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시우 환자 들어갈게요."

자꾸만 아픈 곳을 들추다

by 오뉴월의 뉸슬

9/9

병원에 갔다 왔다

아팠다

많이 아팠다….



평온했던 잠자리가 낯선 이에 이끌려 덜컹거렸다. 침대에 달려있던 작은 바퀴들이 요란하게 소리를 내며 단잠을 깨웠다. 발 밑에서 병원 침대를 밀어주고 있는 그는 하얀 의사 가운 대신 파란 간호사 복장을 한 남성이었다. 엄마와 작은 이모는 침상을 따라가면서 긴장을 풀라고 얘기해줬다. 내 시야에는 오로지 천장의 전등만 터널의 불빛처럼 반복되어 보였다. 검사실로 들어가기 전, 나는 엄마의 얼굴을 보려 목을 들었지만 엘리베이터에 타야되자 포기했다. 굳게 닫혔던 엘리베이터 문은 열렸고 나는 마치 중환자처럼 검사실로 이송되었다.


© marceloleal80, 출처 Unsplash





오늘은 ‘심도자 검사’를 하는 날이다. 어젯밤 간호사님께서 잠들기 직전 찾아오셔서 프린트 물과 함께 내일 진행될 검사 일정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다. 살면서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의학전문 용어들이 난사되면서 나는 고개만 위아래로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토씨 하나 이해하지 못한 채 엄마와 나는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였다. 내가 미약하게나마 알아들었던 내용은 고관절 부분에 위치한 정맥에 조그마한 플라스틱 튜브(카테터)를 넣는 사실이었다. 나는 왜 그 검사를 해야 하는지, 그 검사를 통해 무얼 알아내려고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부분 마취를 한다고 했으니까, 안 아프겠지?' 불안한 마음에 오른손을 꽉 쥐었다.


간호사는 위에서 뭐라뭐라 대화를 하더니 방향을 바꿔버렸다. 앞서 혈관 검사를 받은 사람이 아직 끝나지 않은 탓이었다. 우리 가족은 검사실 옆 대기실에서 기다려야 했는데, 그 곳은 안 쓰는 물건들을 모아놓은 듯 학교 교무실에서나 볼 수 있었던 칸막이들이 널려 있었다. 엄마와 이모는 의미 없는 수다를 나눴다. 10분이 흐르자, 한 남자아이가 병실 침대에 기대어 누운 채 대기실로 실려온 걸 볼 수 있었다. 그는 중1인 나보다 5살이나 어려 보였다. 엄마는 그 아이를 보더니 “시우야, 저런 어린애도 하는 데 너무 걱정하지 마.”라며 나를 안심시키려 했다. 나보다 어린 친구들도 나와 비슷한 일들을 겪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헛헛해졌다.



그러게 엄마, 나 같은 사람들이 참 많다.








“하나도 안 아팠는데?”


침대 채로 옮겨진 그 애는 씩씩하게 그의 가족들과 검사 도중에 있었던 헤프닝들을 떠들어댔다. 우중충했던 대기실이 무용담처럼 부푼 이야기는 끝날 낌세를 보이지 않았다. 그 아이는 피곤하지도 않은지 눈을 반짝 빛나며 손짓 발짓을 이용했다. 나는 그 아이의 쇼맨십을 구경하다 녀석의 치기 어린 한마디를 듣고 안도했다. '별로 힘든 검사가 아닌 가봐.' 조금 있다 간호사가 들어오고 내 이름을 불렀다.



곽시우 환자 들어갈게요.




엄마 손과 꼭 붙잡고 있던 온기가 끊어졌다. 여기서부터는 혼자하는 외로운 싸움이였다. 수술실 안에서 밖으로 찬 공기가 물씬 뿜어져 나왔다. 검사실 내부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내 예상과 달리, 학교 교실보다 넓었다. 천장에는 환하게 빛나는 조명들이 여러 개 수놓아져 있었다. 마치 미확인 비행선을 떠올리게 하는 알 수 없는 수술 장비들도 있었다. 한번도 본 적 없는 기이한 광경에 심장이 미칠 듯이 뛰어왔다. '이런 장면은 의학 드라마에서나 보던 건데.'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두려움이 묶은 때처럼 슬그머니 차오르기 시작했다.







“마취 주사 놓을게요.”


