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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캐가 된 코리언

by 최재효

[에세이]











오랑캐가 된 코리언







오랑캐란, 몽고와 중국 국경 사이에 펼쳐진 고비 사막의 북방 동부에 살던 몽골계 우량카이(Uriankhai) 종족에서 유래한 이민족에 대한 멸칭이다.



이 호칭은 옛날 명나라 사람들에 의해 북방 야만족을 가리키는 대명사가 되었고, 조선에서도 '오랑캐'로 불리기 시작했다. 우량카이족 입장에서는 자신들 부족 명칭이 조선에서 조차 야만족의 대명사가 되었으니 얼마나 억울할까.



오랜 세월 동방예의지국 사람들이 가장 혐오하고 기피했던 대상이 오랑캐였다. 지정학적으로 어쩔 수 없이 지나인(支那人)과 얼굴을 맞대고 살아야 하므로 참고 지내왔지만, 구밀복검의 의식에는 변함이 없다. 북방 오랑캐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우습기 짝이 없다.



그들은 말도 안 되는 구실을 붙여 옛날부터 우리 민족을 구이족(九夷族), 동이족(東夷族)이라고 불렀다. 이(夷) 자가 바로 ‘오랑캐’ 아닌가? 자신들은 세상의 중심이라 하고 한민족을 ‘동쪽 오랑캐’라고 불렀다.


그뿐만 아니라 서융(西戎)이라 하여 아랍계나 티베트 등 서역 사람들을 ‘서쪽 오랑캐’라고 불렀고, 남만(南蠻)이라 하여 베트남이나 크메르, 라오스, 태국 사람들을 ‘남쪽 오랑캐’라 불렀으며, 북적(北狄)이라 하여 몽고나 여진(女眞), 돌궐(突厥), 거란(契丹)을 ‘북쪽 오랑캐’라 불렀다.



즉, 자신들만 제외하고 동서남북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수많은 민족에게 ‘오랑캐’라는 더러운 이름을 붙여 깔보고 무지한 종족으로 멸시해 왔다. 최근에 혹자는 북방 오랑캐를 한민족의 일원으로 보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우리 뇌리에 불순한 무리로 각인된 덕분인지 오랑캐란 단어에 배타적이며 친숙하지 않다.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예전에 아비가 없거나 버릇이 없는 아이들을 ‘호로자식’이라고 불렀다.


한민족에게 호로(胡虜)란 우리를 괴롭혀 온 여진이나 몽고 등 대륙의 북방 족속들을 가리킨다. 10세기 초반부터 17세기 중반까지 호로들이 세운 국가가 차례로 우리를 고통에 빠트렸다.



거란 오랑캐가 세 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범하여 선량하게 살아가는 우리 조상들을 괴롭혔고, 이어서 몽고 오랑캐가 원제국을 건설하여 일곱 번에 걸쳐 고려 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조상들에게 하해와 같은 눈물을 강요했다.


이어서 한동안 몽고의 칼날 아래 숨죽이던 여진 오랑캐들이 청(淸)이라는 나라를 세워 우리를 괴롭혔다. 병자호란 당시 오랑캐 두목 홍타이지[皇太極]는 서울 송파 삼전도에서 인조에게 *삼궤구고두례(三跪九叩頭禮)를 받았다. 게다가 패전으로 수많은 조선의 젊은이가 포로로 끌려갔다.



* 삼궤구고두례 - 3번 무릎 꿇고 9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법이라는 뜻.


그 이전에도 한민족은 한나라, 위나라 등 북방 오랑캐에게 여러 번의 침입을 받았고, 고구려와 백제는 당(唐) 오랑캐의 침입을 받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렇게 수도 없이 우리 조상들은 오랑캐라 통칭하는 무지한 족속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4백 년 전 열도의 왜 오랑캐들이 신성한 강토에 검은 발자국을 남겼고, 3백 년 후에 또다시 그들에게 짓밟히는 수모를 당했다. 그 수천 년에 걸친 이민족의 침범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사람들이 바로 누이들이었다.


고조선, 부여, 고구려, 신라, 백제, 발해, 고려, 조선이라는 역사의 수레바퀴가 도는 동안 얼마나 많은 누이가 흘린 통한의 눈물이 강이 되고 바다가 되었을까. 패악한 오랑캐들이 금수강산에 쳐들어오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전리품 쟁탈전이었다. 전리품 중에서도 최고의 전리품은 젊은 여인이었다.


