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상봉(父母相逢)
정희왕후는 상감이 한가 할 때마다 대전에 들어 괴산으로 피접 갈 것을 권하였다. 중전이 괴산 지방을 방문하려는 이유는 그곳에 안질에 효과가 있는 약수가 있고 혹시 그곳에 가면 세희공주를 만날 수도 있다는 일련의 희망과 확신이 날이 갈수록 커지기 때문이다. 그녀는 괴산이나 보은 정도 쯤에 세희공주가 살고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최근에는 한양에서 용하다고 소문난 판수를 궁궐로 초빙하여 세희공주와 관련한 것을 물어본 적이 있었다.
'공주님은 충청도에 살아 계십니다. 하지만 정확히 어디 살고 계신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이 부근에 거주하고 있는 게 확실합니다.'
판수는 충청도 전역의 지도를 왕후에게 건넸는데 지도에는 충청도 괴산과 보은 지역이 그려져 있었고 두 지역의 사이에 붉은 점이 찍혀 있었다. 판수의 말을 들은 정희왕후의 마음이 이미 괴산과 보은 지역에 가 있었다. 그녀는 매일 같이 상감을 닦달하다시피하며 피접 갈 것을 요구했다.
또한, 언젠가 옥천현감이 올린 보고가 늘 왕후의 마음을 괴산 고을로 향하게 했다. 그녀는 옥천 현감에게 세희공주의 행방을 찾아보라고 은밀히 지시를 내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옥천 현감은 끝내 세희공주 부부를 찾아내지 못했다. 상감은 국정이 바빠 안 가겠다고 만류하였지만 안질이 점점 더 악화하여 더는 미룰 수 없게 되었다. 진달래가 지고 철쭉이 인왕산을 붉게 물들일 쯤 상감의 피접 날짜가 잡혔다.
조정에서는 상감의 피접 준비에 분주했다. 상감이 공석일 경우를 대비하여 연일 의정부와 6조의 정승들이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였다. 상감의 피접 행차 시에 호위를 맡을 내금위소속 병사들의 숫자와 호위 총책임자 그리고 왕명출납을 담당할 승정원 소속관리들이 정해졌다.
늦봄 경복궁을 떠난 상감의 행차는 한양 중심을 가로질러 노량진으로 향했다. 상감의 행차는 관리와 호위 군사 그리고 궁인 등 수백 명이나 되었다. 한양을 떠난 지 이십 여일 후 상감의 어가 행렬은 충청도 보은 고을을 지나가게 되었다. 부처님을 마음 속에 모시고 있던 정희왕후는 마침 속리산 법주사를 들렸다 목적지로 가기를 상감에게 청하자 상감은 흔쾌히 승낙하였다.
상감의 어가(御駕) 행렬이 속리산 법주사로 향한다는 소식에 인근에 사는 백성들은 모두 나와 길을 깨끗하게 청소했다. 인근에 사는 사람들은 상감의 어가 행렬을 구경한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기다리를 지루함도 잊고 길가에 서서 상감의 행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관아에서 나온 현령들이 아침 일찍 마을 사람들을 닦달하여 지나가는 상감의 어가를 환영하라고 했다. 할 수 없이 세희공주 내외도 두 아이들을 데리고 길가에 나와 있었다. 오후 늦게 상감의 행차대열이 동네 앞을 통과하게 되었다. 상감과 왕비가 어가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때 남매인듯 한 두 아이가 길가에서 놀다가 가지고 있던 장난감이 어가 행렬 앞으로 굴러갔다. 두 아이가 어가 쪽으로 달려 나오자 호위 병사들이 제지하였다. 어가를 호위하는 병사들은 창과 칼로 그리고 활로 무장한 상태였다. 권좌에 앉기 까지 많은 피를 본 상감이라 수 백 명의 완전 무장한 군사들이 어가를 호위했다.
“이놈들! 어서 길을 비키지 못할까? 나라님 가시는 길이니라.”
우락부락한 군관이 두 아이에게 호통을 쳤다. 그 사품에 어가가 잠시 멈추자 상감이 밖을 내다보았다. 그런데 상감이 안질이 심해 앞을 잘 보지 못하는 가운데에도 길가에 서있는 계집 아이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상감의 시선을 따라 정희왕후도 그 아이를 바라보았다.
‘계집아이가 세희공주와 많이도 닮았도다. 사내 아이도 그렇고…….'
상감은 흐릿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손수건으로 눈을 닦아가며 남매를 응시했다. 많은 아이들 중에서도 상감은 유독 두 아이에게만 시선을 주었다.
“어가를 멈추어라. 잠시 바람을 쐬고 가야겠다. 도승지는 저 두 아이를 과인 앞으로 데리고 오너라.“
두 아이가 상감 앞으로 불려오자, 마을 사람들과 엎드려있던 세희공주와 그녀의 지아비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여기 저기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두 아이들이 군사들에게 매를 맞거나 크게 횐이 날것으로 여겼다.
