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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전설

by 최재효

[에세이]












찔레꽃 전설





5월이 되면 나는 찔레꽃 향기를 맡으며 그리움에 몸부림친다.


이때쯤 내 고향 경기도 여주(驪州) 들녘에는 찔레꽃이 지천으로 핀다. 꽃말도 가족의 그리움이다. 베르실이나 청마루 또는 배실에 눈보다 하얀 꽃을 무더기로 피우며 수줍게 핀 찔레꽃은 내 생명의 원천과 같다.



찔레꽃은 나를 부활시킨 꽃이기도 하다. 찔레꽃은 나의 가슴 아픈 전설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다. 5월이면 나는 고향이 있는 남녘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며 점점 희미해져 가는 영상을 떠올린다. 전원(田園)에서 칠 남매 중 여섯 번째로 태어난 나는 부모님의 각별한 정을 받았다.



해주가 본관인 아버지는 경기도 여주의 한 부농(富農)의 구 남매 중 다섯 번째로 태어났고, 경주가 본관인 어머니와 가정을 꾸렸다. 분가할 때 아버지는 할아버지로부터 넉넉지 못한 가산을 받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평생 부모를 원망하거나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다.



타고난 강골(强骨)인 아버지는 봄부터 서리가 내릴 때까지 별 보고 들녘에 나갔다가 별을 보고 귀가하는 게 일상이었다. 칠 남매가 성장하기 전에 우직한 아버지는 상당한 문전옥답을 장만하고 오로지 가풍을 세우는데 몰두했다.



5월에 모내기할 때면 온 동네 장정들이 이삼 일씩 우리 집에 몰려들었고 어머니는 마을 아낙들과 일꾼들 밥을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다.


이제 막 몸을 세우기 시작한 나는 큰 누이의 감시 아래 있었다. 누이 등에 업혀서 낮잠을 자거나 장난감을 흔들며 노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다 제풀에 지쳐 툇마루에 아무렇게나 누워 잠들기 일쑤였다.



나에게 사자(使者)가 찾아온 날도 찔레꽃이 한창 은은한 향기를 풀어헤치던 때였다. 농사일로 바쁜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침 일찍 들녘으로 향했고 누이와 어린 남동생만 집안에 남았다. 누이는 순둥이 남동생을 업어주다 잠이 들자 방에 재우고 뒤란 우물에서 빨래를 했다.


선잠에서 깬 아이는 엉금엉금 기어 툇마루 놓여있던 양잿물을 들이켰다. 비명이 집안을 울렸고 이에 놀란 누이가 뛰어 왔지만 상태는 심각했다. 어린 동생은 눈이 뒤집히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누이는 두 마장 떨어진 들녘으로 달렸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집에 도착했을 때 아이는 혼절해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업고 읍내로 뛰었고 어머니는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지아비 뒤를 따랐다. 아버지는 바람보다 빠른 속도로 달렸다. 겨우 읍내 의원에 도착했을 때 아이는 거의 숨을 쉬지 않았다. 의사는 소견서를 써주시며 빨리 수원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수원 가는 교통편은 하루에 두세 번 왕복하는 완행버스와 일본 강점기에 놓인 수려선(水驪線)을 달리는 협궤 디젤동차밖에 없었다. 마침 수원행 동차가 있어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들을 업고 동차에 올랐다. 승객들이 축 늘어진 아이를 보더니 측은한 시선으로 수군거렸다.



수원 K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지만, 의사는 가망이 없다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울면서 의사에게 매달렸다. 의사는 매정하게도 집으로 돌아가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부부는 불안한 심정으로 병원을 떠나지 못하고 응급실에서 밤을 새우고 다음 날 아침 여주로 향했다.


여주에 도착한 부부는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아들을 두고 어찌해야 할지 난감했다. 아들이 숨을 쉬는지 마는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어머니는 차갑게 식어가는 아들을 끌어안고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의원으로 갔다. 나무토막같이 변한 아이를 살피던 의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머니는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하였고 아버지는 송장이나 마찬가지인 자식을 안고 의원을 나섰다. 하늘은 야속하게도 부부의 머리 위로 봄비를 뿌렸다.



‘이 녀석에게 효도하라고 이름 끝에 효(孝)를 넣었건만…….’ 홀로 중얼거리는 아버지 얼굴에 빗물과 눈물이 섞여 흘러내렸다. 어머니는 이 모든 상황이 당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는지 아버지 뒤를 따르며 흐느꼈다.



그때 어머니 흐릿한 시야에 단골 약방 간판이 들어왔다. 평소에도 가족의 건강을 책임지던 약방이었다. 어머니는 스치는 영감이 있어 아버지에게 약방을 가자고 했다. 아버지는 의사도 못 고치는데 약사가 어찌 고치겠냐며 집으로 가자고 했다. 어머니의 강력한 주장에 아버지는 약방으로 들어섰다.



약사는 어머니의 자초지종을 듣고 두툼한 서양 의학서적을 보고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아기를 살펴보았다. 그는 다시 한번 두툼한 서적을 들여다보고 나서 약을 조제했다. 약사는 어머니에게 우선 한 봉지를 젖에 개어 아기에게 복용케 했다.



어머니는 자식에게 억지로 약을 먹이고 시오리 신작로를 걸어 집으로 향했다. 서천에 초승달이 걸리고 소쩍새가 피를 토했다. 길가에도 찔레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집에 거의 다 도착할 무렵이었다.



아버지 등에 업혀 있던 아들이 웅얼거리기 시작했다. ‘이 녀석이 마지막으로 무슨 말을 하려나 보다’. 아버지는 집에서 자식의 마지막을 맞게 하고 싶었다.



집에는 할머니와 큰아버지 내외 그리고 사촌 형들이 잔뜩 긴장한 상태로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다급한 심정에 또 젖을 짜서 아들에게 약을 먹였다. 아버지는 큰아버지와 막내가 죽으면 즉시 청마루 증조부 묘소 근처에 묻자고 하고 곡괭이, 삽 등을 준비했다.



어머니는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올려놓고 천지신명께 빌었다. 그렇게 지루한 밤이 흐르고 있었다. 지성이면 감천(感天)이란 말이 맞다.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와 정성에 천지신명의 감응이 있었다. 동녘이 밝을 때쯤 아기는 배가 고픈지 자리에서 일어나 방안을 기어 다니고 있었다.


아들은 중학생이 될 때까지 늘 입에 약을 달고 다녔다. 20년이 꿈결처럼 흐른 어느 겨울밤, 어머니는 아들이 저승과 이승을 넘나들 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들은 큰 충격을 받고 한동안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나는 그 약국을 가봤지만 은인은 이 세상 분이 아니었다.


오월이 되면 찔레꽃 향기를 맡으며 남녘 하늘을 바라본다. 그때 자식을 살리기 위해 고생하신 아버지와 어머니, 어린 목숨을 구명해 주신 그분을 그리며 명복을 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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