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절편 Jan 11. 2024

시작을 좋아해요

사진은 아래 글에서 언급되는 내 인생 첫 롤에 있던 것이며, 강릉 강문해변에서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 오른쪽 탄 듯한 흔적은 필름 사진만의 매력이다.




내게 취미가 많다고들 한다. 이 판단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이것저것 해보긴 하지만 전부 내 취미가 되진 않기 때문이다. 깔짝거리다 진짜 취미로 삼게 된 것은 필름카메라 촬영, 간헐적 드럼 배우기, 나홀로 즉흥 여행 정도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은 해보지 않은 것을 해보는 것이다. 비교적 최근에 깨달은 사실이다. 나는 2년 전, 지난한 생을 그만두기로 마음먹었을 때야 이런 나를 알아버렸다.

n번째 퇴사 후 떠난 강릉이었다. 나는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하기에 앞서, 그곳에서 필름카메라 대여 및 판매로 유명한 가게를 찾았다. 하지만 가게는 닫혀 있었다. 포기하고 가려던 찰나, 문이 열렸다. 휴일에 매장을 청소하기 위해 나왔던 사장님이 마침 계셨던 거다.

카메라를 전혀 몰랐던 나는 커버가 마음에 드는 일회용 카메라를 무작정 구매했다. 그렇게 그때의 강릉을 담은, 이름 모를 필름이 내 인생에서의 첫 롤이 됐다.

사진을 찍는 내내, 나는 행복했던 것 같다. 한 컷 한 컷이 아까운 줄 모르고 빨리 다 찍고 현상하고 싶은 마음에 쉴 새 없이 찍을 거리를 찾아다녔다. 평소였다면 존재 여부도 몰랐을 사람들, 사물들이 피사체가 됐고, 나는 애정을 가득 담아 셔터를 마구 눌렀다.

여행을 마치고 그럴듯한 결과물을 받아 든 날, 필름 사진 찍기처럼 내가 아직 모르는 재미가 세상에 남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조금은 더 살고 싶어져 버렸다. 사장님의 사소한 친절, 어쩌면 큰맘 먹고 베푼 친절이 나를 살린 셈이다.

그때부터 해보지 않은 것을 해보는 것을 힘껏 즐기게 됐다. 매일 글을 쓰는 모임에 자발적으로 가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목표를 완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일단 시작했다는 점에서 새삼 살아있음을 느낀다.

이전 02화 바다를 좋아해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