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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 1-5 수첩: 설날 연휴의 자유, 집안 불화

by 던다

1997년 나는 고3이 되었다.

학교 생활 12년 차가 되었다.

베테랑 학생이 된 것이다.


고3의 성적이라는 것은 내 능력의 모든 것을 다 털어 넣어 나오는 결과지 같았다. 다른 변인 없이 인과관계가 아주 분명한 것인 줄 알았다. 문제는 나는 주변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그저 줄곧 책상에 앉아 그날의 복습을 라고 학원 숙제를 하는 그런 일관적이 학생이었다는 점이다. 그저 성적만 오르락내리락하며 널뛰기를 했다. 그것을 두고 선생님들은 야단을 쳤다가 칭찬을 했다가 했고 나 역시 스스로를 자책하여도 어리둥절했다.


돌이켜보면 그다지 둘 사이의 큰 상관관계도 없는 것을. 마치 똑똑한 부모가 자식을 낳으면 어떤 자식은 부모의 예상대로 학업적으로 우수하고 어떤 자식은 그렇지 못한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도 부모는 ‘우리에게 무슨 문제가 있을까 ‘ 고민하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냥 그런 것 일 뿐이었는데 말이다.


이런 수첩을 일년동안 썼다. 그 어느해보다 수첩에 대한 애착이 믾았다. 수첩 안에 빼곡히 1년간의 마음졸임이 담겨있다. 그까짓 고3일 뿐이었는데.

1997년 설날 연휴였다.

명절이면 일언반구 반대 의견을 못 내놓고 경북 할머니댁과 대구 큰아버지댁에 부모님과 갔어야 했다. 그 해에는 아버지가 고3 되는 해라고 크게 아량을 베풀어주셨는지 집에 혼자 남아있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꼭 데려가야 하는 사람은 아들(이 집 손자)인데 군에 갔으니 그냥 너는 이 참에 집에 있어라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모처럼 어쩌면 처음으로 빈 집에서 자유를 만끽했다. 중간에 음란전화를 받을 뻔했지만 좀 소심한 사람이었는지 다행히 지나갔다. 나도 여러 번 경험이 쌓이다 보니 약간의 맷집이 생겨 크게 놀라지 않았다.


연휴 둘째 날 나의 절친 정옥이를 불러 우리 마음대로 하루를 보냈다. 정옥이는 어려서부터 밥 짓고 설거지 하고 간단히 요리도 할 수 있는 내 입장에서는 거의 생활력 만렙인 친구라 아주 든든했다.


그 친구가 집에서 먹을거리를 바리바리 싸왔다. 음악을 사랑하고 신앙심이 깊었던지라 클래식 CD와 찬송가책도 가져왔다. 당연히 CD로 배경음악을 깔아 두고 학생 신분에 맞게 문제집도 풀었다. 한 문제 풀고 조잘조잘, 한 문제 풀고 조잘조잘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문제집은 거들뿐 우리는 시시껄렁한 이야기에 엄청 놀라고 엄청 웃으며 즐거워했다.


저녁은 정옥이가 능숙하게 슥슥슥 김치볶음밥을 만들었다. 이것저것 재료를 넣고 간도 보면서 완성된 밥을 공기에 떠서 상에 마주 앉아 먹었다. 우리끼리 연신 맛있다 맛있다 하면서 먹었다. 그리고 후식으론 명절 분위기에 맞게 배를 깎아 먹었다. 10년 넘게 재미도 없고 힘들던 그 부모님의 귀향길에 함께 하다가 오롯이 자유가 주어지니 너무나 즐거웠다.

1997년 2월이었다.

2월의 학교는 덤으로 붙어있는 시기 같다. 딱히 뭘 하기에는 선생님도 학생도 힘이 빠져있고, 학교 가고 오고 수업시간을 지키는 것으로 간신히 일상의 규칙성을 유지하고 있는 때이다. 그런데 왜? 선생님은 갑자기 화가 나셨는지, 때아닌 기강을 잡았는지 모를 일이다. (왜 그러셨나요?)


집에서도 분위기가 안 좋았다. 부모님은 각자 선하고 바른 분이셨지만 어느 부부가 안 그렇겠냐마는 두 분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어른이 된 내가 조심스레 생각해 보면 갈등을 다루는 면이 두 분 모두 서툴었던 것 같다. 각자 참고참고 참다가 활화산 폭발하듯 터졌다.


이때가 그런 때였던 것 같다. 엄마의 악쓰는 소리와 아버지의 노한 소리가 나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곧 20살이 될 나이였는데도 부모님이 싸울 때마다 세상이 무너질 것 같고 가슴이 쪼그라들 것 같아 방에서 숨죽여 울었다. 이 날은 그런 분위기가 며칠 이어져서 괴로워서 계속 잠을 잤던 날이었다. 그렇게 며칠 한바탕 난리가 났다가 엄마가 다시 부엌에서 밥을 하시고 아버지는 그 밥을 드시는 것으로 서로 화해하셨다.

고3 때 담임선생님은 유머가 있고 친근한 분이셨다. 그래서 먼저 나에게 관심을 표현했을 때 내 쪽에서 능청을 떨기도 했다. “제 이름 안 외우셔도 돼요. 자자 부담 갖지 마시고요. “ 이 분 덕분에 용기도 얻고 웃기도 많이 했던 97년이었다.



97년의 던다야.
학창 시절의 종지부를 찍는 대망의 고3이 되었구나.
성적이 희로애락의 지표였던 한 해가 시작될 즈음이었네.
부모님이, 선생님이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많았을 텐데 이때에도 여전히 제대로 표현을 못하고 따르는 입장이었지. 미성년자는 주로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많지. 화가 나고 속상하고 억울한 경우 말이야. 그래도 던다 곁에는 너와 비슷한 결의 친구나 어른이 드물지만 콕콕 박혀 있었구나. 한 사람에게 속상한 만큼 다른 사람에게 더 고맙고 더 소중하게 느껴졌던 것 같아.

그리고 말이야. 어느 순간이 되면 네가 옳지 않은 일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때가 찾아오게 될 거야. 너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내가 고마워하던 그런 어른이 될 수도 있어.

추우나 더우나 우직하게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너를 응원하고 있어.

추신: 대입 결과는 썩 좋지 않을 수도 있어. 크게 실망할 필요는 없어. 긴 여정에서 너의 경험은 어느 것 하나고 불필요한 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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