‘아아, 아바마마! 어인 일로 이곳까지 오셨나이까?’
세희공주는 상감의 얼굴을 똑바로 올려다보지 못했다. 원망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보고 싶은 용안이었다. 아버지 옆에 어머니 정희왕후가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얼른 일어나 어머니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세희공주는 꼼짝하지 않고 머리를 조아리며 꿇어앉아 얼른 아버지 어머니가 지나가기를 바랐다.
‘앗, 큰일이다! 애들 때문에 나의 정체가 탄로 나면 우리는 죽은 목숨이다.’
김서방은 좌우를 살피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마을 사람들은 청년을 '김서방'으로 불렀다. 도승지가 두 아이를 상감에게 데리고 왔다. 산촌에서 자란 아이지만 눈이 맑고 무척 똘똘하게 생긴 모습이 상감과 중전의 마음을 훈훈하게 했다.
“얘야, 네 아비와 어미는 누군고?”
상감이 두 사내 아이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손가락을 빨고 있던 사내아이가 상감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만 볼 뿐이었다. 아이는 얼른 대답하지 않고 우물쭈물하였다. 상감과 사내 아이를 지켜 보는 대소신료들과 마을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신료들은 상감이 쓸데 없이 어린 아이에게 말을 걸어 시간을 허비한다고 못마땅해 하는 낯빛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행여 아이가 상감에게 말을 잘못해 벌을 받지나 않을까 드려워했다. 그들은 상감이 어떤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고있었다.
“얘야, 나는 이 나라 임금이란다. 너에게 맛있는 거를 얼마든지 줄 테니 무서워하지 말거라.”
“…….”
“어서 말해보렴. 네 아비와 어미의 이름이 무엇인고?”
상감이 다시 한 번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사내 아이 등을 다독여 주었다. 사내 아이가 용안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상감은 세희공주를 닮은 어린 소녀가 낯설지 않았다.
“울엄마는 세희라고 하구요, 울아부지는 서방님이라고 해유.”
상감은 귀를 의심하고 다시 사내아이에게 물었다. 정희왕후도 아이의 말을 듣고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아가, 다시 한 번 천천히 말해주겠니? 네 아비와 어미의 이름이 뭐라고 했느냐?”
“아참-. 할아부지 귀가 먹었나유? 잘 들어유. 울아부지는 서방님이구유, 울엄마는 세희라구한다니까유.”
“뭣, 뭐라고? 세희? 아가야, 너 방금 네 어미 이름이 세희라고 했느냐?”
“네, 맞구먼유. 울아부지가 늘 엄마를 세희라고 부르구먼유. 또 어떤 때는 여보라고 부르구유.”
“오오, 그러냐? 여봐라! 이 아이의 아비와 어미를 당장 불러오거라.”
‘아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세희공주는 흐느껴 울고 있었다. 관리들의 손에 이끌려 김서방과 세희공주가 상감 부부 앞으로 불려갔다. 세희공주는 어가 앞에 서자마자 공손히 절을 올렸다. 그녀가 상감 부부에게 절을 올리자 엉거주춤하고 서있던 김서방도 상감 부부에게 절을 하였다. 아비와 어미가 상감에게 절을 하자 두 아이는 덩달아 절을 하였다. 상감 부부와 공주 부부는 대여섯 발짝 떨어진 상태여서 서로의 얼굴을 정확하게 볼 수 없었다.
‘이게 무슨일인가? 생전 처음 보는 산골의 여인과 사내 그리고 아이들이 어인일로 과인에게 절을 한단 말인가? 참으로 이상한 일이로다. ’
상감은 두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정희왕후 역시 사정을 몰라 어리둥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중신들과 호위 군사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여인은 과인을 똑바로 보라.”
“…….”
세희공주는 조용히 흐느낄 뿐이었다.
“여인은 어서 상감마마께 얼굴을 보이거라.”
도승지가 세희공주에게 다가가 소리쳤다. 그 사품에 공주는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키고 얼굴을 들어 상감 부부를 올려다 보았다. 이제는 자신의 정체를 숨길 수 없음을 감지한 세희공주는 상감에게 이실직고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바마마, 소녀, 소녀, 세희입니다.”
상감은 뭔가 잘 못 들었을 거라고 생각하였다.
“여봐라! 저 여인이 방금 뭐라고 하였느냐?”
상감이 정희왕후와 도승지를 바라보며 물었다.
“소녀, 아바마마의 장녀 이세희입니다.”
“뭐라고? 네가, 네가 진정 내딸 세, 세희가 맞느냐? 어디 자세히 좀 보자.”
