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만하다. 아니 오만함에 빠지기 쉬운 존재이다.
우리는 오만하다. 아니 오만함에 빠지기 쉬운 존재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혹은 나에게 익숙한 모든 사물과 구조와 기제들에 '당연함'이라는 권위를 부여하면서 말이다. 그것들은 그저 나에게만 익숙할 뿐인 것임에도 말이다.
인도 출장 첫날의 일이다.
카레의 왕국 인도에 오긴 한 건지 첫날 호텔 조식부터 카레의 향연이었다. 이태원에서 인도인이 운영하는 카레집에서 자주 뵈는 잘게 다진 고기와 버무려진 붉은 소스의 키마 카레(keema curry)부터, 재료는 도무지 모르겠으나 심상찮게 톡 쏘는 맛을 가진 카레, 색깔부터 마치 경고하듯 짙푸른 색을 띠는 카레까지. '3분 카레'로 대표되는 K-카레가 내게 십여 년간 주입해 준 카레에 관한 편견을 와장창 부수며 칼라풀한 카레들과 소개팅을 하는 기분이었달까.
인도 출장을 개시하며 다양한 카레들을 맛보는 것만큼 내심 기대해 온 순간은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는 행위였다. 아마도 우리는 두 살 무렵쯤 도구를 사용하여 음식을 섭취하는 방법을 부모로부터 배웠을 것이다. 손을 써서 용케 음식을 입에 넣었더니 부모의 단호하고 묵직한 음성이 아기를 제압한다. 찰싹하곤 손등에 가벼운 체벌이 주어지기도 하겠지. '손을 사용하여 음식을 먹었더니 엄마가 나를 혼을 내는' 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하면서 '파블로프의 아기'들은 자연스레 음식을 먹을 때 손을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면 인도의 아기들은 이러한 일련의 파블로프의 훈련을 받지 않아도 된단 말인가. 뭉근하고 질퍽한 질감의 카레를 손으로 만지면 어떤 느낌일까. 세상에 태어나고 두 번째 해부터 금기시되었던 성역에 진입해 볼 수 있는 기회라니. 알고 보면 밥을 한 움큼 크게 집어 카레 소스가 손에 묻지 않게 그저 살짝만 묻혀 먹는 것일지도 몰라. 아니 이왕이면 엄지와 검지가 카레소스에 푹 담가져도 좋을 것 같아. 정말 미끌미끌하겠지. 손에 묻은 소스는 적당히 빨아먹어야 하는 건가. 손가락을 담갔다가 뜨거우면 어쩌지. 마치 여섯 살 무렵 엄마 몰래 새벽 5시에 거실에 나와 몰래 티비를 켜고 애국가 화면을 보며 뒤이을 만화를 흥미진진하게 기다리는 마음이었다.
함께 협업하는 인도 교수 및 연구원들과의 첫 업무회의가 끝나고 인도 측 직원들은 사무실로 어김없이 카레를 배달시켜주었다. 뉴델리에서도 배달문화가 정착되었다는 사실에 한 번 놀랐고, 꽤나 익숙한 플라스틱 배달용기에 담긴 오색찬란한 카레들의 모습에 두 번 놀랐다. 호텔 조식만큼이나 다양한 카레소스들, 거인들이 쓸만한 밥주걱 크기의 넙데데한 난(naan), 민들레 홀씨마냥 후 불면 제각기 흩어져버릴 것 같은 길쭉한 밥풀들, 인도 식탁에서 빠지지 않는 인도식 된장 삼바(sambar), 그리고 후식으로 인도식 요거트인 껄(curd)까지.
배달 용기에 담겨 이국적인 향기를 풍기는 음식들을 우선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데 내 앞에 앉은 교수 한 분이 내게 다정히 눈을 맞추었다. 그러더니 먼저 스스럼없이 밥을 한 움큼 손으로 집어내는게 아닌가. 고슬고슬한 밥뭉치와 함께 그것을 쥐고 있는 두 손가락은 주황색의 카레에 우아하게 한 번 적셔지더니 그의 입 속으로 곧장 들어갔다. 그러곤 그는 내 차례임을 알려 주듯 나를 향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아, 물론 내 옆엔 외국인을 위한 배려인 양 플라스틱 숟가락도 가지런히 자리하고 있었으나 시범을 보여준 교수에게 꼭 화답하고 싶었다. 출장 전부터 고대하던 순간을 실현할 기회이기도 했다.
마침내 카레소스들로 얼룩진 내 손가락들을 바라보며 작은 해방감이 들었다.
그렇게 무참하게 손으로 카레를 흡입했다. 여전히 손에 남은 미끈미끈한 카레들의 감촉에 한참 빠져있는데, 때마침 한 인도 측 직원이 내 앞에 자그마한 레몬 한 조각이 담긴 따뜻한 물 한 사발을 내어주었다. 여러 가지 카레를 맛보며 텁텁해진 입 속을 달래기 위한 개운한 후식이겠거니 하고 시원하게 한 입 들이키려 하자 내 앞에서 손으로 카레를 즐기는 방법을 알려준 교수가 손사래를 치며 말리는 게 아닌가.
아, 알고 보니 그 레몬수는 우리가 쓰는 물티슈와 같은 용도인 모양이었다. 그들에게는 이 레몬 한 조각이 담긴 온수 한 사발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소독용 알코올이란다. 손을 이렇게 씻으면 된다고 이번에도 친절히 시범을 보여주는 교수를 지켜보면서도 사실 '과연 제대로 씻길까'하는 의구심은 완전히 거둘 순 없었다. 아까 손으로 대범하게 카레를 찍어먹던 순간과는 달리, 약간은 주저하는 마음으로 미온보다는 좀 더 뜨거운 온도의 레몬수에 양손을 비벼보았다. 그런데 참 놀랍게도 마치 비누로 손을 씻은 듯이 금세 뽀득뽀득해지는 게 아닌가. 물티슈를 쓰더라도 미끈한 느낌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는 편인데 어쩌면 물티슈보다 더 깨끗하게 소독이 된 듯했다.
우리는 가끔 의도치 않게 오만하거나 무례함을 저지르곤 한다. 물티슈의 오만함에 빠져있던 내가 레몬수로 소독하는 시범을 보여준 교수를 지나친 의구심의 눈초리로 지켜보진 않았나 하고 순간 몇 초 전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물티슈가 세상에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레몬과 따뜻한 물이라는 자연물을 활용하여 소독행위를 해온 인도의 선조들에게 경의를 표하게 되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 장독대의 지혜를 발휘해 온 우리 선조들처럼, 흙으로 빚어낸 빗살무늬 토기에 음식을 장기간 보관해 오던 인류의 선조들처럼.
자연의 특성을 최대한 활용한 인간들의 지혜란 항상 경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