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 속의 긍정확언의 시작, 몸무게 강박, 강남역에서 노는 법
고등학생이 되었다. 내가 살던 아파트에서 극소수의 아이들만 교통이 불편한 **고등학교에 배정되었다.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엄청 멀고 불편한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찾아보니 고작 3km 떨어진 곳이었다. 덕분에 등하교하며 더 걷고, 새로운 공간과 사람들 속에 놓이는 계기가 되었다.
안타깝게도 95년 1학년의 수첩은 사라지고 바로 96년이다. 1학년 학년 끄트머리에 문과를 선택했다. 사촌언니는 문과는 나중에 쉽게 대체될 수 있는 자원이 되고 이과는 그러지 않으니 이과를 추천했다. 취직을 생각해서 이과를 갈까도 생각했지만 도무지 과학에 흥미가 없어서 문과를 선택했다. 그렇다고 하지만 국어나 영어 성적이 딱히 좋았던 것도 아닌데 마음 붙이기 편했다.
96년의 고등학생 생활은 잔잔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줄곧 뛰어나진 않았지만 꾸준히 앉아서 공부하는 타입이었다. (수수한 머리, 수수한 복장, 수수한 성격, 수수한 성적, 인간 수수였다.) 그저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고등학교 진학하면서 특목고 학생들이 빠지면서 상대적으로 성적이 오르고, 문과를 선택하며 이과 상위권이 빠져 2차적으로 성적이 올랐다. 더군다나 우리반 1등이 마지막에 이과로 마음을 바꿨고 우리반 2등은 빼어난 외모탓으로 유혹이 많아서였는지 공부에 손을 놓고 노는 대열에 합류해 그야말로 난 어부지리로 상위권 대열에 끼고 말았다.
긍정확언을 좋아하던 나
몇 년 전부터 아침일기를 쓰며 긍정확언을 속으로 읽거나 쓰고 있다. 조용한 가운데 나에게 확신을 심어주는 문구를 보는 것이 내 나름의 정신에게 밥을 먹이는 의식이다. 수첩을 들쳐보니 이때부터 그런 낌새가 있었구나 알게 됐다. 프린터기도 집에 없던 시절 어디에서 오렸는지, 어쩜 그 크기를 저리도 맞춤했는지 모를 일이다.
96년의 시간표다.
(참고로 그즈음에 나는 깨알 같은 필체와 그를 위한 아주 얇은 펜에 꽂혀 있던 시기였다.)
0교시가 웬 말인가. 토요일도 학교에 나갔고 실질적으로 5교시를 했구나. 영어교과만 보자면 주당 6차시를 나갔구나. 주야장천 책 피고 수업 듣고 받아 적다가 선생님의 한 줌 사담에 잠깐 숨 돌리는 식이었다.
1996년 1월 1일 가수 서지원과 1월 4일 김광석이 세상을 뜬 소식부터 8일 미테랑 대통령 작고 이야기까지 적아놓았다. 장세동의 휴가 얘기와 우성건설 부도 소식, 고베지진 1년 됨. 이런 말도 적었다.
공중전화로 긴 통화
때때로 공중전화로 친구랑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 당시 아파트 1층에 살아서 뛰어나가면 20초면 닿은 거리에 부스가 있었다. 냄새나는 작은 공간이지만 통화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사람이 많이 오가는 곳이 아니라 뒷사람을 신경 쓰지 않았는데 이 날은 어디선가 내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가씨! 그만 좀 합시다!”
좀 놀라긴 했지만 그래도 나에게 아가씨라니. 더군다나 반말이 아닌 ‘합시다 ‘라니 다행이었다.
몸무게 강박
2월 5,7,17일
참 수더분한 나였지만 몸무게, 외모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온다. ‘오늘부터 얼굴살 빼기로 마음먹었다‘, ‘요즘 걸신들린 듯이 먹는다 ‘, ‘너 살찐 게 확실해 ‘ 등등. ‘예뻐지고 싶다라던가, 남자친구 생겼으면 좋겠다’ 같은 생각은 없었다. 아기 때에는 가족과만 지내다가 유치원과 학교에 가면 또래 친구를 사귀듯이, 어느 연령이 되면 상황에 따라 적당히 둘러대거나 약간의 거짓말을 필연적으로 배우는 것처럼 나는 어느 시기가 되니 마른 몸을 선호하는 세상에 발맞추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것은 마치 선생님이 내준 숙제 같았고 친구들이 다 하나씩 갖고 있는 필기구를 나도 갖고 싶은 그런 마음 같았다.
현실은 일주일에 체육은 2시간뿐이었고, 하루 8교시를 앉아있고 하교 후엔 학원에 가거나 야간 자율학습을 밤 10시까지 하고 그것도 모자라 독서실에 가기도 했다. 효율이 얼마나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다행히 나는 그런 극기의 생활을 무던히 견디는 것을 크게 어려워하지 않는 편이었다. 움직이지 않고 먹고 살찔 것을 두려워하는 생활을 꽤나 오래 했다. 그래도 소셜미디어에 영향은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역시나 더 움직이고 더 잘 먹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강남역에서 우리가 노는 방법
2월 11일
절친 정옥이와 즐거운 시간 보낸 날이었다. 아트박스에서 초콜릿 사 먹고, 방울(머리끈) 사고, 필통사고, 강남역 지하상가에 있던 동화서점에서 책 두 권 사고 돌아왔다. 문구점이나 서점을 뱅뱅 돌면서 실컷 구경하고 고심고심하다 한두 개를 집어 들고, 계산하고 비닐봉지에 받아 들고 2호선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던 그날의 충만한 감장이 생생히 떠오른다.
96년 1,2월의 던다야
완연한 고등학생이 되었구나.
본격적으로 빡빡하게 수업 듣고 공부하는 생활이 곧 시작되겠네. 아직 학기는 시작하지 않아서 여유가 좀 있을 때였지.
친구가 아주 중요한 시절, 가까이 함께 이야기 나눌 다정한 친구들이 있어서 너무 다행이다.
남들 눈에 내 몸이 내 얼굴이 어떻게 보일지 그렇게 신경 쓸 필요 없었는데, 그땐 달리 그
관심을 돌릴 다른 방도도 마땅치 않았어. 지역마다 청소년 체육시설이나 예술활동을 할 공간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문득 생각하게 돼. 사실
지금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안타깝다. 돈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몰입해서 활동하고 정신과 육체를 건강하게 만들 공간은 어느 연령대에서나 필요한 부분인데 말이지.
아쉬운 면이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10년, 20년이 지나 너는 식성과 식욕이 더 좋아지는 건 장담할 순 없지만 신체를 단련하는 것에는 확실히 관심을 갖게 되고 더 건강해지게 될 테니까.
96년의 던다의 새 학기를 응원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