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용수 May 15. 2022

#09 - 룩소르 동안 투어 2

늘 마이프렌드라고 하는 놈들을 조심해라

가도가도 끝이 없는 카르낙 신전


기둥이 가득한 홀 - 대열주 라고 부른다 - 다음에는 투트모세 1세와 하트셉수트의 오벨리스크도 있고 람세스 2세의 신전도 있고.. 여하튼 가도가도 계속 뭐가 나왔다. 이집트의 유적지에는 한국처럼 자세한 설명이 없다. 대충 주요 포인트에 ‘이것은 하트셉수트 여왕의 오벨리스크입니다.’ 정도가 전부다. 한국이었으면 하트셉수트는 누구인지부터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새겨진 내용은 무엇이다는 설명이 빽빽하게 적혀있었을텐데. 차라리 가이드와 동행하는 투어를 신청할걸 그랬다. 어쩔수없이 구글맵을 찾아가며 이쪽저쪽 돌아봤다. 주요 유적지는는 의외로 구글맵에 설명이 잘 나와 있다. 다니다 보니 대열주가 있는 홀에서 사진을 찍은 친구들을 계속 마주쳤다. 그럴수 밖에 없는게 관광객들이 이동하는 루트는 뻔하다. 이 친구들은 나를 볼 때 마다 친밀감을 표했다. 역시나 나를 유시프라 부르며 말을 거는데, 문제는 그게 아랍어였다는거다. 내가 아는 아랍어는 슈크란(감사합니다)와 하맘(화장실) 뿐이니 알아들을 수가 없는 나로서는 그 친구들이 점점 부담스러워다. 그 친구들이 멀리 떠날 때 까지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척 하고 있었다. 아니 얘들아 유적지에 왔으면 유적을 관람하라고.. 나를 관람하지 말고.


신전의 주요 장소를 죽 보고 나오니 오후 한시. 어느새 두 시간이 흘렀다. 꽤 더웠다. 분명 신전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선선한게 다니기 딱 좋았는데. 날씨앱을 보니 기온이 30도였다. 2월 중반에 30도라면 한여름에는 도대체 몇도까지 올라간단 말인걸까? 그래도 입고 있던 바람막이를 벗고 반팔차림이 되니 다닐만 했다. 이집트같은 사막기후는 비록 기온은 높을지언정 습하지가 않아서 그늘만 들어가도 다닐만 한거 같다. 하지만 한여름의 이집트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 아마 바싹 구워지지 않을까? 2월에 이집트를 오기로 선택한 내 자신을 칭찬했다.


지긋지긋한 바가지


그늘에 앉아 지도를 보며 다음에 갈 곳을 검색했다. 나일강을 따라 카르낙신전 - 룩소르 박물관 - 룩소르신전이 아주 다니기 좋게 일직선으로 있었다. 룩소르 박물관에를 먼저 가기로 했다. 카르낙신전에서 룩소르박물관까지는 2킬로미터 정도로 나일강을 따라 살살 걸어갈만 했다. 룩소르에서 보는 나일강은 카이로에서와는 다르게 한적했다. 카이로에서는 강변으로 빌딩이 잔뜩 서 있는 풍경이 마치 덜 정비된 한강변을 보는 느낌이었고, 넘쳐나는 도로의 자동차들과 거기에서 뿜어나오는 매연에 편히 걸어다니기가 함들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나일강을 따라 산책하듯 걸을 수 있어서 마음이 깃털마냥 가볍고 좋았다. 한 30분쯤 걷다가 지도를 보니 얼추 룩소르 박물관 근처에 도착했다. 점심을 먹고 가려 했지만 박물관이 오후 세시에 문을 닫는다길래 얼른 슈퍼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기로 했다. 빵과 음료수 하나를 집어들고 카운터에서 얼마냐고 물었다. 가게 주인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가게주인 : 100파운드(7500원).


하하하. 이런 미친놈을 봤나. 이집트 물가로는 현지인들의 식당에서 30파운드 정도면 그럴싸하게 식사를 할 수 있다. 아무리 관광객 프리미엄이 붙어도 이거는 너무했다.


나 : 농담하지말고, 진짜 얼마야?

가게주인 : 진짜야 100파운드.

나 : 알았어. 그럼 안살게.

가게주인 : 농담이야 마이프렌드. 50파운드야.


50파운드도 엄청 비싼거다. 경험상 이정도면 한 20파운드 하려나? 솔직히 배가 꽤 고팠지만 내가 또 지고는 못산다. 당장 점심을 굶게 되더라도 이 가게에서 뭘 사고싶지는 않았다.


나 : 50파운드도 아닌거 알아. 난 갈게.

가게주인 : 오 마이프렌드 농담한거야 30파운드만 줘.


