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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여자(2)

엉터리 진사

by 최재효

[중편소설]









엉터리 진사









C사에서 만든 하얀색 계통의 70-200mm 고급렌즈를 카메라에 장착해서 들고 다니면 사람들은 은근히 부러워하는 시선으로 나를 쳐다본답니다. 그런데 카메라 성능도 정확히 모르면서 닥치는 대로 셔터를 눌러대는 재미에 점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카메라와 궁합이 딱 맞는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이왕 사진에 관하여 관심을 가졌으니 좀 더 정확한 지식 습득이 필요한 거 같아 주민센타에서 운영하는 사진강의 프로그램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카메라의 성능을 이해하는 게 보통 머리 아픈 게 아니더군요.


나는 카메라는 들고 다닐 힘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시커먼 녀석과 진정한 우정을 나누려면 수학을 잘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갑자기 무슨 생뚱맞은 이야기냐고요? 촬영할 피사체의 황금비율을 설정한 다음 카메라 바디의 조리개 값과 셔터 스피드의 수치를 눈 깜짝할 사이에 머릿속에서 계산해 낼 수 있어야 만인의 추앙을 받을 수 있는 진사가 될 수 있거든요.


학교다닐 때 수학이란 놈에게 기가 죽어 살아온 나의 잔인한 흑역사를 돌이켜 보면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집합, 미분, 적분, 수열, 함수, 코사인, 탄젠트, 루트, 방정식 등등. 그런데 불혹의 나이가 다 된 마당에 다시 수학과 마주하게 되었으니 인생이란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진리를 새삼 느끼게 되었답니다. 수학을 외면하고 카메라를 자동 모드에 맞추고 백날 찍어봐야 늘 그 타령입니다.


그냥 되는대로 찍어 카카오톡으로 사용하는 수준이지요. 이제는 전 국민 스마트폰 덕분에 진사가 되었으니, 사진을 잘 찍고 못 찍고는 문제가 아닙니다. 스마트폰으로도 얼마든지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잖아요. 나는 카메라 설명서를 입수해 열심히 읽고 시험을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의뭉스럽게 생긴 시커먼 녀석은 늘 나를 시험에 들게 합니다.



어느 정도 카메라의 특성과 기능에 대하여 이해하였다고 판단이 들자 아침밥 먹기 무섭게 카메라를 메고 마치 발정 난 개처럼 들로 산으로 발품을 팔았답니다. 나무와 꽃 그리고 산과 들을 닥치는대로 찍었지요. 그런데 아무리 사진을 찍어도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허전함이 무엇인지 깨닫는 데 일 년이 걸렸답니다. 취미가 비슷한 진사(眞師)님들을 따라다니며 공원이나 자연경관이 빼어난 곳에서 모델을 세워 놓고 사진을 찍어보니 정말로 신기하더군요. ‘아, 이거로구나.’ 나는 클럽에 가입하여 한번 참가하는데 10만 원 정도 내고 아름다운 모델의 반라(半裸)나 전라 누드를 찍으면서 소름이 끼칠 정도로 희열을 느꼈답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기가 막히게 예쁜 20대 초반 모델들의 누드나 세미누드는 아무리 찍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았는데 서너 달 찍어보니 고수가 찍은 사진이나 내가 찍은 거나 별반 차이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난 금방 흥미를 잃고 말았답니다. 물론 사진 감별사들이 사진을 살펴보면 기법상의 차이나 심도(深度) 등 다른 면에서 분명한 차이는 있겠지요.


누드를 찍다보면 자괴감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건 도대체 작품을 찍는 것인지 아니면 성인 잡지에 실을 야한 사진을 찍는 것인지, 분간이 안 가는 몇몇 진사들 작품 때문에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요. 물론 저 역시 처음에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켜 가면서 또한 다른 진사님들 눈총을 피해 가며 모델의 성역(聖域)을 찍어도 봤어요.


왜 있잖아요. 완전히 벌거벗은 사진보다 성역을 가리고 마치 뭔가를 갈구하는 표정으로 인간의 내면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물오른 미모의 모델들의 강렬한 자태는 정말 정신적 오르가슴을 맛보게 하지요. 꼭 음양이 결합하는 행위를 해야 희열을 맛보는 것은 아니잖아요.


교합만이 니르바나에 오를 수 있다는 고리타분한 사상을 가진 분이라면 그 분의 배우자는 평생 열락을 맛보지 못했다는 반증일 거예요. 나는 사진을 찍다가 나도 모르게 혼몽한 상태에서 여러 번 정신을 놓은 적이 있거든요. 인체의 겉모양을 자연 그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은 큰 선물이지요.


조물주와 삼신할머니가 내린 천부적 육신을 남에게 거룩한 자세나 혹은 오묘한 자세를 잡아가며 보여줄 수 있는 분은 자신의 육신을 신(神)이 빚어낸 최고의 작품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해요. 남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지녔다는 것은 정말로 축복받은 분에게만 한정되는 일이니까요.


한동안 렌즈를 만지작거리는 일에 몰두하다가 인체 탐구가 시들해지자 시커먼 녀석을 아무렇게나 처박아 두었어요. 고가의 기계가 주인을 잘못 만나 녹슬어 간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안 되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는 많은 고뇌 끝에 그 녀석을 둘러메고 주로 공원을 돌아다니며, 인간들에게 사육되고 있는 온순한 동물이나 맹수들을 닥치는 대로 렌즈에 담아 보았습니다.


내 노트북에 저장된 수만 장의 호랑이, 기린, 사자, 여우, 늑대, 코끼리, 얼룩말을 촬영한 사진을 보시면 입이 벌어질 겁니다. 그런데 움직이는 녀석들을 렌즈에 담으려고 하는 일이 보통 인내와 끈기로는 어림도 없더군요. 도심에서 유명한 빌딩이나 전봇대를 찍어도 제대로 안 나오는 판에 달리는 녀석들을 멋지게 찍는다는 게 초보자에게는 하늘에 있는 별 따기와 같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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