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하는 배인 줄 알면서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불쌍한 선원들 이야기
코로나로 인한 혼돈의 상황이 계속되면서 그로 인한 경영 악화의 수렁 또한 끝을 모르고 깊어졌다. 말 그대로 '속수무책'이었다. 코로나 확산과 관련된 이슈들이 하나 둘 터질 때마다 매출 실적이 요동치면서 회사는 크게 휘청거렸다.
우리 조직이 만일 생존력 있는 조직이었다면 큰 위기에 놓인 그 상황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을 쳤어야 했다. 어떻게든 변화를 시도해야 했고, 타당한 향후 계획과 전략을 마련해야 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런 움직임이 전무했다. 우리 조직은 낭떠러지 끝까지 몰려서 떨어지기 직전인데도 몸부림 한 번 쳐볼 생각 하지 못하던, 생명력을 잃은 죽은 조직이었다.
회사의 방향성을 제시해야 할 임원분들이 하나같이 침묵했다. '난 이 일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스탠스로 일관하면서 두 손 놓고 방관했다. 가만히 있다 보면 언젠가 지나갈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전사적으로 어떠한 비전도 제시되지 않았고, 덕분에 실무자들은 선장 없는 배의 선원들처럼 갈피를 잃고 방황했다. 사무실 분위기는 어수선함의 극치였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다.
세상의 질서가 새롭게 짜여지고 있는데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기존 것에만 매여있는 것은 곧 죽겠다는 얘기다. 안타깝게도, 우리 조직의 태도가 그랬다. 경영 환경은 급격하게 변하고, 그에 따라 업계의 트렌드도 전부 뒤집어지고 있었는데, 우리는 정체돼있었다. 그 말인즉슨, 우리 회사가 단기에 위기를 극복하고 사업을 정상궤도에 올려놓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그것이 세 번째 단서였다. 어떻게든 닫혀버린 채용문을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서 일말의 희망이라도 가져보려면 회사가 조금이라도 회복하고 이 어려움을 극복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이 보여야 했다. 그게 아닌 이상 내가 아무리 끝까지 책임감 있게 일을 잘 해낼지라도 회사에 내 자리 하나 마련하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전사적인 움직임을 봤을 때 회사가 단기간에 쉽게 회복될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은 너무나도 자명해 보였다. 회복은 커녕, 언제 망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비전 없는 조직.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 조직.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과거의 명성에만 취해있던 조직. 내가 일을 해오던 곳이 하필 그런 곳이었다는 게 나에겐 비극이었다.
이 회사에 대한 비판 어린 시각들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동료들과 사적으로 대화할 때면 언제나 푸념으로 시작해서 푸념으로 끝났다. 이번 연도 성과급이 날아갔다, 곧 있으면 기본급도 줄어드는 거 아니냐(그 우려는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됐다), 사업이 이렇게 안되는데 이러다 회사 망할 거 같다, 이번 기회에 차라리 유튜브나 시작해봐야겠다 등등.
주변 동료들의 일관된 목소리는 '이 회사에 미래가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늘 그렇게 불평을 늘어놓다가도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이 되면 그 속 터지는 회사의 사무실로 제 시간 딱딱 맞춰 출근을 했고, 그 안에 어떻게든 자기 자리 하나 지켜내겠다며, 늦게까지 야근하는 것도 불사하며 안쓰럽게 일을 했다.
