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 고을에 터를 잡다
세희공주 일행은 동학사를 출발하여 여러 날 걸어서 충청도 보은군 속리산 자락 한 산촌에 도착하였다. 산촌이라고 해야 고작 민가 열 채 정도가 전부였다. 산세가 워낙 험한 지역이라 논농사는 지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멀리 천황봉이 아득하게 보이고 병풍처럼 산이 둘러싸고 있어 마을은 사람 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아보였다. 그림에서나 볼 수 있는 진경(眞景)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었다.
서서히 날이 저물고 있었다. 하룻밤 묵을 장소를 정해야 했다. 청년이 마을에서 가장 규모가 커 보이는 한 민가를 찾았다. 마침 앞 마당에서 촌로들이 농기구를 수리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청년이 헛기침을 하면서 촌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어르신,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촌노들은 청년을 본체만체 했다. 그들은 외지인들이 찾아오는 게 반갑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떤 날은 외지인이 다녀간 뒤 곧 바로 관군이 들이 닥치기도 했다. 관군들은 촌노들에게 다짜고짜 외지인들이 간 곳을 대라고 윽박질러대기 일쑤였다. 인심 한번 썼다가 곤욕을 치른 촌로들은 청년에게 냉랭했다.
“어르신,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이 동네는 보시다 시피 민가 서너 채 밖에 없수. 재워줄 수도 없고 먹을 것도 없으니 어서 가던 길을 가슈. 우린 바쁘우.“
촌노들은 청년이 묻기도 전에 몇 마디 던지고 휑하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각자의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청년은 어이 없는 표정을 지으며 한 촌노의 집 대문을 두드렸다.
“어르신, 잠시 말씀 좀 엿쭙겠습니다.”
청년이 대문을 두드렸으나 집안에서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해가 서서히 서산으로 기울면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였다. 봄바람 치고 너무 차가웠다. 청년은 멀리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공주와 유모를 의식했다. 촌노의 협조를 구하지 못하면 다른 마을을 찾아 산길을 걸어야 했다. 청년은 촌노에게 엽전 몇 푼 집어 주고서라도 마을에서 하룻밤 묵어야 했다. 주변에는 주막이 보이지 않았다.
청년은 집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하고 살며시 대문을 밀었다. 빗장이 질러져 있지 않아 다행이었다. 안채에서 마당을 쓸던 노인이 무단 침입한 청년을 보자 질겁하였다.
“주인 허락도 없이 남의 집안으로 들어오다니. 어서 나가슈. 어서요.”
“어르신, 저는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제 말씀 좀 들어 보세요.”
청년이 두손을 싹싹비비며 촌노에게 굽실거렸다.
“들어보고 말고 할 거 없수. 난 지나가는 과객에게 은혜를 베풀 위인이 못되니 어서 가던 길을 가슈.“
청년은 말로 통할 것 같지 않아 엽전 한 꾸러미를 슬쩍 내보였다.
“저는 이 마을에 살러 온 사람입니다. 오늘은 날이 저물었으니 어르신 댁에서 하룻밤 묵고자 합니다. 그냥 재워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엽전 꾸러미를 본 촌노의 태도가 금방 달라졌다. 깊은 산골에서 돈을 구경하기란 하늘에 별따기보다 어려웠다. 겨우 소작을 일궈 먹고살기도 빠듯한 산촌 사람들에게 돈은 생명 줄이나 같았다.
“방이 있긴 하오만 누추해서…….”
“괜찮습니다. 바람만 막을 수 있으면 됩니다.”
“그, 그러면 저기 저 방으로 드시구려.”
노인이 가리키는 방은 소 외양간 옆에 붙은 작은 방이었다. 촌노의 집은 초가집이지만 안에 들어와 보니 그런대로 괜찮아보였다. 청년이 얼른 공주와 유모를 데리고 들어왔다. 세 사람이 좁은 방에서 기거하기는 곤란했다. 청년이 노인에게 사정하여 간신히 방 하나를 더 구하고 저녁을 부탁했다. 물론 엽전을 노인에게 건넸다.
방은 좁았지만 두 사람이 하룻밤 묵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아랫목에 낡은 이불이 깔려있어 방안에 온기를 조절해 주고 있었다. 방에 들어와 앉으니 긴장과 피곤이 풀리는 듯 했다. 청년은 자신을 믿고 먼길을 따라 온 공주가 측은했다.