이세희라는 말에 상감과 정희왕후은 어가에서 내려와 공주에게 다가가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 보았다. 비록 입고 있는 옷은 평민의 복장이었지만, 상감과 정희왕후는 금방 자신의 혈육을 알아보았다. 안질이 심해 바로 앞에 있는 사물도 똑바로 볼 수 없는 상감은 손수건으로 두 눈을 닦고 천천히 세희공주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이미 그의 두 눈은 눈물로 갈쌍갈쌍한 상태였다.
“진정, 네가 세희, 과인의 큰딸 세희가 맞느냐?”
“세, 세희야. 어미다. 네가 여기서 살고 있었구나.”
딸을 한 눈에 알아본 정희왕후는 눈물부터 쏟아냈다.
“아바마마, 어마마마! 불효막심한 딸의 절을 받으세요.”
세희공주가 다시 상감 부부에게 절을 올리려고 하자 정희왕후가 세희공주를 일으켜 세우며 딸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서로를 바라보는 모녀의 얼굴은 눈물 범벅이 되어 있었다.
“진정, 네가 과인의 큰딸 세희로구나.”
“아바마마, 어마마마! 소녀 그동안 문우 엿쭙지 못해 송구하옵니다.”
“세희야! 아이고 세희야!”
정희왕후는 연신 딸의 이름을 불렀다.
“네가 정녕 이세희가 맞느냐? 내 딸 세희가 맞느냔 말이다. 흑-.”
정희왕후가 세희공주를 끌어안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하자 상감도 털썩 주저앉아 흐느꼈다. 그 사품에 신하들과 마을 사람들은 무엇이 어찌된 것인지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냉혈한의 상감이었다.
“세희야, 정말로 네가 세희가 틀림없구나. 정말로 내 딸, 세희가 맞구나.”
“아바마마-.”
마을 앞길은 갑자기 울음바다가 되었고 어가를 호위하던 관리들과 마을 사람들은 상감과 중전이 촌부를 끌어안고 우는 모습에 어안이 벙벙한 모습들이었다. 사태를 금방 파악한 중신들과 어가를 호위하던 군졸들도 부녀 상봉을 바라보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내가, 잘못했다. 세희야, 못난 아비를 용서해다오. 그 동안 나는 늘 너를 잊지 못하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았다. 이제, 이 아비를 따라 한양으로 가자.”
“세희야, 아바마마께서는 이미 모든 걸 용서하셨단다. 이 어미를 따라 한양으로 가자.”
상감 부부는 세희공주에게 한양으로 가자는 말부터 꺼냈다. 하지만 그녀는 못 들은 체 하였다.
“아바마마, 어마마마, 소녀의 지아비와 아이들입니다.”
“소신, 상감마마와 중전마마께 인사올립니다.”
“오오, 부마! 잘 생겼도다. 정말로 늠름한 조선의 대장부로다.”
상감은 김서방을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정희왕후도 김서방의 얼굴을 살펴보더니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사위, 참으로 잘났어요. 정말이지 사내다운 기운이 철철 넘칩니다. 내가 사위 하나는 잘 얻은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부족한 공주를 은애하며 잘 살아줘서 정말로 고맙고 또 감사합니다.”
정희왕후는 김서방의 두툼한 손을 잡더니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김서방은 상감과 정희왕후 앞에서 쩔쩔매며 눈을 아래로 내리 깔았다. 그는 그 와중에도 행여 자신이 절재(節齋) 김종서의 손자라는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웠다.
김서방은 두려움을 애써 감추고 두 아이들과 다시 한번 상감 내외에게 큰 절을 올렸다. 정희왕후는 두 아이를 꼭 안아주었고, 상감은 김서방의 등을 다독거려 주었다. 상감과 정희왕후는 혈육의 상봉에 너무 기뻐 어찌할 줄 몰랐다. 정희왕후는 상감의 피접을 핑계로 괴산 지방으로 온 보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도승지는 부녀의 상봉이 길어질 것 같자 서둘러 길가에 임시로 포장을 치게하고 자리를 마련했다. 중신들은 마을 사람들에게 다과를 마련하게 했다. 갑자기 마을 남녀노소는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세희는 아비와 어미가 법주사에서 불공을 드리고 초정리에 다녀 올 동안 한영으로 떠날 차비를 하거라. 이 아비와 궁궐로 돌아가자. 돌아가서 그동안 못 다한 아비 노릇을 할 수 있게 해다오."
“…….”
“세희야, 이 어미를 따라 한양으로 돌아가자.”
“…….”
“도승지는 세희공주가 과인과 함께 한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준비를 하라.”
상감의 행차는 법주사로 향했고 공주 가족은 집으로 돌아왔으나 충격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상감의 명에 의해 승정원 관리 한 명과 내금위 소속 병사 네 명이 마을에 남았다. 그들은 세희공주가 상감을 따라 한양으로 갈 수 있도록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이틀 만에 이삿 짐을 모두 꾸려 한양으로 떠날 준비를 마치자 김서방은 불안해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