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 사람들에게 쏘리나 마들로바(감사합니다)라고 하면 영어를 조금이라도 하는 조지아 사람들은 노 프라블럼이라고 답한다.
노 프라블럼.
노 프라블럼이라고 말하는 그들의 말투는 단호하며, 산뜻해서 상당히 듣기에 좋은 깔끔한 울림을 지니고 있다.
당연히 문제없다는, 괜찮다는 의미다.
나는 조지아 사람들의 이런 노 프라블럼이 그들의 일상 여러 부분에서 발휘되는 것 같다고 느꼈다.
짧은 시일 관찰한 바로 특히 운전과 그라피티, 흡연에서 그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카즈베기에서 트빌리시로 가는 마슈로카에 탔다. (승합차보다는 조금 큰 미니 밴, 조지아 지역 간 이동 버스라고 보면 된다. 아래 사진이 카즈베기 마슈로카 탑승 장소이다. 카즈베기 센터 SPAR슈퍼 옆쪽에 있다. 작은 장소라 쉽게 지나칠 수 있지만, 마슈로카를 타기 위한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니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인당 15라리, 캐리어 하나에 5라리 추가.)
운전기사 아저씨가 자리를 지정해 주시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붙어 있는 두 좌석이 두 군데나 있는데도 우리 부부에게 떨어진 자리 하나씩 앉으란다.
나는 붙어 있는 두 좌석을 가리켰지만, 아저씨는 단호하게 한 자리씩을 찝어 주신다.
우리는 두 말 않고 골라주는 자리에 앉았다.
마슈로카는 시간표가 있지만, 사람을 가득 채워야 떠난다.
우리가 타고 20분쯤 흘러, 마지막에 미국인 여자분이 탑승했다.
남아 있는 한 자리는 맨 뒷좌석 가장 끝자리였다.
여자분은 상당히 체격이 좋았고, 자리는 누가 보기에도 매우 좁아 보였다.
여자분은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넉살을 부리며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트빌리시로 향하는 마슈로카가 출발했다.
출발하기 직전 구글로 확인해 본 소요시간이었다.
3시간 14분.
이 숫자를 기억하자.
진정한 분노의 도로, 매드 맥스의 서막이었다.
조지아에는 중앙선이란 개념이 아예 없다고 보는 게 좋다.
차선의 개념도 있긴 하지만 희미하다.
그냥 막 넘나 든다.
역주행을 하며 앞차량 추월은 기본 중 기본이고, 정면충돌을 하듯 반대편 차량과 마주 달리며 미친 급가속을 해서 추월하고 앞질러 간다.
중요한 점은 반대편 차량도 쫄지 않고,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 속도 그대로 계속 마주 달려온단 점이다.
진정한 매드맥스다.
거친 코카서스 산맥의 운전기사들이란 거의 제이슨 본(분노의 질주, 미션 임파서블의 에단 헌트까지. 액션 영화에서 도로의 무법자가 되는 주인공 모두를 포함하고 싶다.)의 추격전을 가뿐히 능가한다.
아마도...
거친 도로를 달리는 조지아 인들의 마음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잠시도 나의 질주를 가로막는 자는 참을 수 없다.
내 속도를 견딜 수 없는 자, 추월을 허용하라.
그냥 사고만 안 나면 되는 것 아닌가.
차와 차 사이의 간격은 1cm도 허용할 수 없다.
도대체 간격이 왜 필요한가! 마지막 순간에 서로서로 아슬아슬하게 피할 텐데, 그러므로 속도는 아주 조금도 늦출 수 없다.
트빌리시에서 카즈베기를 넘어올 때는 불안하긴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마슈로카에 탄 전원의 몸이 시시때때로 붕붕 좌석에서 날아올랐다.
어쩔 땐 추월이 차선 전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면서 갑자기 차선이 두 개에서 세 개로, 세 개가 심지어 네 개로까지 늘어나기도 했다.
추월의 추월. 아무튼 추월은 그들의 미덕인 것이다.
마슈로카에 탄 히피 행색의 여행자들도 종종 고개를 삐죽삐죽 들어 올리며 주변을 살핀다.
그들도 약간 질린 눈치였다.
그때 남편의 어깨를 뒤에서 두드리는 현지인 아주머니.