휴.. 마침 주변에는 가게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 내가 졌다. 100파운드짜리 지폐를 내밀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가 돈통을 뒤적뒤적 하다가 그러는거다.


가게주인 : 잔돈이 없어.

나 : 그...래? (잠시 망설이다) 그럼 그냥 안사고 갈게. 100파운드 돌려줘.


나의 말에 가게주인은 어쩔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호주머니에서 잔돈을 꺼내서 줬다. 어이없는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가게주인의 면전에다 욕을  뱉었다.


나 : 이런 ㅆㅂ새끼.


내가 여행을 그렇게 다녔지만 사람 면전에서 대놓고 욕을 한 적은 처음이다. 내가 쌍욕을 내뱉은 사실을 알 턱이 없는 그는 나를 따라 웃으며 즐거운 여행 되라는 말과 함께 손까지 흔들어줬다.

한가한 룩소르의 나일강변


룩소르 박물관


아휴. 빵 한쪼가리 사는거도 참 힘겹다. 대충 후다닥 먹어치우고는 룩소르 박물관에 들어갔다. 당차게 룩소르패스를 내밀고 들어가려는데 관리자가 마스크를 착용해야 입장이 가능하다고 했다. 이집트의 마스크 착용 정책은 도무지 알수가 없다. 분명 카이로박물관이나 알산 박물관에서는 아무도 마스크를 안쓰고 있었는데 또 여기서는 마스크를 쓰라고 하고. K방역에 단련이 된 몸이지만 고작 3일 마스크 안쓰고 다녔다고 그게 그렇게 답답했다. 룩소르 박물관은 도시의 명성에 비해서는 몹시 작았다. 어쩌면 도시 자체가 커다란 박물관이니 굳이 따로 크게 박물관을 지을 필요가 없을거 같기도 하다. 그래도 유물창고인 카이로박물관 보다는 동선을 따라 잘 정돈되어 있었고, 적어도 전시물별로 이게 뭐하는건지 정도는 설명이 있었다. 박물관의 가장 중심부에는 18왕조의 창시자인 아흐모세 1세의 미라가 있었다. 미라를 몇번 봤다고 어째 반가운 기분이 든다. 카이로 박물관에서 미라를 처음 봤을 때는 사실 조금 무서웠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유리관을 깨고 나에게 달려들면 머리통을 내려쳐서 제압을 해야하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제는 미라가 벌떡 일어나 나에게 달려들어도 후손들의 관광수익을 위해 전시되어 있느라 고생 많다고 안아줄 수 있을거 같기도 했다. 천천히 돌아보니 어디서 낯이 익은 얼굴이 눈에 띄었다. 그렇다. 역시나 아케나톤 왕이다. 이 양반은 볼때마다 느끼지만 참 인상적으로 생겼다. 어딜 가도 눈에 띄는 외모를 가지고 있다 보니 안보이면 섭섭해질 지경이다.  아케나톤 외에도 눈에 익은 조각상이 있었다.  이걸 내가 어디서 봤더라 한참동안 기억을 더듬었다. 그것은 배우 김혜수씨의 '죽겠어요'짤이었다.

오늘도 열일하시는 아흐모세 1세님
이집트 더워서 죽겠어요


한바퀴 죽 보고나니 오후 세시가 되었다. 직원이 와서 박물관 문을 닫는다며 나가라고 했다. 한바퀴 더 보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박물관을 나와 나일강을 따라 다음 목적지인 룩소르 신전으로 이동했다. 강을 따라 조금만 걸어가니 나의 왼편으로 그 모습이 보였다. 지도상으로 확인했을 때 출입구는 저 반대편에 있었다. 신전 밖으로 한바퀴 빙 돌아가야만 했다. 그런데 가도 가도 룩소르 신전이 계속 내 왼편에 있는거다. 이쯤 갔으면 이제 코너를 돌아 정문으로 가는 길이 나와야 하는데.. 룩소르 신전은 카르낙 신전보다 훨씬 규모가 작다고 했다. 그런데 카르낙 신전보다 작다는 거지 절대적인 크기가 작다는 뜻은 아니었다. 카르낙 신전은 몹시 큰거였고, 룩소르 신전은 컸다.


모자를 썼음에도 정수리가 타오르는 느낌을 받으며 한참만에 룩소르 신전의 정문에 다다랐다. 그런데 지쳐버린 내 눈 앞에 맥도날드가 나타났다. 오오 구원의 맥도날드. 나는 홀린듯 맥도날드로 들어가 제일 비싼 햄버거를 시키고 자본주의의 맛을 양껏 느꼈다.

이게 이집트 맥도날드에서 제일 비싼 세트다. 이집트는 아직도 빨대를 준다. 고맙게도.





작가의 이전글 #08 - 룩소르 동안 투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