정복자가 된 오랑캐들은 어여쁜 금수강산 여인을 차지하기 위해 자기들끼리 칼부림을 하는가 하면, 포로로 잡아가지 못하는 여인을 강간이나 윤간하여 원치 않는 아이를 배게 하였다.



몽고나 청나라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비싼 속가를 치르고 돌아온 환향녀(還鄕女)의 뱃속에도 오랑캐 씨앗이 있었다. 전쟁 중에 오랑캐의 강간으로 잉태하여 태어난 아이가 바로 ‘호로자식’ 이다.


힘 없고 당파싸움으로 국론 분열된 나라의 아녀자들은 희생양이 되었다. 호로자식은 평생 주위의 멸시와 천대 속에 숨을 죽이고 살아가야 했으며, 호로를 낳은 여인은 눈물 속에 죽지 못해 살아야 했다. 그야말로 모자의 일생이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최근에 일부 젊은 동포들이 스스로 오랑캐임을 증명해 보이고 있는 듯하여 속이 쓰리다. 1960년대 우리 국군과 기술자들이 대거 월남전에 참전하였다. 1965년부터 월남이 패망하기 전인 1975년까지 우리 기술자들은 월남에 ‘라이따이한(Lai ĐạiHàn)’이라는 부산물을 만들어 냈다.



한국 국적의 원양어선이 빈번히 드나들던 남태평양의 섬나라 키리바시와 남미의 파라과이 등 세계 곳곳에도 부끄러운 씨앗을 남겼다. 1950년 한국 전쟁 중에도 수많은 누이가 호구지책으로 양공주가 되어 육중한 아메리칸의 몸뚱이를 받아 내야 했다.


얼마 전 매스컴에 보도된 P국의 경우는 충격이다. 연수를 간 학생들이 현지 여인들과 스스럼없이 육욕의 향연을 벌인다고 하는데 부모들은 자식들의 야만적 행위를 알고 있기나 할까. 더욱 부끄러운 일은 순진한 이국 아가씨들에게 씨앗을 뿌려놓고 나 몰라라 도망쳐오는 파렴치한 일에 그만 숨이 턱턱 막힌다.


오랑캐에게 능욕당했던 역사와 일본 강점기 정신대에 강제 동원된 민족의 통곡을 젊은 세대들은 까맣게 잊은 걸까. 고등학교 재학시절 P국의 동갑내기 여학생 T.G 그레실을 펜팔로 둔 적이 있었다.



3년간 그녀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나는 한국에 대하여 많은 자랑을 늘어놓았다. 무엇보다 한국인은 예의 바르며 친절하고 근면하다고 자랑을 했다.


한국은 세계 최고의 예의범절이 바로 선 나라로 소위,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별칭이 있다고 수차례 강조하였다. 대학입시 때문에 펜팔은 지속하지 못했지만, 그녀는 한국을 정말로 최고의 예의 바른 나라로 알고 있었다. 아직도 나와 한국을 좋은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을 그레실은 일부 어글리 코리안의 행위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을 듯하다.



‘라이따이한’, ‘코피노(Kopino)'와 ’호로자식‘이 무에 다를 바 있을까. 오랑캐들은 전쟁 중에 우리 누이들을 강간하여 임신을 시켰지만, 공부하러 간 우리 젊은이들과 기술자, 원양어선 선원들 중 일부는 하룻밤의 욕정을 해소하기 위해 돈을 주고 이국 여인들 품었다.


부모님이 피땀 흘려 번 돈으로 무개념의 자식들이 동포의 얼굴에 먹칠하는 현실에 가슴이 아프다. 이국의 여인을 사랑한다고 달콤한 말로 꾀어 실컷 농락하다 아이가 생기니까 나 몰라라 도망쳐온 자식들은 오랑캐나 다름없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오랑캐가 된 우리 젊은이들만 탓할 것도 못 된다.


영어에 한이 맺힌 한국의 중년 부모들의 삐뚤어진 생각이 이 같은 처참한 상황을 만들었다. 자식들에게 영어를 제대로 배우게 하려면 영어를 국어(國語)로 사용하는 국가로 보내야 한다.



마음만 앞서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업자와 자식들의 솔깃한 말에 넘어간 부모들에게 책임이 있다. 자식을 오랑캐로 만든 부모들은 이국의 손자, 손녀가 찾아오면 따뜻하게 돌봐야 함은 당연하다.


이 순간에도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에 인접한 나라에서 북녘 하늘을 바라보면서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그리며 울고 있을 무수한 우리 씨앗들의 눈물을 누가 닦아 줄 것인가. 그 눈물이 복수의 비수가 되어 돌아온다면 어찌하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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