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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험미 Oct 12. 2024

가마르조바, 조지아 1

에어 아스타나 항공권/ 조지아의 첫인상

올해 1월 나는 습관처럼 항공권을 뒤지고 있었다.

하릴없이 침대에 누워 있는데 문득 삶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 출퇴근 지하철 안에서 갑자기 현타가 왔을 때, TV 채널을 휙휙 돌리다 확 끌리는 여행지를 마주했을 때.

나는 현실과 타협하는 하나의 방안으로 항공권을 검색한다.

무슨 중대한 의식이라도 되는 것처럼, 검색하는 손놀림은 진중하기 그지없다.

그러다 우연히 하늘을 스캔한다는 앱 끄트머리에서 조지아라는 나라 이름을 발견했다.

미국 조지아가 단연 먼저 떠오르는 국가.

혹은 편의점에 한 줄로 정열 되어 있는 커피 음료로 의식의 흐름이 이어지는 나라.

조지아는 그렇게 내게 소소하게 별 의미 없이 다가왔다.


스캐너가 알려준 항공권 가격은 100만 원이었다.

정말, 에누리 없이 딱 100만 원.

검색해 보니 동유럽과 아시아의 끄트머리,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과 함께 코카서스 3국 중 하나.

유럽에 걸쳐있는데도 100만 원이라니.

코로나 이후 여행이 풀리며 항공권 가격이 무섭게 치솟던 때라서, 100만 원은 일견 저렴해 보이기까지 했다.

유럽 항공권과 100이란 숫자는 직장인 여행자에게 큰 메리트로 다가왔다.


나는 그 숫자에 눈이 뒤집혀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소녀처럼 열병을 앓듯 조지아를 검색했다.

한참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여행지였다.

한국인들에겐 저렴이 버전의 스위스란 명칭으로 제법 소소하게 그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더 구미가 당겼다.

한국인이 어떤 민족인가.

극강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가성비, 가심비에 미치는 사람들 아닌가.

그런 사람들이 입을 모아 좋다, 좋다고 한다면 가 봐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진하게 박였다.


이미지 사진을 검색할수록 나의 눈에선 하트가 발사되고 꿀이 뚝뚝 떨어졌다.

코카서스 산맥의 광활함과 푸르고 아름다운 자연.

바로 여기다.

(모든 사진들은 직접 조지아에서 찍은 사진이다)



그 후로 나는 거의 매일 조지아 항공권을 검색했다.

처음 검색한 이후로 줄곧 100만 원이었다가, 어느 날 한 밤중에 열어 보니 96만 원이었다.

100만 원도 싸다고 생각했으면서, 96이란 숫자를 보자 욕심이 났다.

그보다도 더 내려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결제를 망설이고 하루가 지났는데.

그 뒤로 가격이 점점 널 뛰며 110만 원에서 120까지 갔다.

쿠키를 모두 삭제하고 노트북이나 남편의 휴대폰으로 검색해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뭐든지 사람이 너무 욕심을 내면 안 된다.

욕심이 이렇게 무섭다. 작게 얻으려다 크게 잃는다.

늘 더 큰 욕심이 화를 부른다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다시 100만 원만 되면 이번엔 꼭 결제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검색하던 어느 밤에 항공권 가격은 다시 100만 원으로 돌아와 있었다.

나는 거의 반쯤 잠든 남편을 깨워 마지막 최최종 컨펌을 받고, 바로 항공권을 결제했다.

가장 중요한 남편의 컨펌은 받았으나, 회사는 아무런 대책도 없이 무려 10일의 일정을 질러버렸다.


연차는 어쩔 것이고, 일은 무사히 처리하고 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구차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진짜 안되면 할 수 없지, 이 참에 관둬야지...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은... 메리트로 작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작용하지 않았다고 믿자. 그렇게 나는 정신 승리할 것이다. 월급 따박따박 받는 직장인은 그런 것 하나하나 고려하며 전전긍긍 생활하지 않는 법이다. 눈물이 눈앞을 가린다.)


아무튼, 나는 다소 무모하게 무려 근 7개월 전에 조지아행 항공권을 구입했다.

발권 메일을 받은 이후 두근두근 설레는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백 며칠 후에 멀고 먼 어느 나라를 간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무사히 지나가기도 했다.

그런 긴 기다림이 좋았다.

종종 드는 생각은 여행 자체의 즐거움보다 이 여행 전의 설렘에 중독된 것 같다는 것이다.


아무튼 우리는 긴 기다림 끝에 24년 9월, 조지아로 출국했다.


가마르조바(안녕하세요), 조지아.


설렌 마음으로 수화물을 찾고 시내로 가는 버스에 탔다.

시내로 가는 버스는 겨우 1라리(약 500원. 현지 교통카드 1라리, 일반 비자나 마스터 카드는 1.5라리).

어... 근데 어째 버스에 타는 사람들 대부분이 교통카드를 찍지 않고 그냥 탄다.

버스 기사도 그 모습을 보았지만, 아무 말도 안 하고 조용히 운전만 한다.

(우리가 내리기까지 거의 한 시간 동안 교통카드를 찍은 사람은 두 명뿐이었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가, 타는 사람들이 유독 젊은 남성들이 많았는데... 약간 동유럽 갱단 같다. (물론 실제로 그렇다는 게 아니라 어쩐지 행동이나 겉모습이 그런 느낌이라는 것이다.)

남편도 나도 자연스레 영화 테이큰에서 리암 니슨의 딸을 납치해 갔던 동유럽 갱단을 떠올렸다.

우리는 고개를 약간 갸웃했지만, 처음 보는 조지아의 밤 풍경을 보기에 바빴다.


음... 처음 마주한 조지아의 거리는... 음산해 보였다.

당연히 공항은 도심에서 멀고, 어느 나라나 도시 외곽은 살짝 삭막해 보일 수 있지.

그래, 음산해 보일 수도 있는 거야.

조지아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치안 순위가 높은 나라 중 하나가 아닌가.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우리는 가장 번화하고 관광객이 많이 머무는 자유광장이 있는 루스타벨리 거리에 내렸다.

메인 거리임에도 가로등과 불빛은 어둑한 편이었다.


버스 정거장 맞은편에 우리가 묵을 호텔이 있었다.

큰 대로변 위아래로 어디를 둘러봐도 횡단보도를 찾을 수 없었다.

대신 지하도를 발견했다. (트빌리시 시내에서 횡단보도를 찾을 수 없다면, 분명 근처에 지하도가 있다.)

우리는 캐리어를 짊어지고 지하도로 내려갔다.


이럴 수가.

번듯한 대로변 건물에도 마구잡이 그라피티가 보이더니...

늦은 밤 지하도의 모습에 나는, 솔직히 쫄았다.

불빛은 하나도 없고, 그라피티로 지하도는 엉망이었다.

흔히 영화 속 미국 뒷골목 할렘 어딘가쯤, 딱 그런 이미지였다.


조지아... 이거 어쩐지... 잘못 온 거 아냐... 하는 마음과 함께.


A long way from home...이라는 노래 가사가 불현듯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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