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997. 3월과 5월

Y선생님

by 던다

이어지는 97년의 고3 생활이야기이다.

문과반이었다. 공부를 안 하는 애들은 있어도 수업에 방해하지 않았고 그냥 자기들끼리 조용히 보냈다. 고등학교 내내 그랬다. 기억의 왜곡인지 선생님들의 수업에 좋든 싫든 재밌는 재미없든 그냥 그렇게 앉아 있는 것에 익숙해진 모습이었다.

97년 하면 그 해의 담임선생님(편의상 Y샘)이 떠오른다. Y선생님은 50대 초반쯤이셨고 머리가 좀 벗어지셨었다. 특이점은 월남전 파병 용사라고 점이었다. 그래서 비가 오면 제초제 후유증으로 신경질을 부리신다는 얘기기 있었는데 확인할 도리가 없었다.


선생님의 확실한 점은 재밌고 솔직하셔서 깍쟁이 같은 학생들도 다 선생님을 잘 따랐다. 학기 초에 학생들 얼굴을 외워갈 때쯤 선생님은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한 학생 앞으로 큰 발걸음으로 다가갔다. 그러더니 대뜸 하는 말씀이

“너 되게 이쁘다. 교실에 들어오니까 너만 확 보여. 이제 큰일 났다. 이제 애들이 너 싫어할 거야.”

하시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수업을 시작하셨다. 지금 같아서는 학생의 외모에 대해 언급하면 안 되는 분위기이지만 그때도 저런 발언이 흔한 건 아니었다. 선생님의 그런 너무나 투명한 반응에 우리는 그냥 다 와하하하하고 웃어버렸다. 그 이후에 Y샘이 그 학생을 특별히 편애를 했냐 하면 전혀 아니었다. 나는 그냥 ‘샘 정말 솔직하시다’, 안 그런 척하면서 (예뻐서) 좋아하는 마음을 슬쩍 들키는 경우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여하튼 Y샘은 행동이나 말이 어쩐지 기존의 통념과는 다른 면이 있으셨는데 그게 또 누구의 마음도 불편하지 않았다.


어느 날인가 선생님이 반 전체를 나무라는 날이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담임선생님에 대한 호의적인 마음이 이미 단단해서인지 그런 질책도 우리 탓이려니 생각했다. 누기 먼저 선생님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해 청소를 하자고 제안했는지도 모르겠다. 저절로 그런 분위기가 되어

야간자율학습 전 저녁시간과 야자시간 절반쯤 일사불란하게 청소를 하고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공부를 했다. 그러던 중 교실에 오신 Y샘이 놀란 척도 없이 시크하게 “니들 먹고 싶은 게 뭐야?”하고 한마디 툭 던지셨다. 그 순간 또 꺄-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Y샘은 딱히 무슨 일이 있지 않아도 형편이 걱정될 정도로 야자시간에 간식을 자주 사 주셨다. 그것도 엄청나게 단 작은 초콜릿케이크 같은 간식을 사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먹고 살쪄가던 어느 날 한 친구가

‘담임선생님이 우리 살찌워서 잡아먹으려는 게 아닐까.‘

라는 말을 해서 다들 끄덕거렸던 기억이 있다.

고3 때의 나는 돌아보면 경미한 우울증을 안고 살았던 것 같다. 한결같이 나의 속도대로 꾸준히 공부를

책상에 앉아 하지만 마음처럼 성적이 나오지 않아 절절맸다. 공부량과 성적의 인과관계를 너무나 철석같이 믿은 탓이었다. 그러다 좋은 성적을 받으면 ‘내가 이럴 리 없어’라고 부정하고, 그렇지 않으면 ‘나는 이제 어쩌지’하면서 좌절했다. 나에게 필요한 건 쏟아주는 격려와 지지, 그리고 충분한 수면과 영양이었는데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었다. 다행히 Y샘은 덮어놓고 칭찬과 격려를

해 주시는 타입이셨다.

“넌 머리도 있고. 너만큼 성실한 애는 없지. 시험에 겁먹지 마. 그냥 스포츠, 오락쯤으로 여겨.”

그 말이 너무 감사했다. 선생님의 밑도 끝도 없는 낙관주의에 현실적인 조언이 없다고 불만을 표한 친구들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정말이지 딱 맞는 격려였다.



시험에 잔뜩 쫄아있었던 던다야
나에게 힘을 주는 어른을 드디어 만났구나. 항상 설렁설렁 다니시는 Y샘이었는데 반 학생들에게 앞뒤 재지 않고 애정을 보이는
그런 사람 냄새나는 모습을 넌 좋아했지.
그때는 곧잘 움츠러들었지만 조금씩 너에게도 안에서부터 차오르는 힘이 생길 거야.
아무 힘을 발휘라지
못하는 것 같은 성실이라는 것도 복리처럼 크게 작용할 거야.
언제나 널 응원하고 있어.
keyword
토, 일 연재
이전 28화1997. 1-5 수첩: 설날 연휴의 자유, 집안 불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