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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은 적을수록 좋다

by 최재효

[에세이]











벗은 적을수록 좋다






몸이 재고 신체의 모든 기능이 활발할 때 친구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가정을 꾸리기 전까지 나는 친구들과 일심동체였다.



세르반테스의 글을 보고 깨닫는 것이 있었다. 그의 대표작 돈키호테, 작품 속 주인공 돈키호테에게는 과연 진정한 친구가 몇이나 될까? 그는 기사(騎士)에 대한 소설을 많이 읽어 점점 상상 속에 빠져들게 되면서 그 자신이 편력 기사임을 깨닫게 된다.



순력을 떠나는 돈키호테에게는 하인 산초 판자와 꿈속의 여인 둘시네아 델 토보소가 있을 뿐이다. 신부(神父), 이발사, 공작부인 등 나머지 사람들은 돈키호테를 놀리거나 그의 엉뚱한 행동을 은근히 즐기는 부류들이다.



요즘 들어 틈만 나면 빛바랜 앨범을 들춰본다. 나는 아직 해야 할 일들이 많이 남아있는 편이다. 딸들도 결혼을 시켜야 하고 정년퇴직 전에 설계한 계획대로 움직여야 하는 등 심적으로 무척 바쁘게 살고 있다.


세월의 터널을 통과하면서 뇌리에 쌓여 있는 추억이 상당히 많지만 모두 유쾌한 것은 아니었다. 연애, 군대, 졸업, 취업, 결혼, 가장(家長) 등 대개가 이웃의 여느 사람들과 비슷한 내용에서 파생한 스토리다.



다다익선이란 말이 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청춘에는 주변에 가까이 지내는 친구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그 시기에 나는 친구를 위한 인생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눈뜨면 친구들과 어울려 밤늦도록 붙어 지내니 과연 벗을 위한 고매한 시기였다고 할 수 있겠다.



여자 친구보다 불알친구가 더 좋았던 그 시절을 생각해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동성 친구가 무엇이 그리 좋았던 것일까. 고향에 가면 친구들을 만나 밤새 주점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거나 잡기를 즐기면서 우정과 의리를 외쳤다.


가정을 꾸리면서 영원할 것 같았던 우정은 서서히 변질하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이 물질에 길들면서 나는 합일보다 단일을 추구하려 들었고, 차츰 나만을 위한 철옹성을 쌓아갔다. 나의 일상은 우정 대신 냉정으로 기울고 세인들과 같은 시선을 가지게 됐다.



황금이 의리보다 앞서 있는 시대에서 우정은 족쇄가 되기도 하고 계륵으로 변해갔다. 돈 앞에서 문경지교는 헛구호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 나를 슬프게 했다. 돈으로 인하여 받은 상처는 오래갔다.



내 혈관에 푸른 피가 흐를 때 하늘은 늘 파랗고 먼 산도 사철 녹음으로 울창했었다. 철옹성이 완성되어 가면서 자주 비가 내리고 짙은 운무가 끼며 우정은 사전 속 단어가 되었다.



어떤 우정은 돈에 의해 산산 조각났고,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기도 했다. 이상 세계를 꿈꾸던 돈키호테가 편력을 다 마치지 못하고 돌아오듯 진정한 우정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의문이 일었다. 우정이라는 미명에 감춰진 조소(嘲笑)가 세상에 널려 있다.



Give and Take가 철저하게 적용되는 기류 속에서 대한민국의 의식은 흐르고 있다. 집안 대사(大事)를 몇 번 겪다 보면 그 진리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그 친구는 꼭 올 줄 알았는데…….’



서운한 감정은 곧 인간관계 정리로 이어지게 된다. 차라리 손해 보고 사는 게 마음 편하다. 타인에게 상처를 준 사람은 다리 뻗고 잠들지 못한다.



문전성시는 상당한 인내와 배우자의 깊은 이해심이 있어야 가능하다. 인내와 이해심이 세월에 반비례하는 게 보통이다.


이순을 훨씬 넘긴 나이에도 전국을 안방 드나들 듯하며, 온갖 벗들의 대소사에 얼굴을 내미는 분들이 주변에 상당히 많다. 그런 분의 대소사에는 당연히 많은 발걸음이 이어지며 문전성시를 이룬다.


하지만 문제는 당사자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때 그의 집안에 큰일이 생길 경우이다. 가족들은 의리와 우정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고인의 벗들 변심에 큰 상처를 입게 된다.