다들 말로는 죽을 것 같다고 넋두리를 해도 실상 그 상황을 바꿔보려고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 모두는 곧 바다로 침몰하기 직전인 배 위에서 말로만 '어떡하냐 우리 죽게 생겼다'라고 징징대며 정작 살 길을 만들려고 움직이지는 않던 답답한 선원들이었다. 침몰해가는 배를 끌어올리려는 노력도, 그렇다고 그 배에서 빠져나와 살 길을 찾는 것도 하지 않고 그냥 다 같이 배와 함께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만족스럽지 못하면 이를 바꿔보려고 노력을 해야한다. 조직의 현실이 답답하고 답이 없어 보이면 조직 안에서 무엇인가 새로운 변화를 시도해보던지, 그럴 수 없다면 그 조직에서 벗어나 자신의 인생에 새로운 도전을 만들어볼 생각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조직'이 만들어내는 환상 때문이다. 왠지 조직에 속해있으면 좀 더 안정적일 거 같고, 이 조직을 벗어나서는 험한 풍파와 시련들이 휘몰아칠 것만 같다. 물론,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회사에 머물러 있으면 내 삶이 더 나아지는 것인가? 회사가 과연 내 인생을 어디까지 지켜주고 책임져줄 수 있는 것인가?
회사는 나를 지켜주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때문에, 단순히 이 조직 안에서 인정을 받고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 내 평생의 안위와 안정된 일상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나의 살 길을 찾는 것은 조직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더 철저하게 자기 스스로 설 힘을 길러가는 것이다. 회사 사람들의 평균적인 실력과 감각을 뛰어넘어서, 나만의 강점을 더 부각시키는 것.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조직에서의 '나'를 지켜내느라, 결국 조직의 수준과 한계 안에서 자신의 잠재력과 능력을 규정짓게 된다.
뚜껑이 덮인 병 안에 벼룩이 한 마리 들어있다. 벼룩은 그 공간을 벗어나기 위해 있는 힘껏 뛰어올라보지만, 뚜껑에 머리를 쿵 박고 떨어지고 만다. 실패를 경험한 것이다. 다시 시도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벼룩 주제에 그 무거운 뚜껑을 들어 올리고 밖으로 튀어 나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니까.
그렇게 실패하기를 반복하다 보면, 자신을 가두고 있는 병의 높이 이상으로 스스로가 뛰어오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자기 확신을 잃어버리게 된다. 결국, 나중에는 그 병의 뚜껑을 치우더라도 벼룩은 딱 머리를 박지 않을 정도의 높이까지만 뛰어오른다. 그 답답한 공간 정도로 자신의 잠재력을 한정시킨 것이다.
마찬가지로, 더 나은 조건과 성취를 이뤄낼 수 있는 사람도 조직의 틀 안에 갇혀 유리천장에 머리를 몇 번 들이박다 보면 자신의 수준이 거기까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자신을 가두고 있는 상황과 환경이 그 사람의 발전 가능성을 제한시킨 것이다. 그래서, 분명 다른 더 좋은 상황을 만들어갈 수 있는 잠재력이 충분한 사람들도 더 이상 새로운 시도를 하지 못하게 된다. 학습된 실패감이라는 게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조직 생활에 더 철저하게 길들여진 사람일수록 스스로가 그 조직을 떠나서 충분히 더 좋은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잃어버리기 쉽다. 그래서 배가 침몰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곳을 빠져나와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이다.
자기가 더 높이 뛰어오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잃어버린 직원들은 회사가 주는 '이 조직 안에 머물러있는 것이 가장 안정적인 것이다'라는 환상에 현혹된다. 그 환상은 더더욱 이 조직을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하게 이성을 마비시키고, 사람들을 종속시킨다. 결국, 회사가 아무리 휘청거리고, 직원들의 임금을 삭감하며 부당한 조치를 취하더라도 타당하게 반발하고 새로운 자신의 길을 찾는 걸 주저하게 만든다.
반 강제적으로 시한부 계약직 일상을 마무리지어야 하는 내 처지였지만, 그래도 한 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 회사에서 정규직이 되고, 좀 더 긴 생활 그곳의 문화에 젖어들었다면 나도 결국 침몰하는 배에서 빠져나갈 궁리 못하고 그 안에서 내 인생을 규정짓는 사람들 중 한 명이 됐을 테니까. 만약 그랬다면,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나의 포부도 결국 이 회사에서 생존하는 수준에서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조직이 아닌, 세상 어디에서 어떤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나만의 고유한 색깔로 빛을 내고 싶었다. 그것이 궁극에 내가 바라는 진정한 대체 불가능성의 의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