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해주는 사람의 뒷맛은 진한 그리움이다.
이런 회사는 하루라도 빨리 나가는 게 이득이라고 열심히 자기 암시를 했다. 지금까지 경험들을 발판 삼아 더 좋은 곳으로 점프 뛰면 된다고 마음을 다잡아 보기도 했다. 하지만, 계약 만료일이 다가올수록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처음으로 사회의 문턱을 넘어 세상을 경험하게 해줬던 곳인데, 이렇게 떠나야 한다는 게 못내 아쉬웠나 보다. 원래 모든 '처음'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니까.
퇴사 이후의 거처가 확정되지 않은 내 상황도 미묘하게 흔들리는 감정선을 자극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방학숙제를 다 끝내지 못했는데 내일 개학을 앞두고 있는 학생의 마음이랄까. 나는 아직 충분히 준비되어있지 못했다. 하지만, 계약 종료일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발등이 뜨거웠다.
자연스럽게 회사에서 처리해야 하는 잔업들에 집중이 전혀 되질 않았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무슨 의미가 있지? 잘해봤자 이 안에서 더 인정받거나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기울어져가는 회사에서 나 스스로를 더 성장시킬 수 있는 도전적인 과제를 찾아내는 것도 불가능했다. 무엇보다도, 내가 설렁설렁 일을 한다고 한들 누가 나한테 뭐라고 할 입장도 아니었다.
코로나로 경제가 한창 위축된 상황인지라 괜찮은 회사의 채용 공고를 찾아내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상황 돌아가는 게 너무 좋지 못했다. 새롭게 거처를 찾아야 하는 시점이 역사에 기록될만한 질병과 불황의 시기였다는 게 나한텐 불행이었다. 자격증 준비에, 새로 이력서도 쓰고, 일을 하면서 이직을 같이 준비하려니 시간도 턱없이 부족했다. 당장 내 코가 석자인 상황. 때문에, 나는 내 앞가림을 하는데 더 절박하게 몰입해야 했다.
그런 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내 눈에 밟히던 것은 '남겨질 사람들'이었다(난 끝까지 호구였다). 특히, 가장 가까이에서 같이 일해왔던 사람들. 첫 사회생활에 너무 무섭고 서러운 게 많았는데, 그런 나에게 기대고 의지할만한 버팀목이 되어준 고마운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나의 무책임함으로 인해 조금이라도 곤란해질까 봐 마음이 쓰였다. 내가 끝까지 마무리짓지 못하고 가는 일들은 결국 내 가까이에 있던 누군가에게 전가될 것이었으니까. 마음이 계속 찝찝했다.
아쉽게 상황이 여의치 않아 끝까지 함께 하지는 못하게 됐지만, 그렇다고 그동안 나를 충분히 인간적으로 대해주셨던 분들과 등을 지고 싶진 않았다. 때문에, 아름다운 사람은 머물다 간 자리도 아름답다는 말을 마지막까지 실천해내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끝까지 내가 해오던 일들을 예쁘게 잘 매듭짓고, 정돈해주려고 신경을 정말 많이 썼다.
회사에서 곧 쫓겨나게 될 계약직 직원이 과연 어디까지 일을 잘 마무리해주고 자리를 빼줘야 하는가? 정답은 없다. 각자의 주관적 기준만 있을 뿐이다. 내가 세운 기준은 '감사한 만큼'이었다.
그동안 돈 조금 받으면서 고생만 진창 했던 것도 일면 맞지만, 그래도 돌아보면 감사한 것들도 꽤 있었다. 먼저는 아무도 나를 주목해주지 않고, 어떠한 기대도 해주지 않던 때부터 나를 믿어주고 성장할 기회를 마련해주신 팀장님. 이 피 터지는 전쟁터에서 때론 총알받이도 돼주시고, 살 길도 봐주시고, 당장 퇴사를 초읽기해야 하는 시점까지도 내 정규직 전환 심사를 놓고 끝까지 싸워주신 팀장님. 너무 감사했다.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아왔기에 마땅히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책임을 끝까지 다하고 싶었다.
일이 밀려서 허덕이고 있으면 항상 나서서 도와주고, 같이 야근도 불사해주던 선배에게도 참 고마운 게 많았다. 그리고, 그만큼 내가 맡고 있던 일들을 온전히 다 떠안게 될 선배에게 미안한 마음도 컸다. 가뜩이나 바쁜 회사 일정 따라가느라 건강도 상하고 힘들어하던 걸 보며 마음이 쓰였는데, 내가 처리하던 업무들이 가중되면서 선배가 추가로 감당하게 될 업무적 프레셔들이 신경 쓰였다. 어떻게든 그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고 싶었다.
