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에선 일이 사람보다 중요하지만, 나에겐 일보다 사람이 더 중요했다.
사회생활에서는 사람보다 일이 먼저다. 공유된 목표를 달성해가는 것이 언제나 최우선이고, 인간적인 감정을 헤아리고 서로 살펴주는 것은 그 목적을 이루어 가는 과정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일과 사람, 그 둘 사이의 우선순위가 흔들린다면 일을 진행하는 것이 굉장히 불편해질 수 있다.
그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마음으로는 완전히 동의하지 못한 나였다. 그렇기에, A 선배와의 이별을 충분히 슬퍼하지 못한 상황에서 업무를 정상화시키는 것에만 분주한 사무실의 움직임이 너무나도 실망스러웠다.
A 선배의 발인을 마치고 다음날, 급작스럽게 본부 점심 회식이 잡혔다. 음식이 나오기 전, 자리를 마련하신 상사분께서 어렵게 입을 떼셨다. 요지는 이거였다.
'다들 슬픈 마음에 힘들어하고 있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다. 가까이에서 일하던 동료와의 이별이 자기도 너무 당혹스럽다. 그런데, 또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냐. 이 시간 이후로 그리운 감정은 떨쳐버리고, 사무실도 얼른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도록 힘써보자'.
그분의 위치에서 꼭 해야 하는 말이었고, 또 맞는 말이기도 했다. 조직은 굴러가야 하는데, 구성원들이 언제까지 감정적인 것들에 사로잡혀 혼란스러워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으셨겠지. 사회에선 일이 잘 처리되는 게 감정보다 더 중요한 거니까. 그래도, 어쩜 그렇게 단 하루 만에 그런 자리를 만들 생각을 할 수 있는 건지,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 상사분의 당부(혹은 압박) 때문인지, 아니면 다들 자기 살 길 찾기에 급급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사무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자리를 잡아갔다. 정말 너무나도 실망스러웠다. 물론, 다들 속으로는 슬프고 아쉬운 감정을 끌어안고 있었겠지만(그렇게 믿고 싶다), 어쩜 그렇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하하호호 웃으며 평상시처럼 일을 할 수 있는 건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아직 어리고 경험도 부족해서 일과 감정을 잘 분리해내지 못했던 것일 수 있다. 아니, 그런 것이었다. 나도 나의 그런 불편한 감정이 옳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마음을 다잡고 업무에 집중하려고 해도 인수인계받았던 자료들 곳곳에서 보이는 선배의 이름과 흔적들을 볼 때마다 심장이 덜컹거려서 도저히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당장에라도 사무실을 뛰쳐나가 버리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튀어 올랐다.
그런 내 마음을 붙잡고 있던 것은 A 선배가 남기고 갔던 당부의 말이었다. '영재님! 팀장님하고 B선배 옆에서 잘 도와드려야 돼요'. 본인이 떠나는 판국에도 남겨진 사람들의 안위를 걱정해주던 선배의 인간적인 당부의 말이 이제는 유언처럼 귓가를 맴돌고 있었다.
나야 재계약 시점에 도달하기도 했고, 그간의 경험과 퇴직금, 실업급여를 챙겨서 이 잔인하고 냉정한 조직을 훌쩍 떠나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하는 게 속도 편하고, 정신 건강에도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퇴사를 한다고 했을 때, 남아있는 사람들 중 곤란해질 사람은 나와 가장 가까이에서 일을 주고받던 팀장님과 B 선배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이야 그다지 큰 신경도 안 썼을 것이고(한 일주일 정도 입방아에 오르다가 사그라들 가십거리 정도였겠지).
그런 상황을 A 선배가 본다면 속상해하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조직 안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내 코가 석자인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A 선배의 부탁 아닌 부탁을 끝까지 지켜드리고 싶었다. 때문에, 나는 팀장님과 B 선배의 일을 조금 더 잘 도와드려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잔류를 결정했다.
그렇게 재계약 협상 시즌이 찾아왔다. 팀장님은 조심스럽게 내가 원하는 처우가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셨다. 어떻게든 내가 원하는 조건에 맞춰주려고 노력해볼 테니 필요한 것들을 말해보라고 하셨다.
나는 아무 요구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마음은 잔류하는 쪽으로 기울어진 마당에 처우가 뭐가 대수냐고 생각했다(지금이었다면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재계약 협상 테이블에서 침묵을 지키던 나의 태도를 팀장님이 어떻게 해석하셨을지 잘 모르겠지만, 팀장님은 더 이상 내 마음을 캐묻지 않으셨다. 그냥 알겠다고, 본인이 알아서 힘써주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재계약 연봉 협상은 끝이 났다.
그러고 일주일 정도 지나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계약서에는 내 예상을 훨씬 웃도는 급여액이 적혀있었다(그래 봤자 계약직 월급이라 초라한 금액이긴 했지만). 후에 들은 얘기로는, 팀장님이 나의 처우를 조금이라도 더 올려주시기 위해 굉장히 많은 노력을 하셨다고 들었다. 돈을 더 받게 돼서가 아니라, 인간적으로 대우받고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어서 감사했다. 이런 관리자와 함께라면 이 회사에서 조금 더 버텨볼 이유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고대 이스라엘에는 희년이라는 절기가 있었다(7년에 한 번 있던 안식년이 7번 지나고 맞게 되는 다음 50번째 해를 뜻한다). 희년이 되면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따라야 하는 규례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주인에게 속해있던 모든 동족인 노예들을 해방시켜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희년은 자유의 해였다. 그간 억눌려 있던 자유를 향한 갈망이 터져 나오던 기쁨의 해. 그런데, 희년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노예가 자발적으로 자유를 포기하고 주인에게 계속 속해있기를 희망한다면 종으로 남아있을 수 있었다. 대신, 그에 대한 표식으로 문설주에 귀를 대고 송곳으로 뚫어 영원히 그 집의 종이 되었음을 나타내야 했다.
종의 신분을 벗어날 기회를 포기한 종들은 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당장 먹고사는 게 묘연했다거나, 하는 일이 생각보다 꿀이라 계속 종으로 사는 게 이득이었다거나, 주인에게 인정받고 있는 종이라 지금의 본인 위치에서 나름의 자존감 상승효과를 보고 있었다거나.
아니면 주인의 인간적인 매력 때문에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싶었다거나, 자신의 부재로 자신을 인간적으로 대해주던 감사한 사람들이 곤란해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거나. 귀 뚫음에는 분명 각자만의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1년의 계약 만료 시점은 나에게 희년이었다. 나는 답답한 회사 생활에서 도망쳐 나와 자유를 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자유를 선택하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의 선택으로 귀를 뚫었다. 이유는 단연코 '사람'이었다. 첫째로는 평생 추억으로만 함께 하게 된 A 선배와의 관계에 앞으로도 계속 떳떳하고 싶어서. 둘째로 아직은 나를 인간적으로 대우해주고 신경 써주는 사람이 조직 안에 있었기에.
조직에서는 일이 사람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일보다 사람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런 내 믿음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라도 나는 잔류를 결정해야만 했다. 그렇게, 새로운 1년의 계약직 생활이 다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