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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티라떼? 마살라티? 차이(Chai)!

뉴델리에서 물보다 자주 마신 마살라 차이에 대하여.

by 화자
마살라티를 대면하던 첫 순간.

인도에서는 어느 장소를 방문하든 손님에게 곧잘 마살라티를 내어준다. 인도 협력기관에 처음 방문하여 카운터파트가 도착하기까지 응접실에 앉아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는데 직원분이 나에게 눈을 맞추며 “마살라티?” 라고 묻는다. 찾아온 손님에게 무언가를 대접해주고 싶은 마음은 만국 공통이겠거니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내 앞으로 도착한 하얀 찻잔에 담긴 마살라티. 첫인상은 그저 밀크티 같아 보여서 거리낌 없이 잔을 들어 코 앞으로 갖다 대었더니 알싸한 생강향이 코를 찔렀다. 첫 모금은 꽤 달달한 밀크티인데 끝에 계속 입에 감도는 건 계피와 생강이 어우러진 진한 향이었다. 약재 향이 풍기는 쌉쌀한 끝 맛이 다소 버거울 수도 있겠으나 달달함 끝에 오는 쓴 맛은 생각 이상으로 매력적이었다.


우리나라는 차 문화가 덜 발달되어 있을뿐더러 개인적으로도 차에 그다지 개인적인 관심이 없는 탓에 인도 방문 전 사전 조사대상에 마살라티는 포함되지 않았는데, 이후로 방문하는 기관에서는 내가 먼저 마살라티를 찾곤 했다. 방문하는 기관마다 마살라티의 맛도 살짝씩 달랐다.



스타벅스 차이티라떼는 '차차차'


마살라티는 마살라 차이(Chai, मसाला चाय) 혹은 줄여서 차이라고도 부른다. 베이스가 되는 찻잎과 알싸한 향을 더해주는 계피, 정향, 생강, 후추 등의 향신료와 더불어 우유를 함께 넣고 끓이는 차를 의미한다. 차이는 인도에서는 대중적인 차인 마살라티를 일컫는 용어로 통용되지만, 외국에서는 ‘차이’보다는 정체성을 부각하는 ‘Tea’를 붙여서 ‘차이티’라고 더 자주 불린다.


스타벅스에도 비슷한 메뉴로 ‘차이티라떼’가 있는데, 사실 이건 구매자의 편의를 위한 명칭일뿐, 사실 ‘차차차’, 혹은 ‘Teateatea’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그리고 스타벅스 차이티라떼에는 값비싼 정향이나 생강을 넣을 리 만무하니 그저 달달한 밀크티의 맛이 나곤 한다.




한 번은 방문기관 직원이 탕비실에서 주전자에 차이를 끓이는 모습을 목격한 적 있다. 회의 준비가 한창이라 복도를 열심히 쏘다니고 있는데 코를 찌르는 알싸한 향에 이끌려 탕비실에 가보았더니 한 현지인 직원분이 한국에서도 익숙한 누런 주전자에 우유를 가득 담아 끓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옆에서 가만 지켜보니 각종 향신료를 우유에 투하하는 순서도 달랐는데 이건 지역마다, 집집마다 레시피가 다르단다. 마치 우리가 김치찌개를 끓일 때 재료를 넣는 순서가 다른 것과 같다. 소고기를 미디엄 웰던으로 주문해 먹듯이 베이스인 찻잎이나 각종 향신료를 우려내는 시간에 따라서도 맛이 다르다. 그 직원 분은 주전자 표면에 동동 뜨는 찻잎을 구경하는 나에게 찻잎을 어느 정도 우려 줄지 물어보셨다. 어느덧 우유가 뭉근하게 끓여져 아주 살짝 표면이 걸쭉해지는 듯하니 불을 끄시곤 체에 걸러서 찻잔에 부어주셨다.


인도 출장에 가져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책과 마살라티.


한편으론 이렇게 끓는 듯한 더위에도 어떻게 매일 주전자로 펄펄 끓인 뜨끈한 차를 드시나 싶었는데 더운 여름에 삼계탕을 먹으며 ‘시원하다’고 말하는 우리가 생각났다. 사실 이 마살라티는 인도의 한의학인 아유르베다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하는데, 마살라티에는 그저 향신료라기에는 몸에 좋은 약재들을 넣고 끓이다 보니 소화개선, 항산화작용 등 건강에도 좋다.


출장 기간 내내 마살라티를 즐겨 마시며 만나는 현지인들과 자연스레 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인도인들이 차에 대해 자부심이 엄청난 것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인도에서 차 문화가 발달하게 된 것은 사실 영국 식민지 시절 영국에서의 엄청난 차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인도에서 플랜테이션 농업이 이뤄지며 시작되었다. 좋은 품질의 찻잎은 영국으로 들어가고, 수확하고 남은 조각조각난 꼬다리(?) 찻잎을 우려먹던 굉장히 서민적인 음식인 것이다.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는 고상한 것이라고 추앙하면서도 인도 아쌈티는 저평가하는 사람들.


지금도 영국에서 통용되는 찻잎의 대부분은 인도 북부 아쌈(Assam), 다르질링(Darjeeling), 남부의 닐기리(Nilgiri) 지방 혹은 스리랑카에서 재배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모른 채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는 고상하고 고급진 것이라고 추앙하면서 인도 아쌈티는 저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참 재밌는 일이다. 사실 같은 재료를 쓰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그저 고상한 척하기 좋아하는 사람들. 마치 고급 비누를 쓰기를 고집하면서 사실 그 비누가 자신들이 피부과에서 지방이식을 하고 버려진 남은 찌꺼기로 만들어진 것을 모르는 부유층처럼. (이 구절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파이트 클럽>의 명장면이다)


하여간 이 정도 맛이라면 인도인들이 충분히 자부심 가져도 될 것 같다고 생각하며 한 모금 더 홀짝였다.


현지의 찻잎 판매상은 인도의 주요 찻잎 재배 지방에 대해 공들여 설명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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