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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물러서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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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독서리 Oct 31. 2020

갑, 을, 병

그 어느 때보다 상냥하게,  더할 나위 없이 친절하게.  크게 심호흡하고 전화를 한다.


"지금 코로나 때문에 고객님들이 원하시는 상황대로 하기에는 좀 힘든 점이 많습~"


어차피 저 한문장을 다 말하지 못할 것이라는 건 예상했다. 이미 민원 게시판에 올라온 글에서 느껴지는 초대형 '갑 오브 더 갑' 민원인이라는 걸 알아서다. 아니나 다를까 고등어 대가리 자르듯 훅 들어오는 우리의 고객님 덕분에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건 애초에 글렀다. 대부분의 민원인에게 전화를 하면 보통 공통적으로 성질을 낸다. 뭐 민원을 제기한 입장에서야 상대방이 그럴 수 없다는 말을 할 것이라는 알기에 일단 화가 나겠지라고 최대한 이해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원인을 상대하는 건 결코 쉽지 않다.


그렇게 한 통화라도 간신히 끝내고 나면 영혼까지 탈탈 털린 느낌이다. 나도 여기서 나가면 민원인이 되는 건데, 도대체 이렇게 함부로 하는 사람들은 뭐 얼마나 대단한 사람일까라는 생각이 든다.가끔은 커피도 끓여달라, 마스크도 달라, 사장 나와라 등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갑인 민원인들이 참으로 많다.


한번은 버스를 타고 퇴근을 하는데 퇴근길이라 정말 차가 많이 막혔다. 뭐 어쩌겠는가. 다 같이 몰리는 퇴근 시간이니 길이 막히는 건 당연한 것을. 그런데 어떤 사람이 크게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차가 막혀!"


버스 기사님이 조용히 해달라고 몇 번을 말했지만 소용이 없다. 그러다 갑자기 어디론가 전화를 한다. 대화를 들어보니 다산 콜센터다.


"어이! 여기 지금 차가 너무 막히는데, 노량진 앞이거든요. 신호등 좀 초록색으로 바꿔줘요!"


정말 살다 살다 신호등을 초록색으로 바꿔달라고 말하는 민원인은 처음 봤다. 전화를 받고 있는 상대는 얼마나 황당했을까.


'갑'이 되면 좋은가? 아무리 좋데도 '갑질'은 하지 말자. 밖이든 사무실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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