지천명의 문턱을 넘었다면 주변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미적거리다가 큰 상처를 입을 수 있다. 10년 넘게 연락이 없던 옛날 벗에게서 갑자기 연락을 받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거의 경조사를 알리는 내용이다. 투망식으로 뿌려대는 카카오톡이나 문자는 바로 버리는 게 좋다.



옛정을 생각해 약간의 정성을 보이기는 하지만 퍽 유쾌하지는 않다. 또 어떤 경우는 기억도 나지 않는 우정을 들먹이며, 연락을 해오는 때도 있다. 그러한 일이 발생할 때마다 나는 친구가 과연 무엇일까를 고민한다.



인생에 경륜이 쌓이고 사려와 판단이 성숙하여 남의 말을 받아들일 줄 아는 나이를 이순(耳順)이라고 했다. 과연 이 말이 마구잡이식으로 뿌려대는 애경사 카카오톡과 문자 홍수 속에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협잡이 만연한 요즘 ‘남의 말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인가. TV를 보면 골격이 좋은 남자 연예인이 ‘의리’를 들먹이는 광고가 있다. 현실과 약간은 동떨어져 보이는 내용이 오히려 반갑기도 하다. 본성이 착한 한국 사람들이 싸구려 ‘의리’ 때문에 멍들고 있다.



많은 친구가 있다는 것은 곧 그 사람의 인적 네트워크가 풍성하다는 말이리라. 그러나 눈에 보이는 인적자원은 오래가지 못한다. 건강과 돈이 인적자원을 확장하거나 유지하는 데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자원이 고갈되면 벗도 신기루처럼 된다.


어떤 상갓집을 가보면 수백 개의 조화(弔花)가 장식된 광경을 본다. 그 조화 하나하나가 바로 인적자원의 풍성함을 대변한다. 부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집 자손이 그동안 흘렸을 피땀과 발품에 연민의 정이 간다.


돈키호테에게는 친구가 없다. 그러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주변인은 여러 명이 있다. 그의 종자 산초 판자는 돈키호테가 부와 권력을 약속하면서 자신의 기사 편력에 동참하도록 꼬드긴 시골뜨기 농부에 불과하다.


꿈속의 여인 둘시네아는 델 토보소 마을에 사는 농부의 딸로 돈키호테의 감정을 전혀 알지 못한다. 페로페레스 신부는 돈키호테의 지인으로 돈키호테를 정신 이상에서 구하려고 애쓰는 인물이다.



이발사 니콜라스는 역시 돈키호테의 지인으로 신부와 돈키호테를 정신 이상에서 구하려고 애쓰기는 하지만 진정으로 돈키호테를 아끼고 진심으로 대하는 벗은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돈키호테가 아닌가? 자신의 이상 세계를 향해 질주하는 무모하고, 정신 이상자로 묘사된 작품 속 돈키호테는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는 그의 성정에 근접하고 있으면서 야망을 위하여 달리고 있는…….


자신이 병들고 힘없으면 아지랑이처럼 떠나갈 인사들이란 생각이 들면 빨리 작심하는 편이 좋을 듯하다. 한 사람 두 사람 정리하다 보면 주변에 아무도 없다.



그것이 인생 아닌가. 이 세상에는 나 혼자 왔고 때가 되면 나 혼자 돌아가야 한다. 주변에 새털처럼 많던 벗들도 폭풍우 한 번 치고 나면 대부분 사라지고 없다. 중년에 새로운 벗을 사귀는 일은 권장하고 싶지 않다.



유년 시절의 순수함이 없기에 상대방의 속을 알 수가 없다. 중년에는 소소익선(小小益善), 즉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 다다익선은 새파란 시절에 추구해야 할 무모한 구호이다. 진정한 벗은 옆에 있는 배우자 한 사람으로 충분하다.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풍진을 털기 위해 집에서 가까운 부평 가족공원을 찾는다. 20 만 기(基)가 넘는 유택이 만수산 아래 가득하다. 검은 돌 뒷면에는 고인이 이승에 남겨둔 흔적들이 빼곡하다. 수백수천의 오석(烏石)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벗의 이름을 적은 비문은 없다.



구름처럼 많았던 고인의 벗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밤새워 술잔을 기울이며, 우정과 의리를 소리 높여 외치던 고우(故友)들은 어디 살고 있기에 저 고인은 명절에 술잔도 받지 못하고 혼자 누워 있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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