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터졌고, 회사는 올해 잡혀있던 신규 채용을 전부 캔슬했다.
앞으로 인류의 역사는 BC와 AC로 나눠질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 Before Covid와 After Covid로. 다른 한쪽에서는 After Covid라는 건 없고, With Covid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그만큼 코로나 임팩트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깊숙이 침투해 우리들의 평범한 일상을 강렬하게 뒤흔들어놓고 있다. 사람들끼리 자유롭게 교류하지 못하면서 생기는 혼란이 이 정도로 파급력을 가질 것이란 걸 처음부터 예상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을 정도로 상황은 끝을 모르게 심각해지고 있다. 사람들의 마음에도, 사회 전반에도 너무 큰 병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정말 많은 사람들이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우리 회사 또한 그러한 코로나 임팩트를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우리 회사의 주력 서비스는 오프라인으로만 제공이 가능했다. 때문에, 모임이 제한되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은 비즈니스에 아주 큰 악재였다. 매출을 발생시켜야 하는 서비스의 대부분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회사의 상황은 급속도로 나빠졌다. 자연스레 조직의 존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생겨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목소리들은 현실이 되어 눈 앞에 나타났다.
나와 회사의 작별을 암시하던 두 번째 복선은 '코로나로 인한 급격한 경영 실적 악화'였다. 2020년 초 코로나 팬데믹 상황과 함께 회사의 매출도 곤두박질치게 되면서 회사를 기존과 동일한 사이즈로 운영하는 게 힘든 상황이 됐다. 불필요하게 비대해져 있던 조직은 많은 비용을 발생시켰고, 자연스럽게 인력 감축을 위한 조치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가장 첫 단계로 2020년 예정되어있던 모든 신규 채용 건이 취소됐다. 당연히 추가 계약직 채용도, 계약 연장도, 그리고 계약직 정규 전환 심사도 전부 다 취소됐다. 이미 정규직으로 채용되어있는 사람들을 함부로 자를 수 없었기에, 어찌 보면 타당한 조치였다. 이런 상황을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 임시직을 쓰는 것이기도 하고.
그러한 회사의 조치에 따라 나는 좋든 싫든 회사를 떠나야만 했다. 그동안 기껏 고생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정규직 전환 심사를 받아보지도 못하고 맥없이 쫓겨나야만 하는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천재지변으로 회사 사정이 많이 어려워졌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서운한 감정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조직은 원래 문제가 생기면 반드시 그 일에 책임을 질 사람을 찾기 마련이다. 이번 일처럼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문제 상황에서도, 회사의 실적이 악화되었다면 누군가는 그 결과에 대한 십자가를 져야 한다. 희생양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조직 내에서 그 '희생양'으로 삼기 위해 쟁여놓고 있던 자원들이 어찌 보면 임시직 직원들이었다. 어떤 문제가 생기더라도 책임을 편하게 전가할 수 있으니까.
그동안은 나와 다른 정규직 직원들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왔다. 처우에서는 차이가 있었지만, 그래도 비슷한 일을 하고 있었기에 그냥 동등한 위치에서 '동료'라고만 생각했다(그렇게 생각하는 게 내 멘탈에도 유익했다). 하지만, 회사가 비상체제로 들어서게 되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는 완벽하게 구분이 생겼다. 그들은 힘들어도 이 곳에서 버텨볼 수 있는 법적인 근거가 있었지만, 나는 쫓겨나도 할 말이 없었다. 고용의 안정이라는 것이 왜 중요한지 정말 뼈저리게 느껴볼 수 있는 경험이었다.
조직에 점차 일이 줄어갔고, 비례해서 할 일 없이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가 맡고 있던 사업들 대부분의 연간 일정이 하반기 이후 진행으로 밀리면서, 딱히 할 일 없이 자리를 지키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게 너무 눈치가 보였다. 회사 내부적으로는 '사람을 줄여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했고, 다른 팀에서는 실제로 계약직 직원들부터 하나둘씩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
안 그래도 서운하고 기분도 안 좋은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본부장님의 꼰대 짓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본부의 사업이 잘 안 풀리자 밑에 사람들을 더 심하게 쥐어짜기 시작한 것이다. 틈만 나면 사람들을 자리로 불러들여 실적을 갖고 쪼기 시작했다. 사실, 코로나 때문에 뭘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본부장님도 그걸 모르지 않았을 거다. 그냥, 화풀이할 곳이 필요했던 거 같다. 그 불똥은 나한테도 종종 튀었다. 그때마다 날 향하던 갈굼들이 나에게는 '그만 버티고 빨리 네 발로 나가라'라는 압박으로 느껴졌다.