잔뜩 굳어, 좌석 손잡이를 꽉 붙잡고 있는 남편에게 한 마디 하신다.
노 프라블럼. 세이프.
걱정하지 말라는 현지인. 안전하단다.
그렇군요. 안전하구나. 역시 노 프라블럼!
그래, 맨 앞 좌석에 앉은 현지인은 불안해서가 아니라 몸이 많이 흔들려서 안전벨트를 한 것이 맞을 것이다.
나도 벨트가 있다면 진작에 했을 텐데.
차선은 양방향 두 개 차선에 가드레일도 없는 옆은 정말 말 그대로 천 길 낭떠러지다.
그런데도 급가속과 감속, 추월, 심지어 비좁은 터널에서도 가속과 추월은 할 여지만 있다면 일체 망설임이 없다.
성질 급한 한국 운전자도 아이고 형님하며 절로 고개가 수그려지는 조지아의 운전자들. (여성 운전자도 예외는 아니다. 반대편에서 터프하게 전력질주로 마주 오던 차량의 운전자 중 일부는 여성이었다.)
실제로 남편도 아주 깐깐한 서울 출퇴근 운전자임에도 불구하고 조지아 아저씨들의 운전에는 질겁을 했다.
도대체 뒤에서 뭐가 쫓아오는 거냐며.
마슈로카에서 잠깐 눈이라도 붙이려고 했던 남편은 한숨도 못 잤다.
약간의 걱정과 함께 심한 울렁임으로 멀미가 났다고 한다.
20년 경력의 베테랑 운전자에게도.
네가 잘 수 있을 것 같아? 이래도?
이렇게까지 운전하는데도 잘 수 있다고? 하는 질문처럼 느껴지는 질주였다.
3시간 14분을 기억하고 있는가.
우리는 도착 예정 시간보다 무려 30분 일찍, 2시간 45분 만에 트빌리시에 도착했다!
그야말로 경이로운 운전 솜씨가 아닌가!
비단 마슈로카뿐만이 아니었다.
탑승한 모든 택시(볼트)에서.
투어를 위해 탑승한 밴에서나(그나마 투어 버스 운전기사분들이 가장 일반적으로 운전하셨다).
심지어 지하철조차도 예외는 아니다.
(정차 역에 지하철이 완전히 서지 않았는데 지하철 문이 열린다.
문은 대부분 출발하면서 1.5초쯤 지나면 닫힌다.
사진을 보라. 저 까마득한 깊이를.
엄청난 소음과 속도에 더불어 끝을 모르고 내려간 곳에서 탑승한 지하철은 광속 워프로 이세계로 점프하는 것만 같다. 조지아이 지하철은 신세계다. )
조지아의 그 모든 이동 수단에서 우리는 그들의 거침없는 질주 솜씨를 경험했다.
우리나라 난폭운전과 광란의 질주는 가짜 광기나 약간 애들 장난처럼 느껴질 것이다.
진짜 광기의 미친 질주를 경험해보고자 한다면, 조지아에 가보자.
현실판 매드 맥스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자동차가 자주 이런 형태가 되는 게 아닐까.
턱이 사라진 벤츠
오른쪽 턱에 제대로 잽이 들어간 BMW
앞 범퍼와 뒷 범퍼가 아예 떨어져 나간 차는 굉장히 자주 마주칠 수 있다.
한국이었다면 '저 차 방금 사고 났나 본데?' 혹은 '지금 공업사 들어가는 중인가?' 싶은 차가 상당수이다.
(차량 제조국이 아니기 때문에 운행만 가능하다면, 오래된 차나 차량 파손은 크게 신경 쓰는 것 같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역시 노 프라블럼.)
그래서 아래 사진처럼 턱이 사라진 벤츠와 멋스러운 올드카가 거리를 누비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쯤 되니 내 글들이 전부 조지아 험담을 하는 것 같다.
아니다. 나는 조지아를 깎아내리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상하게도 조지아의 그 야생성, 노 프라블럼이 좋았다.
내 글은 어딘가 불안전한(?) 야생성을 간직한 조지아에 대한 찬사이며, 날 것의 요소가 조지아의 매력 중 하나라는 표현의 발로다.
유럽 끝에 붙어 있는, 아직 완전히 다듬어지지 않은 생생한 그 무엇을 보길 바란다면 조지아는 옳은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