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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물러서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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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독서리 Oct 31. 2020

Just 10 minutes

지금의 남편을 만나 태어나 처음으로 스키장을 가봤다. 새하얀 눈위에 빨간색 알파인 보드. 블랙 보드복과 고글을 끼고 있는 모습에 이미 콩깍지가 제대로 씌인 상태였다. 처음으로 간 스키장에서 몇 번의 기본기를 연습시켜주고는 리프트를 타고 중급 코스로 올라갔고 매점에서 따끈한 코코아를 손에 쥐었다. 내려가려고 남편을 찾는데 한 쪽 귀퉁이에서 하얀 담배 연기를 뿜어 내며 서 있었다. 코코아 한 잔으로 겨우 몸을 녹였는데 흡연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그 몇 분은 정말 최악이었다. 


어쨌든 내 인생에 담배피는 남자는 절대 용납할 수가 없었다. 담배를 끊지  않으면 결혼은 하지  않겠노라 으름장을 놨고, 결국 남편은 금연을 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담배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던 적은 없다.  


그런 내가 회사를 다니면서 '나도 담배?'라는 생각이 들었다.


법으로 정해진 근로자의 휴식은 4시간 근로를 하면 주어지는 30분을 긁어모아 1시간의 점심시간을 갖는 것이 전부다. 그러기에 화장실 정도 가는 것 외에는 누군가와 잠시 담소를 나누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


그런데 담배를 피는 직원들은 좀 달라 보였다. 잠시 사라져도 담배 피우러 나갔다고 하면 'OK'다. 커피는 매번 밖에 나가 마실수 없지만 담배는 일단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건물밖으로 나가야한다.


우르르 몰려서 하얀 연기를 내는 건 싫지만, 가끔 그냥 그 틈에 껴서 쉬고 싶다. 종이컵 한 잔에 담긴 커피를 마시면서 잠시 핸드폰을 쳐다보는 10분은 왠지 죄를 짓는 기분이나, 담배를 피는 10분은 사회적으로 암묵적으로 용인되는 just 10 minutes 이다.


남의 돈 벌기 쉽지 않다. 내 시간인듯 내꺼 아닌 8시간. 같은 시간 일한다고 모두가 같은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닌 현실.


'짬'이라도 차야 잠깐 쉬는 '짬'에서 좀 자유로우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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