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잘하는 사람이 착한 사람이다.

주변 사람들의 힘듦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선 내 일부터 잘해야 한다.

by Jay

일 잘하는 사람 vs 착한 사람


성격은 여리고 순하데 일은 더럽게 못하는 사람, 반대로 성격은 좀 별로여도 자기 일 하나만큼은 깔끔하게 처리해내는 사람, 둘 중 어떤 사람이 직장 동료로 더 낫다고 생각하시나요?


지인들과 우스갯소리로 농담을 주고받은 적이 있다. 의견이 분분했지만, 내 주변 사람들은 대체로 후자를 택했다. 회사는 일을 하려고 모이는 조직이니, 다른 조건 다 떠나서 일 잘하는 게 갑이라는 것이다(당연히 일도 잘하고 성격도 착하다면 베스트겠지만, 그런 사람이 정말 흔치 않다는 게 또한 공통의 의견이었다).


'착하다'라는 단어에 따르는 성품들(예컨대 여리다, 순하다, 이해심이 많다, 배려한다, 양보한다 등)의 가치는 상황에 따라 가변적이다. 착한 게 언제 어디서나 좋은 것은 아니다. 아니, 착함의 척도가 상황과 환경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착함에도 TPO(Time, Place, Occasion)가 존재하며, 때와 장소에 맞게 적절한 방식으로 착해야 한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안타깝게도 착한 사람이 아니라 바보 같은 사람으로 전락해 버리기 십상이다.




친구들하고 어울릴 때에야 얘기도 잘 들어주고, 배려하고, 자기주장을 굽힐 줄 아는 것이 착함의 척도겠지만, 사회생활에서는 이 사람 저 사람 얘기 다 들어주고, 배려해주는 것이 절대로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러다 된통 손해를 본다거나, 일을 크게 그르치게 되는 경우가 왕왕 생기기 때문이다.


회사라는 조직은 일을 하려고 모인 곳이기 때문에 맡겨진 일을 책임감 있게 완수해내는 것이 '착함'이라는 성품에 선행돼야 하는 선제조건이다. 일을 잘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배려를 잘하고 정이 많아도 소용없다. 다 주제넘은 오지랖에 불과하다. 그럴 시간 있으면 자기 일이나 똑바로 하라는 게 사회가 갖는 오지라퍼에 대한 보편적인 시선이다.


물론, 일을 잘한다고 다 착하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의 결과에 책임을 질 수 있게 되는 것은 가장 우선돼야 하는 착함의 조건이다. 인성적인 부분을 떠나서, 일을 못해서 다른 누군가에게 해를 끼친다면 그것만으로도 사회라는 TPO에서의 착함의 기준에는 부적격이 된다.




마음이 없진 않았지만, 실력은 없었다.


1년이 조금 넘게 일을 해오던 나는 그제야 내가 신경 써야 하는 업무범위 안에서 가까스로 사고 치지 않고 1인분의 몫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돼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내 주변 사람들에게 오지랖을 부릴 만큼의 여유가 있지는 않았다(그 여유는 연차나 경험의 축적만으로 생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보다 특별한 노력과 관심이 필요한 부분이었다).


그러한 내 눈에 특별히 두드러지게 밟혔던 대상은 나보다 늦게 회사에 입사한 후배 계약직 직원들이었다. 대개는 나보다 어렸고, 사회생활이 처음이었으며, 첫 조직생활에 뭘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몰라 크고 작은 실수를 만들어내고 있었다(1년 전 처음 이 회사에 입사했던 나처럼).


내가 어느 정도 해소한 사회생활의 어려움들을 답습하고 있던 후배들을 보고 있으면 괜히 마음이 찡해졌다. 나 혼자 상처도 많이 받고 속앓이 하던 날들이 떠올라서 일도 좀 더 봐주고, 힘든 일이 없는지 얘기도 찬찬히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마구마구 피어올랐다. 그런데, 나에게 그럴 여유 따위는 없었다. 내 앞가림도 말 그대로 '가까스로' 하고 있던 터라, 다른 사람을 위해 시간과 감정을 들여 도움을 줄 엄두가 좀처럼 나지 않았다. 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내 업무에만 매몰되어 있었다.




내가 나의 상황과 업무들에만 집중하고 있는 동안 수많은 계약직 직원들이 사무실에 들어오고 나가길 반복했다. 길게는 1년 계약 기간을 마치고 떠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입사한 지 반년도 안돼서 안타깝게 퇴사를 결정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각자에게 여러 가지 사연들이 있었겠지만, 내가 보기에 대부분은 사회의 차갑고 냉정한 현실의 벽을 뚫지 못하고 쫓겨나듯 나가는 케이스였다.


사회라는 곳에 부적응한 자신을 자책하며 의기소침해하고, 때로는 눈물을 보이며 조직을 떠나가던 후배들을 지켜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주로는 패잔병이 되어 이 전쟁터를 떠나는 저들의 발걸음을 지켜주기에는 아직도 한참 부족했던 나 자신에 대한 반성이었다.


자기 먹고살기에 급급해 주변을 돌보지 못한 다른 사람들에게 탓을 돌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라고 다를 게 하나도 없었으니까. 나도 나에게 온 책임을 감당하는 것이 버거워서 충분히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에서도 눈을 감거나 외면해버리기 일쑤였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실력은 없었다. 그렇기에, 나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선택들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일을 잘해야 착할 수 있다.


본래 조직은 '책임'을 나눠 갖는 곳이고, 각자가 각자의 책임을 다 한다면 큰 문제없이 돌아가게 되는 곳이 '사회'다. 조직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는 건 누군가가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렇게 됐을 때, 잘못한 사람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움을 주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책임을 다 해내지 못한 사람이다.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조직의 구성원들은 우선적으로 각자가 맡은 일을 책임감 있게 잘 해내야 한다. 때문에, 다른 사람의 상황을 다 챙겨주지 못하고 자기 일에만 전념하는 것을 누구도 이기적이라고 비난할 수 없다. 자기 일에서 문제가 생길 게 걱정이 된다면,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챙기기보다는 자기 업무의 급한 불부터 끄는 게 순서적으로 맞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의 상황을 챙기고 살펴주고 싶다면,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의 인정과 존경을 받고 싶다면 가장 먼저는 내 일을 잘해야 한다. 자기 일을 잘 해냄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 것이 먼저고, 그 다음 추가적으로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살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자신에게 주어지는 업무가 100이라고 했을 때, 자신은 150의 업무를 감당할 수 있는 실력과 여유를 갖춰야 한다. 물론,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선 굉장히 많은 노력을 쏟아부어야 하기 때문에 정말 쉽지 않은 일이고, 또 피곤한 일이다.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런 식의 사회생활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이기심이라는 현상이 오히려 보편적인 사회의 모습을 보면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떻게 해서든 그 정도의 실력과 여유를 갖추고 보다 많은 사람들의 힘듦을 살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것이 내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목표로 하고 있던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갖춰야 하는 덕목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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