내 사회생활에 반면교사 되어주었던 몇몇 사람들. 그들에게도 일면 감사했다. '난 절대 저런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다'는 굳은 결의와 각오를 다지게 해 준 몇몇 사람들 덕분에 지난 2년의 시간 동안 더 간절하고 치열하게 성장에 목을 맬 수 있었다. 입 발린 소리일 수 있지만, 어찌 됐건 이 회사는 나를 성장하게 해 주었고 어른이 되게 해 주었다. 그 모든 것들에 응당 보답을 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끝까지 맡은 일들에서 좋은 결과물들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인수인계를 준비했다. 언제 떠나더라도 전혀 업무적인 공백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자세하고 깔끔하게 내 일들을 정돈하고 매듭 지어주는 것이 목표였다.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고 싶다고 시작한 사회생활이지만, 그 끝에선 '누가 와서 내 일을 맡더라도 전혀 공백이 느껴지지 않게 되길' 바라고 있는 게 아이러니했지만, 어찌 됐건 나는 나름 진지했다.
나로 인해 더 힘들어지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난 끝까지 호구였다). 그 마음으로 열심히 업무를 정리하고 인수인계 자료를 만들어갔다. 그게 나의 감사한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었으니까. '고영재'라는 사람이 남겨놓고 가는 뒷맛이 진한 그리움이길 바라면서, 내 뒤를 이어 업무를 인계받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헤매거나 허튼 시간 낭비하지 않도록 일을 잘 정리해주려고 신경을 많이 썼다.
끝을 어떻게 맺어주고 나갔는지는 한 사람의 지난 생활 전체를 평가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요소가 된다. 대개의 사람들은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고, 중간보다 끝에 더 강한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책임감 있게 결말을 맺기 위한 노력을 하길 놓치는 경우가 많다. 회사를 나갈 때가 되면 해오던 일들에 정도 잘 안 가고, 마음도 뜨기 십상이니까. 일을 끝까지 책임감 있게 잘 마무리 짓는다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통상이 그렇기에, 내가 끝을 준비해 가던 방식은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신기한 자극이 됐던 거 같다(약간은 안쓰럽게 생각한 거 같기도 하고). 그 모습을 좋게 봐주셨던 몇몇 분들은 나에게 이직할 자리를 알아봐 주시기도 했다. 개중에는 같이 사업을 해보자고 꽤 진지하게 제안을 주시는 분도 몇 명 계셨다(물론, 그 사람들은 퇴사를 할 게 아니었고, 회사를 다니면서 사이드로 사업을 시도해볼 의향이었다. 그 말인즉슨, 자기는 안전한 곳에 발 디딘 상태로 날 이용하려 했던 것이다. 나쁜 사람들이었다).
그런 말들 하나하나에 감사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내 행실과 노력을 알아주고 있었고, 인정해주고 있었다. 그 사실로도 충분히 마음에 위로가 됐다. 하지만, 그 호의들을 냅다 받아서 다음 단계로 스리슬쩍 쉽게 넘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괜한 자존심일 수 있었지만, 어찌 됐건 나는 이 곳에 있는 누군가의 도움이 아니라 내 힘만으로 나의 앞길을 준비하고 싶었다. 아무리 갈 길이 급하더라도, 타인에게 의존하고 누군가의 도움에 종속돼서 살아가는 삶은 결국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 아집이 빛을 볼 수 있으려면 문제없이 이직을 잘해야 했다. 괜히 뭐라도 되는 마냥 다가오는 호의들 다 거절하고, 마이웨이로 퇴사했는데 이직도 안되고 취업준비만 질질 길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그 사람들 귀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그것도 참 민망한 일이었으니까.
좋은 이별을 하기 위해 일을 끝까지 열심히 해주고, 인수인계 자료도 열심히 만들고 했지만, 그것과 병렬적으로 내가 꼭 해내야 하는 과제가 한 가지 더 있었다. 그것은 '여기보다 더 좋은 곳으로 이직을 잘하는 것'이었다. 그래야 나의 퇴직과 이별을 함께 그리워해 주고 아쉬워해주던 사람들과도 덜 민망하게 작별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안목 없이 나 같은 인재를 회사에 잔류시킬 결정을 내리지 못한 윗분들에게도 소소하지만 복수의 메시지를 던지고 싶으 마음도 있었다(나 같은 인재를 놓치다니, 바보들).
이제 마지막 과제만 잘 해내면 됐다. 그것만 잘 되면 나름 아름답게 지난 2년의 계약직 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최악의 상황에서 그릴 수 있던 나름의 '해피엔딩'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쉽지만은 않았다. 경기는 불황이었고, 채용시장은 얼어 있었으며, 나에겐 이직을 준비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으니까. 그 상황을 어떻게든 뚫고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것. 새로운 회사를 발판 삼아 더 크고 멋지게 성장해 갈 청사진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모두에게 박수받고 이 곳을 떠나기 위해 마지막으로 이뤄내야 하는 나의 최종 미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