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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물러서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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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독서리 May 05. 2020

업글 인간

할 수 있다 vs 없다

잠에서 깨자마자 주섬주섬 옷을 입고 줄넘기를 챙긴다. 부스스한 머리를 질끈 묶고는 식구들이 깰까 봐 조용히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갈 곳 잃은 앞머리를 추스르며 엘리베이터에 비친 모습을 보면 뭐 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새벽의 싸늘한 공기에 몸이 움츠러들긴 하지만 크게 심호흡을 하고 가볍게 10분 정도 달리기를 시작한다. 차갑기만 했던 공기가 금세 시원하게 느껴지고, 요리조리 몸의 관절을 풀어주며 뛰어본다. 몸도 정신도 깨고 나면 습관처럼 줄넘기를 시작한다. 하나, 둘, 셋,...,... 150개 정도를 1세트로 중간중간 요령껏 쉬어가며 1,000개를 해낸다. 새벽의 조용한 놀이터에서 혼자만 거칠게 숨을 몰아쉰다. 시간이 지날수록 출근하는 사람들이 지나가는데 그럴 때일수록 괜히 의식해서는 더 열심히 줄넘기를 한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목의 칼칼함이 극에 달할 즈음이면 30분 정도가 지나있을 때다. 안팎으로 찐 살들과 지방이 타들어갔을 것이란 기대를 하며 오늘도 해냈다는 성취감에 운동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다.    

이런 생활을 시작한지 3주가 되어간다. 운동을 하는 것은 원래 즐겨했으나, 아이를 낳고 회사를 다니면서 7년간 땀을 흘릴 만큼의 운동을 한 적이 없다. 그 이유야 수백 개도 적을 수 있으나, 그 밑바탕은 게으름이었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늘 운동할 시간이 없다는 말로 7년을 버텨왔고, 할 수 있는 운동이 없다고 징징거렸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부터 옷을 살 때는 라지 사이즈만 찾고 있었고, 늘 엉덩이를 덮는 펑퍼짐한 긴 상의만 입게 됐다. 밴딩이 있는 바지가 편했고, 오프라인 매장보다 온라인에서 옷을 사는 일이 편했다. 사이즈가 다른 두 개의 바지를 들고 가서 일일이 입어보는 것도 싫었고, 그 두 개마저도 맞지 않는 날이면 그런 내가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졌다. 물론 온라인으로 산 옷도 사이즈가 맞지 않아 교환을 하게 되는 일이 생기면 그냥 반품을 하고 말았다.      


이런 나에게 갑자기 운동을 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된 것은 건강상의 이유도, 의사의 권고도 아닌 엄마의 팩트 폭격이었다.


상황은 이랬다. 저녁을 거나하게 먹고 또다시 후식 주전부리를 찾아 냉장고를 뒤지기 시작했다. 아이가 먹을 간식이라는 미명 아래 사다 놓은 과자들을 훑어보며 아사삭 씹어먹을 생각에 이미 먹고 있는 듯 행복감을 만끽하던 그때였다. 아마 엄마가 뒤에 서 있었다면 등짝 스매싱을 맞았을지도 모른다. 뒷모습을 보며 쏟아지는 잔소리 겸 팩트. 옆구리에 살이 삐져나왔다는...,... 이제 아줌마가 다 됐다는...,... 살이 참 많이도 쪘다는 등. 줄줄이 비슷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뭔가 대단한 비밀이라도 들킨것마냥 등줄기에는 땀이 한 방울 떨어지는 듯 했다. 냉장고에 손을 뻗어 뭐라도 꺼내 먹는다면 더한 소리가 이어졌을터, 어쨌든 뒷모습만으로도 기분이 상했다는 걸 눈치챘는지 대충 얼버무리며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이만 저만 충격이 아니었다. 몰래 도둑질이라도 하다가 들킨 것마냥 괜히 뜨끔했던 이유를 찾자면, 살이 쪘고, 계속 찌고 있음을 알았지만 이 정도면 괜찮다고 지내왔던 속내가 들켜서일꺼다. 남들 눈에 그렇게 뚱뚱하게 비쳐지지는 않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어쨌든 그 날 이후로 누가 시키지 않아도 뭐라도 해야만 했다. 살을 빼야했고, 먹는 걸 줄여야 했고, 땀을 내는 운동을 시작해야 했다.


가족들은 모르지만 작년 건강검진에서는 ‘경도비만’이라는 판정을 받았었다. 살면서 비만의 범주에 속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에 당시에는 꽤나 충격이긴 했다. 의사 역시도 일주일에 3회 정도는 숨이 찰 만큼의 운동을 꼭 하셔야 한다는 이야기를 건네 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비만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는지 결과지를 책장 사이에 꾸깃꾸깃 넣어놓고는 두 번 다시 꺼내보지 않았다. 건강검진 결과에 대해 묻는 남편에게도 특별한 내용은 없다고 얼버무렸다.     

 

어쨌든 엄마의 한 마디로 쏘아 올린 공이 날개가 되어 날이면 날마다 운동을 하는 생활 패턴으로 살고 있다. 운동할 시간이 없다고 했지만 시간을 만들어냈고, 할 수 있는 운동이 없다고 했으나 줄넘기를 잡고 있다.


새벽4시에 일어나 책을 읽고, 무언가를 쓰고, 공모전에 입상하거나 혹은 책을 출간하는 것. 또는 자격증을 따고 영어 점수에 목을 매는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는 것에만 집중했다면, 지금은 건강한 몸상태로 스스로를 돌보는 것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성공보다 성장에 초점을 맞추는 '업글인간'으로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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