내 상황은 마치 종료시간 5분 전, 10:0으로 지고 있어서 절대로 역전이 불가능한 축구경기를 뛰고 있는지는 팀 선수와도 같았다. 어차피 질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참 쓰린데, 종료 휘슬이 울리지는 않아서 계속 뛰기는 해야 하는 그런 상황. 질 것을 알더라도 끝가지 최선을 다하는 게 프로 선수의 미덕이겠지만, 그래도 자꾸만 찾아오는 무기력감과 비참한 기분에 도통 일할 맛이 나질 않았다.
그렇다고 홧김에 사표를 던져버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코로나 때문에 당장 다른 회사들도 채용을 줄이고 있던 터라 대책 없이 섣불리 퇴직을 할 수는 없었다. 뭐라도 준비된 게 있으면야 멋지게 때려치우고 내 발로 당당하게 나갈 수 있었을 텐데, 그럴 상황이 정말 아니었다. 나는 내 살길을 찾아가기 위해 뭐라도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일단은 계약이 만료되는 시점까지 눈칫밥 먹어가며 버티기로 했다. 내 자존감을 한없이 갉아먹는 일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거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팀장님과 선배는 내가 회사에서 쫓겨날 것이라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으셨다. 아마도 미안한 감정이 크셨던 거 같다. 그동안 같이 고생하면서 팀을 잘 꾸려 왔는데, 경영 악화로 뜻하지 않게 회사를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자기 사람을 끝까지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같은 감정을 갖지 않으셨나 싶다.
두 분은 대표님이 전사 경영설명회에서 '올해 신입사원 채용은 없습니다'라고 공식 발표를 한걸 듣고서도 쉽게 포기하지 않으셨다. 회사 상황이 아무리 안 좋아도 우리 팀 실적이 전년 동기보다 더 좋으면 그래도 어필해볼 명분이 되지 않겠냐는 생각이셨던 거 같다. 아주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그렇게 쉽게 되는 것도 아니었다. 코로나 시국에 일이 잘 안 풀리는 게 어디 노력이 부족해서이겠는가.
그리고 솔직한 내 심정으로는, 우리 사업이 정말 잘 된다고 해서 내가 정규직으로 전환이 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나 말고도 그 일을 맡아줄 정규직 여유 자원이 남아돌았으니까. 내 기준에서는 승산 없는 싸움이었다. 두 분이야 어떤 마음이든, 사실 내 마음은 이미 절반 이상 포기 상태였다. 그런데도, 팀장님은 항상 입버릇처럼 말하시던 본인의 신념대로 행동하셨다. '안될 때 안되더라도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은 다해봐야 하지 않겠냐'.
팀장님과 선배도 물론 본인들의 입지 때문에 더 실적에 목을 맨 것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나의 정규직 전환 이슈가 걸려있지 않았다면 그 정도로 절박하게 움직이지는 않았을 거 같다. 이미 결정돼버린 결말을 뒤집을 정도의 힘이 있으려면 그 어려운 시기에 누구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엄청난 결과물이 필요했으니까.
팀장님과 선배는 옆에서 보기에 '절박해 보인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업무에 더 집착하고 몰입했다. 그런 노력이 너무 감사했지만, 한편으론 부담이 되기도 했다. 내 힘으로만 이 조직에서 살아남을 수 없게 된 상황 자체도 마음에 안 들었고, 나의 앞가림 때문에 다른 누군가가 너무 절박해져야 한다는 것도 싫었다.
두 분의 책임감 넘치는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열심히 움직이시는 데 나도 이 안에서 살길을 찾아서 뭔가를 더 해봐야 하나?'.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지는 게임에 시간과 에너지를 배팅하고 있는 꼴이었다. 여기서 뭘 더 해볼 시간에 나는 하루라도 빨리 이 곳을 떠날 궁리와 준비를 해야 했다.
두 분이 누구를 위해 그렇게 움직였든, 나는 내 나름대로 나 살 궁리를 하는 게 맞는 거였다. 그런데, 마음은 정말 편치 않았다. 공교롭게도, 내 계약직 생활의 마지막은 참 이래저래 마음 불편하고 스트레스받는 일들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