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우리 레인 멤버들은 많이 줄었다. 고령인 살구 님은 작년 초 허리 수술 소식을 끝으로 못 보았다. 하늘, 딸기, 순무 님도 못 본 지 꽤 되었다. 현재 머루-당근-냉이-나-매실 님, 다섯이 고정 멤버고 이 순번으로 수영을 한다. 최근 냉이 님에게 ‘길막’을 당하곤 하는데, 설마 내가 빨라졌을 리 없으므로 냉이 님 기력이 요사이 달리는가 싶다. 실제로 냉이 님은 자주 숨을 몰아쉬며 고된 내색을 한다. 나와 순번을 바꾸는 편이 나을 듯싶지만 냉이 님이 원하지 않는 이상 놔두기로 한다. 80대 초반이지만 정정한 매실 님은 거의 빠지지 않는다. 선생님이 시키는 동작을 다 따라하지는 못해도, 슬근슬근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순풍에 흘러가는 돛단배처럼 유유하다.
그리고 선생님이 새로 왔다. 까무잡잡하고 다부진 체격에 얼굴이 둥글고 눈이 부리부리하고 미소가 상쾌한데…… 어쩐지 도라에몽을 떠올린다(도쌤이라고 하겠다). 도쌤은 상급반-깊은 풀 4개 레인 중에서 실력이 처지는 3, 4등 레인을 담당한다. 젊고 경상도 억양이 있는 말씨를 쓰며 자분자분 잘 가르친다. 무엇보다 노년층이 다수이고 최약체인 우리 (4등) 레인 수강생들을 매우 의욕적으로 가르친다는 게, 매번 새로운-대체로 힘이 드는- 무언가를 거리낌없이 시도한다는 점이 놀랍다. 노인의 몸 상태를 헤아리지 않은 채 무리하게 이끌지도, 그렇다고 쉬엄쉬엄 수월한 동작만 시키지도 않으면서, 꽤 힘들지만 가까스로 할 만한 딱 그만큼의 주문을 부드럽고 야무지게 해나간다. 그 스무스한 스킬이 하도 감탄스러워 나도 배우고 싶을 정도다.
멤버들의 반응도 뜻밖이다. 이전 선생님들이 조금만 새로운 동작을 시도하면 우린 늙어서 못한다고 살살 하자며 고시랑거리거나 대충 편한 자세로 뭉개고는 했는데, 도쌤이 큰 눈을 또랑거리며 찬찬히 설명하면 어떤 힘에 이끌리듯이, 어쩌면 오래전부터 몸속 깊은 어딘가에서는 이런 연습을 바라 왔다는 듯이, 어렵다고 투덜대면서도 순순하게-비록 선생님이 의도하는 그림과는 영 다를지라도- 따르는 것이다.
“발차기를 많이 할 거예요. 누워서 고개 들고 내 발을 봅니다. 발이 올라오도록 힘차게 차세요. 힘차게, 힘차게!…….”
“양팔 접영 하면서 자유형 발차기……. 빨리빨리, 빨리빨리!”
이토록 가열찬 발차기가 얼마 만인지. 한두 바퀴만 돌면 우리는 숨을 헐떡이며 넋이 나간 얼굴이 되고 진정 이대로 괜찮은지 의심이 들지만
“우와, 잘하시는데요!”
도쌤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용기를 북돋아 주고,
“아이고……, 죽겄어요.”
우는소리를 할라치면
“제가 따악 죽기 직전까지만 시킵니다. 하핫.”
운동량은 부쩍 늘되 몸에 무리가 갈 일은 없을 거라는 안정감을 준다. 선생님의 격려에 고무되어 까다롭기 그지없어 보이는 생경한 동작들을 얼추 비슷하게 해내고, 허벅지가 뻐근하고 온몸이 후들거리는 채로 수영장 문을 나서면, 우리에겐 아직도 “별처럼 많은 가능성”*이 남았다는 생각에 뿌듯해진다.
* “너에겐 별처럼 많은 가능성이 있었고 네가 그걸 잡은 것뿐이야.”(<도라에몽: 스탠바이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