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의 평가는 월급쟁이 직장인들을 줄세우는 성적표와 같은 것이다.
조직에 속해있다면 좋든 싫든 평가를 받게 되어있다. 업무적인 성과는 물론이고 대인관계, 성실도, 조직에 대한 충성심 등에도 평가의 잣대가 놓인다. '이 사람이 조직에 얼마나 필요한 인재입니까?'에 대한 답변은 이러한 평가의 과정을 통해 도출된다. 조직의 평가는 월급쟁이 직장인들을 줄 세우기 위한 성적표 같은 것이다.
'평가'는 굉장히 민감한 이슈다. 승진이나 상여금 등 인사적 조치와 연결돼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에 앞서 개인의 '자존감'과 직결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세상에 일을 잘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기분 좋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특히, 평가 결과가 주변 동료와 눈에 띄게 차이가 난다면 이는 극심한 자존감 하락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사회라는 시스템이 기본적으로 경쟁을 근간으로 하고 있는 이상, 모든 사람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평가는 존재할 수 없다. 누군가 좋은 평가를 받았다면, 누군가는 반드시 아쉬운 평가를 받게 되어 있다. 때문에, 조직에서 이루어지는 '평가'는 언제나 많은 논란의 소지를 가지고 있다.
누가 봐도 이견이 없으려면 정량적 지표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일 잘하는 사람의 덕목 중 수치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사람들과의 관계성이 좋아 팀 분위기를 좋게 해주는 사람은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를 만들지 못하더라도 팀에 꼭 필요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정량적 평가의 잣대만 댄다면 곤란하다. 그 사람의 가치는 그 사람이 만들어내는 숫자 이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을 체크하고 알맞게 평가를 내리는 것이 관리자의 역할이다. 조직의 관리자는 누가 일을 잘하는지, 누가 우리 조직에 정말 필요한 사람인지를 잘 분별해야 한다. 그래서 최대한 합리적이고 납득이 될만한 평가를 내려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직 구성원들의 근무 의욕은 현격하게 저하된다.
평가에 있어서 관리자의 감정과 주관이 지나치게 많이 투여되면 조직은 정치판이 돼버린다. 어떻게든 관리자의 눈과 마음에 들기 위해 자신의 실적을 과대 포장하고, 남들의 성과는 교묘하게 깎아내리는 사태가 벌어진다. 이런 분위기가 퍼지기 시작한 조직은 절대로 생산성을 높일 수 없다. 업무를 처리하는 것보다 관리자에게 예쁨을 받는 것이 생존에 더 유리하다는 사고가 만연해지면서, 업무보다 정치질에 더 집중하게 된다.
특히, 인사 고과의 달인 12월은 1년 농사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는 중요한 시기다. 이 시즌만 되면 다들 어떻게든 자신의 존재감을 조금이라도 더 드러내려 용을 쓴다. 정량적 성과를 부풀리기 위해 없던 매출을 끌어당겨 만들어 내기도 하고, 생전 운동이랑 담을 쌓던 사람들이 산악회 모임을 기웃거리기도 한다(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을 가진 높으신 분이 산을 좋아하셨다). 어떻게든 관리자 눈에 한 번 더 들어보겠다고 그렇게 다들 야단을 떤다.
그런 모습을 그다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던 나였다. 평상시에 자기 할 일이나 잘할 것이지, 꼭 저렇게 연말이 돼서야 유난을 떠는 게 솔직히 꼴 보기 싫었다.
나는 '사회생활'이 아니라 '일'을 잘하고 싶었다. 그리고, '사회생활'이 아니라 '일'로만 평가받고 싶었다. 내가 일을 하는 것과, 그를 통해 만들어낸 결과물만 보면 '이 사람은 우리 조직에 꼭 필요한 사람이다'라는 것이 증명됐으면 했다. 그래서, 좋은 평가가 매겨지길 바라며 관리자들에게 잘 보이려는 행동들을 더 하지 않으려 했다. 그것이 1년 반 가량을 계약직으로 일하면서 꾸역꾸역 지켜온 내 자존심이었다(그때의 나는 내 힘으로 지켜내야 할 게 많지 않아 삶이 덜 절박했던 거 같다).
2020년에 정규직 전환 심사가 걸려 있던 나에게 2019년 연말의 인사평가는 꽤 중요한 이슈였다. '영재가 이제는 뭘 보여줘야 할 때다'라는 얘기를 면전으로도 몇 번을 들으니 부담이 많이 됐다. '나는 내 일만 잘하면 된다'라는 마음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영재가 정규직 전환이 되려나'하는 생각을 갖고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행동 하나하나가 부자연스러워졌다.
