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남자의 항변
[중편소설]
착한 남자의 항변
나는 다시 한번 후둘 거리는 양다리에 힘을 주고 천천히 그리고 침착하게 렌즈에 초점을 맞추었어요.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그녀는 러닝머신의 방향을 바꿔놓고 달리기 하고 있었어요. 등을 내가 있는 쪽으로 돌리고 뛰는 모습은 정말로 환상적이다 못해 몽환적이기까지 했어요.
그녀의 잘 발달한 신체 중심 부분의 육덕이 확연하게 렌즈에 들어오면서 나는 오르가슴에 도달할 때처럼 밭은 숨을 토해내고 심장박동 수가 급히 오르며 오랜만에 희열을 맛볼 수 있었어요.
좌우로 절묘하게 대칭되는 그녀의 찬란한 육덕(肉德)은 오랫동안 금욕생활을 해온 나에게 큰 고통이자 호연지기의 인내를 시험하는 시금석(試金石)이나 마찬가지였어요. 비록 뒷모습이긴 하지만 나의 오랜 세월 억눌린 욕구불만을 해소하고 이성에 대한 환상의 날개를 펼치는 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어요.
촉수에 의한 강제된 희열보다 자연스러운 시각적 이상을 선호하는 나에게 그녀의 뒷모습은 그야말로 신세계를 개척하려는 나의 뉴프런티어 정신을 확고하게 하기에 충분조건을 지니고 있었어요. 30분 이상 제자리에서 달리기 하던 그녀의 등에 촉촉하게 물기가 번지더니 곧 그녀는 상의를 훌렁 벗어던지고 계속 달렸답니다.
그녀의 탄탄해 보이는 젖가슴을 감싸주던 브래지어 끈이 늙은 총각의 시선을 사로잡고 놓아주질 않더군요. 나는 오늘 하루 일어났던 일들을 까맣게 잊고 습관처럼 셔터를 눌러대기 시작했어요. 그녀의 풍만한 하체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몸에 착 달라붙는 흰색 스판덱스 7부 바지는 잠자고 있던 나의 미적 감성과 이성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답니다.
나의 관음적 행동이 사회 미풍양속을 현저히 해치고, 순진한 십 대들의 성도덕을 극심한 혼란에 빠트렸다면 당연히 질타받아도 할 말이 없겠지요. 하지만 은밀히 나만의 공간에서 귀신도 모르게 즐기는 행태에 대하여 지그문트 프로이트나 카를 구스타프융 같은 이는 어떤 새로운 정신분석학적 패러다임을 제시할지 몹시 궁금했어요.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보수층들은 아마 나 같은 사람을 보면 ‘공공의 적’으로 몰아붙이며, 내 목숨까지도 빼앗으려 들었을 겁니다. 성을 억압하면 할수록 나 같은 부류의 인간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겁니다. 나처럼 음지에서 살면서 이 사회에 아무런 해(害)를 주지 않는다면 칭찬받아야 마땅할 겁니다.
만약 음지에서 소리 없이 활동하거나 인도 갠지스강 변에서 뼈를 깎는 고행을 감내하는 이름 없는 성자(聖者) 같은 사람들이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행복추구권을 요구하며, 서울 종로나 명동 한복판을 활보하고 나체 혹은 반나체의 행색으로 가두시위를 벌인다면 참으로 암울한 시국이 될 겁니다. 그러니 정부나 각종 사회단체에서는 음지에서 수행하는 은자(隱者)들의 신경을 건드리는 일은 없어야 해요.
그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이데올로기에 포장된 제도에 하늘이 내려준 아름다운 성(性)이 억압받아왔는지 잘 아시잖아요. 봉건적이고 폐쇄적이며, 또한 수구적 봉건 윤리는 권력자들의 손에서‘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잘 활용됐잖아요. 그러면서 그들은 뒤로는 온갖 해괴망측한 놀음을 탐닉하다 패가망신한 경우를 부지기수로 보아 왔잖아요.
옛날에 성(性)은 그저 생식과 번식을 위한 것이었다면 지금의 성은 쾌락과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하였지요.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봐요. 성적으로 윤택한 생활을 즐기는 자야말로 진정한 천부 인권적 삶의 풍요를 누리는 사람이지요. 그런데 상당수 많은 하이칼라의 뇌리에는 성(性)이란 불결하고 음침한 거라고 각인되어 있잖아요. 아니, 교육받는 과정에서 강제된 것이지요.
자신들은 입으로는 그렇게 떠들어 대면서 뒤로는 정반대의 행동을 하니 정말이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어요. 그런 부류의 사람들에 비하면 나 같은 사람은 정말로 순수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어요. 따라서 홍등가는 필요악이라는 말이 살아 꿈틀거리는 겁니다. 성욕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 욕구 아닌가요?
그 욕구를 해소하는 방법이나 과정이 얼마나 아름답고 로맨틱하냐에 따라 대상자들은 스타가 되어 돈방석에 앉기도 하고 혹은 성폭행이니, 미투(Me Too)니 하는 만백성들이 만들어 낸 올무에 걸려 차가운 수갑을 차고 달빛 교교한 감방에 갇히는 신세가 되기도 하지요. 대표적인 예로 시대를 앞서가던 어떤 유명 시인과 정치인은 손을 잘못 놀렸다는 아름다운 죄명으로 감옥살이하고 있잖아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