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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여자(11)

여장(女裝)을 하다

by 최재효



[중편소설]








여장(女裝)을 하다






성(性)과 관련이 없는 춘향이가 존재하겠어요? 또한, 섹스와 전혀 상관이 없는 로미오와 줄리에가 존재하겠느냐고요? 지고지락의 성은 결국 인류의 궁극적 목적이고, 인류가 자손만대 살아갈 수 있는 씨앗입니다.



그러니까 지극한 신앙심으로 똘똘 뭉친 분이 아니면 대개의 사람은 한평생 성의 니르바나를 얻기 위해 몸부림치는 거죠. 즉, 풀잎에 맺힌 아침 이슬처럼 잠시 존재하다가 해가 뜨면 아쉬움에 사무쳐 사라져야 하는 허무한 인생에게 성은 종교이며 존재 이유랍니다.



그런데 정말로 불안해 죽겠어요. 방금 그녀의 거실을 살펴보았는데 아직도 인기척이 없어요. 지금 시각이 자정이 다 되어 가는데 혹시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어쩌죠? 무슨 특별한 일이야 있겠어요? 매일같이 보이던 사람이 안 보이니 그런 것이겠죠. 오늘은 그냥 자야 할까 봐요.



내일 아침 9시쯤 그녀에게 가보려고요. 방금 생각해 낸 것이 제가 여인이 되는 거예요. 아무런 연고도 없고 볼 일도 없는 남자가 초인종을 누르면 그녀가 놀라잖아요. 제가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장해서 그녀를 찾아가 화장품을 팔러 왔다면 그녀는 분명 문을 열어줄 거예요.



저는 한때 크로스드레써(Cross-Dresser) 클럽의 회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었기에 값비싼 명품들을 좀 가지고 있어요. 원피스, 투피스, 쓰리피스, 가발, 원색 스타킹, 다양한 종류의 하이힐, 루이뷔통 핸드백, 샤넬 제품의 향수들, 각종 화장품이 가득 든 케이스 세 개, 깃털이 달린 모자 등등 원숙한 여성이 꼭 소유해야 할 속옷과 액세서리, 기타 소품들이랍니다.



드높은 창공에서 달님이 크로스드레싱 소품들을 펼쳐 놓고 있는 저를 향해 빙그레 웃으시면서 또 한마디 하시네요. ‘이 녀석아, 정신 차려. 지금 한 여름밤에 무슨 해괴한 짓거리를 하는 거야?’하고 속이 불편한 모습으로 야단을 치고 계시네요. 더 혼나기 전에 얼른 눈을 붙여야겠어요. 나는 전전반측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어요.



오랜만에 단잠을 자고 나니 몸이 개운했어요. 아침 식사를 하고 몸단장을 시작했답니다. 샤워하면서 면도기로 머리를 제외한 내 신체에 난 모든 털을 말끔히 제거하였어요.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은 알코올이 희석되어 혈액 순환이 원활한지 어제저녁보다 그런대로 꽤 괜찮아 보였습니다.



비록 게으른 남자지만 적당한 음식과 운동으로 조절을 잘 한편이거든요. 기초화장 후에 볼연지와 짙은 핑크색의 립스틱과 블루 계열 아이샤도우, 아이라인, 마스카라로 예쁘게 색조 화장을 하고 아끼는 캘빈클라인 제품의 야한 언더웨어를 착용한 뒤에 약간 보랏빛이 감도는 가발을 썼어요. 그리고 눈이 부시도록 하얀 스타킹을 착용했답니다.



거기에 속이 훤히 비치는 실크 계열의 엷은 하늘색 투피스를 입어보았어요. 제가 보아도 영락없는 섹시하고 색기가 뚝뚝 흐르는 미시가 분명하더군요. 저도 모르게 탄성이 터졌어요. 세상에나, 대형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은 제가 보아도 너무 매력적인 거 있죠? 메릴린 먼로의 요염한 자태는 비교도 되지 않아요.



전 너무 신이 나고 행복감에 젖어 콧노래를 불렀어요. 아이린 카라 흉내를 냈다가 머라이어 캐리, 원더걸스, 소녀시대의 야한 율동을 따라 하기도 했어요. 아마 보통 사람들은 제가 남자라는 사실을 알고 저의 이상한 행동을 목격했다면 배꼽을 잡을 테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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