이 없고, 저들끼리 싸울 때나 크게 짖는다.

싸움이랄 것도 없고 서로 그저 노려 보고 몇 번 크게 짖다가, 그마저도 금방 고개를 돌려 버린다.

당연히 길 아무 데서나 소변 대본도 본다.

그러니 길거리에 개똥이 많은 것은 비밀이 아니다.

떠돌이 개는 사랑스럽지만, 개똥은 밟지 않도록 조심하자.

사족이지만 그나마 트빌리시는 개똥만 있지, 카즈베기는 정말 곳곳이 개똥, 말똥, 소똥 천지다.

온갖 똥이 출몰할 수 있다.


나는 여유가 없어서 인지 노상 쫓기듯 잰걸음을 놓으며 뛰어다닌다.

그리고 일상적으로 잘 짖고 으르렁 거린다.

여유가 없는 삶이란 어쩌면 떠돌이 개보다도 품위가 없는 삶인지도 모른다.

조지아의 떠돌이 개를 보며 나의 사회적 품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배가 부르고, 햇살이 따뜻하면 모든 것이 노 프라블럼.


조지아는 떠돌이 개조차 노 프라블럼의 마인드가 장착된 것이다.


이쯤 노 프라블럼의 신세계를 경험했다면, 나도 조금은 노 프라블럼의 마인드를 세팅해야 되는 거 아닐까.


카즈베기 숙소의 떠돌이 개- 가장 친해진 친구다


위 사진의 떠돌이는 우리가 카즈베기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만난 친구다.

이 친구도 역시 다른 조지아의 떠돌이 개들처럼  햇살 아래 누워 여유로운 낮잠을 즐기곤 했다.


이른 아침 숙소 앞에서 자고 있는 친구


조지아와 시차가 5시간이기 때문에, 동이 트기 전 항상 눈이 떠졌다.

일출을 보기 위해 커튼을 걷었는데, 숙소 입구에 이 친구가 누워 자고 있었다.

약간 어둑할 때부터, 날이 밝아 올 때까지.

트레킹에 나서기 위해 아침을 준비했다.

전날 저녁에 먹고 남은 백숙이었다.

우리에겐 너무 짠 조지아 음식을 견디지 못하고 삶은 냉동 닭.


해외 여행지에서 첫 요리였다
더 달라는 거지? 한 그릇 먹고 정자세로 앉아있던 친구.

 

우리는 남은 백숙의 뼈를 발라 살코기를 그릇에 주었다.

닭고기가 약간 우리나라 토종닭처럼 질긴 편이어서 고기가 생각보다 많이 남았고 우리는 한 그릇을 대접할 수 있었다.

그래도 적지 않은 양이었는데, 정말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아마도 카즈베기는 레스토랑이 많지 않아서, 먹이 수급이 용이하지 않은 걸까.

떠돌이 친구는 잠시 여유로운 모습을 버리고 정자세로 우리 숙소 문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고기를 조금 더 주지 않을 수 없었다.


햇살과 카즈베기 풍경을 즐기는 떠돌이 친구의 뒷모습


그렇게 카즈베기에 있는 동안 이 친구는 오며 가며 종종 우리 숙소를 방문했다.

그렇게 떠나는 날 아침에도 식사를 나눠 먹으며 인사를 했는데.

우리가 캐리어를 끌고 나오니, 떠돌이 개가 우리 옆을 천천히 쫓아온다.


"바래다주는 것 같은데?"

 

남편의 말이 맞았다.

떠돌이 개는 우리가 카즈베기 중심부로 내려갈 때까지, 천천히 산책하듯 우리를 쫓아왔다.

우리 뒤에서, 옆에서 함께 걸으며.

흙 길에 캐리어 바퀴가 걸려 멈춰 있으면, 가만히 서서 우리를 기다렸다.

그렇게 우리를 배웅하다가 카즈베기 중심부까지 딱 한 골목만을 남겼을 때, 개는 돌아서서 가버렸다.


"이제 가는 거니?"


떠돌이 개는 이미 저만치 왔던 골목의 반대편에 다다라 있었다.

그 쿨한 뒷 자태가 역시 조지아의 떠돌이다웠다.

여유 있고, 노 프라블럼.


그래, 노 프라블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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