싸늘하게 한기로 뒤덮인 피부 위에 알코올 솜이 적셨다. '아, 대기실에서 처음 만난 애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은 내가 잘못이지.' 후회할 틈도 없이 날카로운 바늘 하나가 살갗에 박혔다. 가는 날은 점점 살 깊숙이 들어왔다. ‘이러다 뼈까지 닿는 거 아니야?’ 왼쪽 다리를 절단하는 것 같은 고통이었다. 온 세포 마디마다 긴장을 돌게 만들었다. ‘이거, 그냥 폐동맥 심장 검사 아니고 수술 급이잖아.’ 숨 들이킬 틈도 없이 주사바늘이 들어갔다 나가기를 반복하더니, 청소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위이잉- 무언가 살 표면 속으로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검사가 시작되고 한동안 평화로웠던 나에게 머리 전체를 감싸는 가면을 덮어주었다. 방독면 같이 생긴 것은 내가 어제 설명 들은 폐동맥 측정(=얇은 관을 집어넣어서 어디가 이상 있는지 알아보는 것)과 다른 검사라서 당황했다. ‘뭐라는 거야. 산소 측정 검사인가?’ 바깥에서 뭐라고 남자 간호사가 설명을 하는데 이미 방독면을 씌운 상태에서는 말이 들리지 않았다. 점차 산소가 부족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이러다가 있지도 않은 폐쇄공포증이 생길 것 같아 내 주변을 서성이는 남자 의사에게 작은 목소리로 애원했다. “이것 좀 치워주시면 안 되나요?” 내가 물었다. 내 목소리가 작았던 탓인지 그는 곁으로 오지도 않았다. 다시 곁눈질을 하며 내 근처로 오는 분에게 크다고 생각할 만큼의 소리로 말을 겨누었다.



“저, 이것 좀 치워주실 수 있나요? 그만하면 안 되나요?



“아, 조금만 더 있으면 끝나요. 그때까지만 참아요.” 그들은 숨이 막혀오는 내가 걱정되지 않아 보였다. '아니 진심으로 나는 지금 당장 숨 막혀 죽겠다고!.' 눈물샘이 폭발하자 손과 입술이 덜덜 떨려왔다. 지금 이대로 설득을 이어나가기보다는 산소를 아끼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고 판단한 나는 틈새를 만들려고 얼굴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조그마한 공간이 생기자 그 곳으로 새 공기가 바람처럼 새들어왔다. 20분가량 시간이 흐르고 갑갑했던 가면이 벗겨졌다. 검사가 모두 끝이 났는지 한 여성 의사가 와서 친절히 이야기해주었다. “이제 이거 빼낼 거예요.”







내 혈관 속을 열심히 돌아다니던 튜브 관은 휘이익- 소리를 내며 빠졌다. 길이가 무지 길었던 녀석은 퍽이나 재미있게 혈관 속을 돌아다녔는지 계속해서 기계 돌아가는 소리를 내며 몸부림쳤다. 그리고는 뚝 끊어지는 소리와 함께 따뜻한 뭔가가 다리 사이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헐 나 생리 터졌나 봐.’ 예상을 한 건지 못한 건지 여러 의사 분들이 내 주변을 왔다 갔다 맴돌았다. ‘근데 생리가 원래 이렇게 한 번에 많이 나왔었나?’ 뜨거운 액체는 사타구니서부터 엉덩이 골까지 자기 영역을 넓혀나갔다.


그들은 더럽지도 않은지 무심하게 피를 닦아냈다. 이런 일이 대수롭지 않은 듯 나를 갓난아이처럼 발목을 잡고 골반을 들어 올려 꼬리뼈 부근에 묻은 핏물을 치웠다. 다른 한 명은 피가 새어져 나오는 부위를 두꺼운 수건으로 눌렀다. ‘아, 구멍이 뚫린 곳에서 피가 나오는구나.’ 묻어 나오는 혈이 줄어들자 솜으로 상처를 막은 다음 모래주머니를 위에 올려놔 고정시켰다.




© cassi_josh, 출처 Unsplash







침대가 다시 신랄하게 흔들렸다. 고된 검사가 드디어 끝이 났다. 나는 내 옆으로 다가오는 엄마를 보고 나서야 긴장이 풀렸다. 그러나 절대 움직이지 말라는 간호사의 말에 병실에 들어와서도 꼼짝 하지 못했다.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마음껏 웃고 있을 수가 없었다. 웃으면 압박하고 있던 모래주머니가 흔들려 피가 나올 것 같았다. 아침에 보았던 그 녀석이 갑자기 생각났다. “아니 엄마, 그때 걔가 하나도 아프지 않다고 했잖아. 겁나 아팠어. 완전 뻥.” 한 번 터진 입담은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나는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불안해 자꾸만 환자복을 들춰 보았다. 피가 흐를까 봐, 다시 또 구멍이 커질까 봐.


© daanstevens,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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