“공주, 오늘은 이곳에서 묵으며 앞날을 의논 해 봅시다.”
“서방님, 공주라는 호칭은 쓰지마셔요. 그냥, 부인이라고 하던지. 세희라고 불러주세요. 누가 들을까 두렵습니다. 아직도 관아에서 전국 곳곳을 들쑤시고 다니는 것 같아요. 조심해야 합니다. 옥천에서 당한 봉변을 또 반복할 수 없잖아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때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녁상입니다. 문 좀 열어주시구려."
촌노의 처가 산채와 옥수수로 된 저녁상을 들고 문 밖에 서있었다.
“찬은 변변치 않으나 그런대로 요기는 될 거유.”
시골 인심도 많이 변해 엽전이라도 몇 푼 집어줘야 뜻이 통했다. 예전에는 지나가는 과객이 날이 저물어 하룻밤 신세를 지자고 하면 집 주인들은 군소리없이 방을 내주고 밥까지 제공하곤 했다. 하지만 날로 인심이 사나워지자 이제는 그같은 일은 옛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그동안 이 집을 다녀갔을 무수한 과객들의 낙서가 벽에 가득했다. 한시(漢詩)를 써놓거나 자신의 신세를 한탄 하는 내용 등 다양한 과객들의 고된 삶이 벽에 고스란히 그려져 있었다.
“미안해요. 나를 믿고 이곳까지 왔는데 거친 음식을 들게 했습니다.”
“서방님,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저는 서방님과 함께라면 모래를 씹어도 괜찮습니다. 그러니 개의치마세요. 밥맛이 좋습니다.“
“공주, 아니 부인, 고마워요.”
사나흘을 쉬지 않고 걸은 덕분에 발이 퉁퉁 부르텄다. 세희공주는 미지근한 물을 떠와서 청년의 다리와 발을 씻겨주었다. 공주의 부드러운 손이 청년의 발과 종아리에 따뜻한 정을 전했다.
“세희, 고맙소. 내가 할 테니 좀 쉬어요.”
“제가 서방님의 피로를 풀어드리고 싶어서 그래요.”
공주가 청년의 발을 씻기고나자 이번에는 청년이 공주의 다리와 발을 씻겼다. 청년은 지난 며칠 동안 긴 동굴 속을 헤맨 것 같았다. 공주와의 갑작스러운 혼사와 옥천에서의 봉변 그리고 동쪽으로 이동하던 중에 접한 조선 국모의 친서(親書) 등 사내는 잠자리에 들었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오면서 가만히 살펴보니 우리가 정착해 살 곳이 여기 같습니다. 이곳은 처음 와 본 곳인데도 왠지 낯설지가 않아요. 중전마마의 서찰에도 우리가 마음이 편한 곳이 나타나면 그곳에 정착하라고 하셨습니다."
“서방님, 그럼 이곳에 터를 잡아요. 내일 집주인에게 며칠 더 묵겠다고 양해를 구한 뒤에 이 마을에서 살 집을 알아보셔요.“
“그래야 할 것 같소.”
청년이 공주를 살며시 안아주었다. 아무리 피곤하다고 하지만 젊은 육신은 그냥 자는 것을 거부하였다. 청년의 억센 손이 공주를 지분거렸다. 청년의 육중한 나신(裸身)이 연약한 육신을 지그시 누르며 속삭였다.
“부인, 사랑하오.”
청년이 공주 품을 파고들었다. 방안은 금방 열기에 휩싸였다. 여인의 나지막한 신음이 문 밖으로 흘러나갔다. 하늘에 반달이 은은하게 떠서 속리산 자락을 은빛으로 물들여 놓고 소쩍새는 산촌 가까이 내려와 밤새도록 울었다.
다음 날 청년은 주인에게 자초지종을 말하고 며칠 더 묵겠다고 하자 주인은 흔쾌히 승낙하였다. 엽전의 위력이 다시 한 번 입증되었다. 청년은 주인과 함께 인근 동네를 돌아다니며 집을 구하러 다녔다.
