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힘들게 만드는 것도, 반대로 힘이 되어주는 것도 결국은 사람이다.
내가 속해 있던 조직은 계약직, 파견직, 인턴 등 임시적인 형태의 단기 고용이 정말 많은 곳이었다. 다수의 임시직 직원들이 자주 들어오고 나가는 곳이다 보니 필연적으로 새로 오는 임시직들을 향한 텃세가 좀 심한 곳이기도 했다.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계약직인 데다가 매사에 자신감도 부족해 보였던 터라 언제 도망치듯 나가버려도 이상할 게 없는 애라는 시선을 많이 받았다.
그런 시선들을 굳이 크게 신경 쓰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게 마음처럼 쉽게 되는 일은 아니었다. 나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이 무서웠고, 괜히 지나가는 말 한 마디에 상처 받게 될까봐 움츠러들었다. 이제와 이렇게 말하기 부끄럽지만, 나는 쫄보였다. 내가 소속된 이 조직 안에서 나라는 존재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가치와 의미가 짓밟혀지고 무너지게 될까봐 너무 두려워하는. 안타깝게도 난 사람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많이 의식했고, 시나브로, 마음은 더 굳게 닫혀만 갔다.
그런데 재밌는 건, 그렇게 굳어가던 마음에 숨통을 트이게 해준 것도 결국은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첫 사회생활에서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줬던 건 사람이었지만, 반대로 좀 더 열심히 살아봐야겠다고 힘을 준 것도 역시 사람이었다.
팀장님과 두 선배만큼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나를 인간적으로 대해 주셨다. 그렇게 세 분은 첫 사회생활에서 거의 유일하게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었던 나의 숨 쉴 구멍이었다. 특히, 계약직으로 일하면서 다른 정규직 직원들에 비해 부족한 처우를 받고 있는 내가 불편한 감정을 느끼지 않도록 신경을 정말 많이 써주셨다.
돈을 조금이라도 더 받는 사람이 일을 더 하는 게 맞는 거라며, 본인들이 야근을 할 지언정 내 칼퇴는 철석같이 지켜 주시던 게 너무 감사했다. 물러 터진 팀 막내가 어디서 억울한 일을 당하고 오면 대신 가서 싸워주던 멋진 선배들 덕분에 괜히 마음이 든든해지기도 했다. 자기들이 가서 지랄해줄 테니까 누가 못되게 굴면 말하라고 농담 반 진담 반 얘기해주던 그 말이 너무 듣기 좋았고 힘이 됐다. 실제로 두 분이 커버를 쳐줘서 나한테 올뻔했던 업무 짬에서 벗어난 적도 여러번이다.
연차를 쓰고 대학 졸업식에 갔다 온 다음날(대학 졸업 전부터 일을 시작해서 입사하고 한 달 정도 후에 졸업식이 있었다), 내 자리에는 꽤 괜찮은 브랜드의 넥타이와 벨트가 놓여 있었다. 이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팀 막내를 위해 세 분이 사비로 준비해주신 선물이었다. 감사하다고 인사드리자, 졸업식으로 꽃도 배달해주려 했는데 두 선배가 게을러서 꽃 주문까지는 못했다며 팀장님이 멋쩍게 농담을 던지셨다. 덕분에, 첫 사회생활에 얼어 있던 마음이 조금은 풀리는 계기가 됐다.
팀에 있던 한 선배가 2년의 계약직 생활을 마치고 정규직으로 전환되던 날, 우리 팀 네 명은 소소한 축하의 자리를 가졌다. 그날 그 선배의 정규직 전환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시면서 자기 일처럼 행복해하시던 팀장님의 모습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마치 자기 친동생의 일처럼 대견해하시고 같이 기뻐해 주시던 팀장님의 모습. 참 인간적이었다.
그 자리에서 평소에 술을 마시지 않던 나에게 팀장님은 대뜸 이런 말을 하셨다. "영재도 정규직 전환되는 날에는 소주 한 잔만 같이 해줘라". 그 말을 듣고 처음으로 이 회사에서 정규직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안정적인 고용 때문이 아니었다. 팀원의 경사에 이 정도로 진실되게 함께 기뻐해 줄 수 있는 팀이라면 좀 더 오래 같이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너무 좋은 팀원들과 함께 일한 덕분에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된다는 것에는 일을 뛰어나게 잘하는 것 이상의 함의가 있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었다.
일은 기가 막히게 잘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신뢰와 존경은 모으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그런 사람들은 단기적으로 봤을 땐 자신만의 대체 불가능성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길게 봤을 땐 아니다. 결국 나이가 들고, 새로운 재능들이 조직에 추가되면 자연스레 경쟁에서 밀릴 위험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실력과 더불어서 함께 하는 동료들에게 일 할 맛 나게 해주는 사람은 절대로 경쟁할 수 없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된다. 저 사람과 함께라면 좀 더 열심히 일 해보고 싶다는 동기가 되어주는 것. 스트레스의 온상인 사회에서 조금 더 버텨볼 이유가 되어주는 것. 너무 힘들어서 포기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그 사람과 같이 한다면 이겨낼 수 있겠다'라는 믿음을 주는 것. 그것은 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완벽한 대체 불가능성이다.
나에겐 팀장님과 두 선배가 그런 존재였다. 앞으로 어딜 가서 그런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세 분은 나에게 대체 불가능한 영향력을 주셨다.
언젠가 될진 모르지만,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든든함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실력뿐만 아니라 인성도 잘 다듬어져야 한다. 자기가 맡은 일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다해내지만, 동시에 동료들에게 함께 일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는 것. 이를 위해선 첫 번째로 '잘'해야 하고, 두 번째로 '착'해야 한다.
그 정도의 실력과 인성이 잘 버무려진 좋은 리더가 되는건 사회생활의 가장 큰 내 목표 중 하나가 되었다. 그것이 첫 사회생활에서 내가 경험한 대체 불가능한 존재의 본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많은 것들이 부족하지만, 간절하게 바라고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그 목표에 닿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 믿음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켜낼 수 있게 되기를 오늘도 간절히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