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예뻐해 주던 선배가 퇴사를 했다

그것이 평생에 마지막 만남이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by Jay

1년 계약 기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계약 종료 시 내가 취할 수 있던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첫째, 계약을 연장한다. 둘째,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난다. 마음은 반반이었다. 지난 1년 간의 서러움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싶었지만, 함께 일하던 팀원들을 생각하면 좀 더 일을 하고 싶기도 했다. 이 정도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할 기회가 평생에 또 없을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었다.


게다가,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겠다던 나의 야심찬 입사 포부도 아직 다 이루지 못한 상태였다. 업무를 하면서 좋은 평가를 몇 번 받아보긴 했지만, 아직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됐다고 말하기는 민망한 수준이었다. 좀 더 확실하게 내 가치를 인정받고 싶다는 오기 섞인 마음에 일을 더 해보고 싶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이 지긋지긋한 꼰대 문화와 박봉인 내 월급을 다시 생각하면 눈 앞이 캄캄해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뒤집히는 속 시끄러운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인생은 타이밍이다.


한참 고민이 깊어지던 그때, 뜻하지 않던 폭탄발언을 들어버렸다.


"영재님, 저 퇴사해요".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던 화요일 오후. 장소는 팀 선배와 함께 외근을 나가던 택시 안이었다. 선배는 씁쓸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을 이어갔다.


"오늘 아침에 팀장님께도 말씀드렸어요. 한 달 뒤에 퇴사하려고."


선배의 퇴사 예정일은 내 재계약 시점보다 3주 정도 빨랐다. '아, 한 발 늦었다.'




전혀 예상 못했던 일은 아니었다. 주에 4일씩 야근을 해야 하는 살인적인 스케줄, 남성적이고 권위적인 조직 문화에서 여자들에게 알게 모르게 작용하던 유리 천장, 업무 프레셔와 스트레스에 건강도 자꾸 상해 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줄곧 마음이 쓰여왔다.


선배의 퇴사 결정을 너무나도 존중했다. 책임감으로 똘똘 뭉친 선배가 자기가 맡고 있던 일들을 내려놓겠다는 결정을 입 밖으로 꺼냈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마음 불편하지 않으시도록 최대한 덤덤하게 대답했다.


"네, 그동안 고생하셨어요. 선배도 이제 좀 쉬셔야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이 편치만은 않았다. 나도 퇴사를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팀에서 두 명의 인력이 동시에 빠지는 건 남겨진 사람들에게 너무 큰 부담이었다.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조직에서 유일하게 나를 인간적으로 대해주던 분들이 곤란해질 걸 알면서도 그렇게 매정하게 회사를 떠나고 싶지는 않았다. 자연스레(또는, 어쩔 수 없이) 내 마음은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그게 진짜 마지막일 줄은 몰랐다.


선배의 마지막 출근날, 팀끼리 송별회를 했다. 그동안의 감사한 마음을 담아서 선물도 준비하고, 같이 맛있는 것도 먹고, 그간의 회포를 풀었다. 함께 좋은 영향력을 주고받으며 재밌게 일하던 동료가 회사를 떠난다는 걸 모두가 아쉬워했지만, 그래도 더 행복해지려고 떠나는 발걸음이니 한 마음으로 축복해주었다.


"평생 못 볼 것도 아닌데요! 자주 놀러 올 테니까 다음에 또 봐요"


분명 그렇게 '다음'을 약속하며 헤어졌다. 그때는 그 '다음'이 평생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누구도 하지 못했다.




2주도 채 되지 않아 갑작스럽게 들려왔던 선배의 소식은 비보였다. 사고로 인한 급작스러운 죽음. 늦은 밤, 회사 다른 동료분에게 전화로 선배의 소식을 듣고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 버렸다. 선배의 퇴사 얘기를 들었을 때보다 1억 배 정도는 더 충격을 받았다. 거짓말 같았다.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현실을 자각한 것은 다음날 사무실에 출근해서 두 눈이 퉁퉁 부은 채로 엘리베이터 앞에 서있던 B선배를 봤을 때였다(밤새 한숨도 못 자고 울었나 보다). 그 마음이 너무 이해가 됐다. 가깝게 지내던 사람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건 지옥같은 일이니까.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B선배와 나는 바로 양해를 구하고 빈소를 찾아갔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인쇄해 올려져 있던 영정사진은 그 선배의 죽음이 얼마나 급작스러웠는지를 설명해주고 있었다.




일이 먼저인가, 사람이 먼저인가


근 1년을 매일 같이 얼굴을 보며, 때론 웃고 때론 갈등도 하고, 그렇게 지지고 볶으며 어렵게 마음을 열었던 선배의 죽음은 내 삶을 거세게 흔들었다(물론, 나보다 선배와 더 많은 추억과 감정을 공유한 사람들의 슬픔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내가 일을 좀 더 잘했다면, 그래서 그 선배의 업무적인 부담과 스트레스를 아주 조금이라도 덜어드릴 수 있었다면, 그 선배는 퇴사를 하지 않았을까? 퇴사를 하지 않았다면 한창 업무시간이던 그때에 사고 현장에 있지는 않았을 텐데'. 그런 생각들을 하는 게 다 부질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만약'에 대한 가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됐다. 그만큼, 그 선배와의 영원한 이별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장례식장을 지키며 지난 시간들 속에서 나와 그 선배와의 관계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계속 반추해봤다. 나는 과연 그 선배와 함께 일하던 모든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진실되게 말하고 행동했는가. 그렇다면 나는 왜 이렇게 알 수 없는 후회들에 휩싸여있는 것일까.


나를 너무 예뻐해 주고, 인간적으로 잘 대해주던 선배의 호의가 때로는 부담스럽기도 했다. 진심으로 너무 감사하긴 했지만, 같이 일을 해야 하는 관계에서 너무 많은 감정과 추억을 공유하는 것이 무서웠다. 언제든 퇴사를 하거나, 부서가 바뀌거나, 점점 관계가 단절되고 멀어지기 시작할 때 찾아올 아쉬움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별이 두려워 사랑하기를 겁내는. 결국엔 헤어질 게 두려워 마음 열기를 신중히 하는. 선배한테 했던 나의 행동들도 그런 모습이었다. 회사는 회사고 일은 일이라 생각했기에, 언제든 이 회사를 떠나면 시나브로 끊어질 인연이라고 여겼었나 보다. 그런데 막상 그 끝에 서보니, 나에게 누구보다도 인간적이고 따뜻하게 대해줬던 선배에게 나는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것만 같아서 너무 괴롭고 힘들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사랑 아니면 상처, 둘 중 하나가 남는다. 나는 회사라는 조직에서 내가 상처 받게 될까 봐 무서워 누구에게도 쉽사리 마음 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선배와의 이별을 경험하면서, 그런 내 모습을 반성하게 되었다.


나는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100% 내 업무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렴풋이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아직까지 정답은 모르겠다. 다만, 일을 잘하는 것, 더 좋은 성과를 만들어내고 조직 안에서 인정을 받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관계적인 의미가 회사 안에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도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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