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트빌리시 어디를 가도 마주칠 수 있는 그라피티에 대해 현지 가이드에게 물어보았다.
왜 모든 건물에 그라피티가 가득인지.
가이드도 딱히 뚜렷한 답을 내놓진 못했다.
그냥 원래 그렇다,라는 식의 대답이었다.
아마 언젠가부터 그라피티가 생기기 시작했고, 없앴는데도 계속 생겨났거나.
없애지 않아서 그대로 계속 그라피티가 많아졌거나.
그런 의미이지 않았을까.
멀쩡한 호텔 건물에도 가득은 아니어도 구석 어딘가엔 꼭 그라피티가 지저분하게 있는데.
어쨌든 가이드의 어정쩡한 대답은 그들이 그라피티를 별로 신경 쓰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끔 했다.
그쯤이야 노 프라블럼 아니었을까.
있든 말든 상관없다는 조지아 인들의 태도처럼 보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명품이라고 부르는 브랜드가 입점한 건물이나, 공공기관에도 그라피티가 많았는데.
우리나라였다면 난리 나지 않았을까.
고급 매장에선 아침에 출근한 직원들부터 난리가 났을 것이고, 공공기관은 당연히 두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자칫 뉴스에 나오는 것도 각오해야 할 것이다.
여하튼 그 모든 것이 노 프라블럼.
상관없거나 괜찮다.
나는 그 무덤덤함이 대범하게도 아찔하게도 느껴졌다.
조지아는 분명 치안이 좋고 안전한 나라가 맞다.
세계 치안 순위를 살펴보면 한국과 치안 순위가 크게 차이 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라피티가 거의 모든 트빌리시 건물의 외관을 훼손하다 보니, 어딘가 불량하게 보이는 구석이 있다.
특히 대로변이 아닌 한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 좁은 도로에 주거지에 있는 그라피티는 상당히 을씨년스러워 보인다.
가로등도 잘 없고 주위는 어둡고 깜깜하고 건물에는 온통 낙서 천지이기 때문에, 빨리 길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사진의 흔들림까지 더해져, 딱 아래의 저런 느낌이다.
어떤가.
멀쩡한 도시 외관에 저런 수많은 그라피티들.
조지아의 치안 순위를 알지 못했다면, 첫날 내가 도심행 버스에서 느꼈던 것처럼 동유럽 어디의 갱단 소굴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겉면을 치워두고, 조지아의 밤거리는 어두웠지만 안전했으며, 사람들의 인상은 흉흉했지만 그 어떤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
마치 조지아는 겉모습은 약간 껄렁껄렁한데 성적은 상당히 좋은 그런 친구다.
아무튼 겉과 속이 다른 느낌.
공부하다가 지쳐서 잠깐 나와서 담배 피우고 수업에 들어가는 모범생(?) 같은 느낌이랄까.
실제로 그런 일이 발생한데도, 조지아에서는 이 또한 노 프라블럼일 것이다.
왜냐하면, 조지아는 흡연자의 천국이다.
이것이 우리 부부에게는 심각한 단점이었지만, 반대로 말하면 애연가에게 굉장한 장점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점점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자유 공간(?)이 급격하게 줄고 있지 않는가.
담배 필 곳을 찾아 산 넘고 물 건너는 가상 미래를 개그로 그린 유튜브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만큼 담배 피우기 어렵다는 상황을 재밌게 표현한 영상일 것이다.
그러나!
애연가들이여, 조지아로 가시라.
조지아에서 당신이 담배를 피우고 싶다면, 당신은 담배를 피울 수 있을 것이다.
소위 길빵(!)이라고 표현하는 노상 흡연은 기본 중 기본이다.
대부분의 식당 테이블에 재떨이가 비치되어 있고, 건물 안에서도, 마슈로카 안에서도, 거의 모든 상황과 공간에서 담배를 피운다.
트빌리시 롤리타 레스토랑
위 사진은 트빌리시 시내의 롤리타 레스토랑의 외부 모습이다.
철창과 붉은 불빛.
밖에서 보는 분위기만 저렇게 살벌하지(!) 안은 깔끔한 오픈 키친, 야외 정원과 더불어 내부 인테리어가 잘 꾸며져 있다.
현지에서 굉장히 인기가 많은 곳이다.
우리 부부가 조지아에서 경험한 모든 식당 중에 롤리타가 가장 만족스러웠는데.
그럼에도 한 가지 큰 감점 요소가 있었다.
바로 흡연.
모든 테이블에는 당연하게 재떨이가 있다.
그리고 거의 모든 테이블에서 담배를 피웠다.
테이블과 테이블의 거리가 굉장히 가까운 편인데.
우리는 양 옆에서 불어대는 담배 연기 때문에, 음식이 훌륭했음에도 연신 기침을 하며 가끔씩 숨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옆 테이블에 앉은 거의 중학생으로 보이는 조지아 소녀 두 명이 성냥으로 담배에 불을 붙이는 장면을 식사 내내 목격해야 했다.
콜라 한 병씩을 시켜 놓고 여느 소녀들처럼 수다를 떠는 모습이 귀여웠지만, 길게 뿜어내는 담배 연기는 앳돼 보이는 외모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공공장소에서 자연스럽게 흡연을 하니 성인이기야 하겠지만, 진실로 너무 어려 보였다.
로마에 갔다면 로마 법을 따랐어야지.
노 프라블럼의 마인드를 가졌어야 했는데.
한국에서 너무 모든 것에 깐깐한 기준을 들이밀며 살았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만들었던 조지아.
그라피티?
노 프라블럼.
흡연?
노 프라블럼.
흡연이야 개인 기호의 문제이니, 더욱 노 프라블럼 했어야 했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조지아에서 내가 느꼈던 그 아찔함은... 어쩐지 대범하게까지 느껴지는 그 무덤함에 카타르시스를 느껴서 일 것이다.
너무 까칠하게 살지 말고.
모든 것에 별일 아닌 듯, 초연한 태도로.
조지아 사람들처럼.
그저 노 프라블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