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물러서 07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리수리독서리 Oct 31. 2020

갑, 을, 병

그 어느 때보다 상냥하게,  더할 나위 없이 친절하게.  크게 심호흡하고 전화를 한다.


"지금 코로나 때문에 고객님들이 원하시는 상황대로 하기에는 좀 힘든 점이 많습~"


어차피 저 한문장을 다 말하지 못할 것이라는 건 예상했다. 이미 민원 게시판에 올라온 글에서 느껴지는 초대형 '갑 오브 더 갑' 민원인이라는 걸 알아서다. 아니나 다를까 고등어 대가리 자르듯 훅 들어오는 우리의 고객님 덕분에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건 애초에 글렀다. 대부분의 민원인에게 전화를 하면 보통 공통적으로 성질을 낸다. 뭐 민원을 제기한 입장에서야 상대방이 그럴 수 없다는 말을 할 것이라는 알기에 일단 화가 나겠지라고 최대한 이해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원인을 상대하는 건 결코 쉽지 않다.


그렇게 한 통화라도 간신히 끝내고 나면 영혼까지 탈탈 털린 느낌이다. 나도 여기서 나가면 민원인이 되는 건데, 도대체 이렇게 함부로 하는 사람들은 뭐 얼마나 대단한 사람일까라는 생각이 든다.가끔은 커피도 끓여달라, 마스크도 달라, 사장 나와라 등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갑인 민원인들이 참으로 많다.


한번은 버스를 타고 퇴근을 하는데 퇴근길이라 정말 차가 많이 막혔다. 뭐 어쩌겠는가. 다 같이 몰리는 퇴근 시간이니 길이 막히는 건 당연한 것을. 그런데 어떤 사람이 크게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차가 막혀!"


버스 기사님이 조용히 해달라고 몇 번을 말했지만 소용이 없다. 그러다 갑자기 어디론가 전화를 한다. 대화를 들어보니 다산 콜센터다.


"어이! 여기 지금 차가 너무 막히는데, 노량진 앞이거든요. 신호등 좀 초록색으로 바꿔줘요!"


정말 살다 살다 신호등을 초록색으로 바꿔달라고 말하는 민원인은 처음 봤다. 전화를 받고 있는 상대는 얼마나 황당했을까.


'갑'이 되면 좋은가? 아무리 좋데도 '갑질'은 하지 말자. 밖이든 사무실이든.

이전 06화 Just 10 minute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