다행히 가까운 곳에 빈집이 있었다. 거의 헐값에 집을 구한 공주 일행은 집을 청소하고 수리하여 그럴듯하게 단장시켜 놓았다. 내친김에 패물을 일부 정리하여 농사 지을 경작지를 마련하였다. 청년은 마을 사람들을 초대하여 조촐한 잔치를 열었다. 그는 대처에 살다가 산촌이 마음에 들어 정착하여 자식 낳고 오래오래 살 예정이라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손뼉을 치며 청년을 환영했다.
청년은 마을 대소사마다 참석하여 사람들의 인심을 얻었다. 관아에서 몇 차례 호구조사차 다녀갔지만 그때마다 고급스러게 만들어진 호패가 그들을 지켜주었다. 그렇게 서너 해가 아무 일 없이 흘러갔다. 그 사이에 공주 는 아들과 딸을 낳았고 부부는 산골 사람이 되어 대처의 시름을 잊어가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도 이제는 공주 부부를 좋은 이웃으로 인식하며 살갑게 대해주었다. 세희공주는 먹을 것이 생기면 이웃들과 나누었다. 또한, 이웃에 애경사가 있으면 부부는 자신의 일인양 발벗고 나서서 적극 도왔다.
“부인 고맙소. 당신 덕분에 끊어질 뻔한 가문의 대를 잇는구려.”
“김씨 문중에 시집을 왔으니 당연한 일인걸요. 모두 서방님의 홍복입니다.”
조정에서는 살벌한 피바람의 상흔을 잊기 위히여 다양한 위민 정책을 내놓았고, 상감은 내치(內治)에 정성을 쏟았다. 중전과 함께하는 술자리에서 상감은 자주 세희공주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곤 했다. 그런 상감을 곁에서 지켜보는 정희왕후 윤씨 역시 가슴이 아려왔다. 당장 세희공주가 살아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좀 더 세월이 흐른 뒤 상감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상감은 중신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왕권 강화책으로 백성들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폐기된 호패법을 다시 복원했으며, 또한 '동국통감'을 편찬해 전대의 역사를 조선 왕조의 입장에서 재조명하였고, '국조보감'을 편수해 태조부터 문종에 이르는 4대의 법과 규약 등을 편집하여 나라를 통치하는 기준으로 삼았다. 또한, 최항(崔恒)으로 하여금 '경제육전'을 정비하게 했으며, 조선 최고 법전인 '경국대전'의 찬술케 했다.
정희왕후는 세희공주의 소식이 궁금했지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으며 평온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오래전 옥천 현감이 자신에게 은밀히 보내온 보고 문서를 접한 뒤 공주가 보은이나 괴산 또는 상주의 어느 고을에 터를 잡고 살고 있을 것이라 짐작을 하였다.
그러나 날로 악화 되가는 상감의 안질(眼疾) 때문에 중전 정희왕후는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중전이 어의(御醫)와 상의하여 충청도 괴산 땅 초정리로 피접을 가기로 하였다. 그곳에서 나는 약수가 안질에 좋다고 소문이 났기 때문이었다. 중전 윤씨는 그곳에 가면 혹시 딸의 소식을 접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도 있었다.
“상감, 내달에 충청도 괴산 초정리라는 곳에 안질에 좋은 약수가 있다고 하니 피접(避接)을 가심이 어떠하신지요?”
정희왕후가 상감의 의중을 물었다.
“정사(政事)를 봐야하는 과인이 그 멀리까지 어떻게 피접을 간단 말이요?”
상감은 충청도 괴산이라는 말에 떨떠름한 안색이었다.
“상감, 정사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상감의 옥체보존이 더 중요합니다. 안질을 방치하시다가 더 악화하여 앞을 못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자신이 맹인이 될 수도 있다는 말에 상감은 깜짝놀랐다. 안질이 오래 되긴 했지만 차마 앞을 못 볼 정도로 악화할 것이라곤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과인이 앞을 못 본다고요?”
“어의가 그리 진단을 하였어요. 그러니 다음 달 피접을 다녀오세요. 제가 동행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리다.”
상감은 안질이 점차 악화하는 느낌이 들긴했지만 한양 도성을 장기간 떠나 피접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많은 피를 뿌려 금상에 앉은 뒤로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그가 권좌에 앉고 난 뒤로 뿌린 피는 강을 이루고도 남을 것이었다. 상감은 요즘들어 부쩍 옛 생각이 많아졌다. 특히, 자신으로 인해 요절한 큰딸 세희공주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