내가 원하는 것은 정규직 전환이 아니었다. 대신, '영재가 일을 진짜 잘해서 없으면 업무에 지장이 생긴다'라는 평가를 받고 싶었다. 정규직이 되고 싶어서 내가 목을 매는 게 아니라, 조직이 나를 나가지 못하게 붙잡으려고 애쓰는, 그런 형국이 되길 바랐다. 물론, 굉장히 교만한 생각이었을 수 있지만 어찌 됐건 내가 사회생활에서 목표하는 바는 다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나만의 대체 불가능성을 갖추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확실한 결과로 보여줘야 했다. 내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맡아서 했다면 만들어지지 않았을 아름답고 확실한 숫자적 성과. 감사하게도 팀장님은 그런 나의 고집을 꺾으려 하지 않으시고, 맞춤 맞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시선이 몰릴만한 중요도 있는 일을 적절한 시기에 나에게 던져주셨다. 굳이 산악회 모임에 가지 않더라도, 그 프로젝트만 잘 해내면 관리자들의 눈에 확실하게 도장 찍을 수 있도록 판을 짜주셨다.
매년 연말이면 조직이 목표했던 1년 성과를 맞추기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들이 동원된다. 계산서를 미리 당겨 끊어 매출을 발생시키기도 하고, 원가 사용 내역을 뒤집어 까면서 수익률을 맞추기도 한다. 2019년 연말에는 이와 같은 맥락에서 급하게 본부에 추가 매출을 발생시키기 위해 예정에 없던 하나의 신규 프로젝트가 급하게 기획되었다. 본부 1년 농사의 대세에 영향을 미칠만한 프로젝트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단기에 꽤 큰 매출을 발생시킬 수 있어 많은 사람의 기대가 걸려있던 프로젝트였다.
한창 평가의 시즌인 12월, 당장 매출이 급한 본부의 실적 메꾸기용 프로젝트, 본부 사람들은 물론이고 회사의 더 높으신 분들까지 관심을 가질만한 이슈였다. 팀장님은 그 정도 중요도 있는 업무의 PM 자리에 과감하게 내 이름을 올려주셨다.
판은 잘 짜졌다. 이제 그 프로젝트를 잘 기획하고 운영해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내 몫이었다. 크고 중요한 경기에 선수를 선발 출전시켜주는 건 감독의 권한이지만, 필드에 나가서 직접 뛰면서 골을 넣는 건 선수의 몫이니까. 2019년 연말, 평가의 달 12월, 나는 나 스스로가 충분히 매력적이고 대체 불가능한 자원임을 증명해 보여야 하는 과제를 끌어안고 있었다. 그 과제를 잘 풀어내 좋은 평가와 인정을 마침내 받아내고야 마는 것, 그것이 나에게 도전적 과제이자 목표였다.
조직에 속해있다면 좋든 실든 평가를 받게 되어 있다. 한 사람에 대한 조직의 평가는 월급쟁이 직장인들에게 매겨지는 성적표 같은 것이다.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일을 진짜 소름 돋게 잘한다. 둘째, 점수를 매기는 채점관한테 잘 보인다.
두 번째 방법이 페어플레이가 전제되는 학교에서는 잘 허용되지 않지만, 사회는 실전이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첫 번째 방법보다 두 번째 방법이 더 좋은 평가와 인정을 끌어내는 데 유리하기도 하다. 적어도 내가 속해있던 조직만큼은 실력 있는 사람보다 사회생활을 잘하는 사람이 더 많이 인정받는 곳이었고, 빠르게 성공가도를 타는 곳이었다.
첫 번째 방법이 무조건 옳고, 두 번째 방법은 잘못된 거라고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사랑하는 사람과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몸에 맞지 않는 불편한 사회생활을 견뎌내는 것도 엄청난 능력임을 인정한다. 결국, 옳고 그름의 문제이기보다는 '신념'의 문제인 것이다. 내 신념은 오직 '일을 더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것' 뿐이었다. 이 회사에서 쫓겨날지언정 나는 내 신념을 지켜내고 싶었다(다시 언급하지만, 나는 지켜내야 할 게 많지 않아 삶이 덜 절박했다). 나아가서, 내 신념대로 행동할 때에도 충분히 좋은 평가와 인정을 받을 수 있음을 증명받고 싶었다.
그래서 2019년 연말, 누구보다도 치열하고 열심히 일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까지 업무에 몰입했었나 싶을 정도로 일을 했다. 그 과정이 힘들긴 했지만,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 말고는 내 신념을 증명받기 위해선 그렇게 간절하게 노력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