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감정

제1화 있는 그대로 느껴지는 대로

by 작가 헤르쯔

한때 감사일기를 열심히 썼던 적이 있더랬다.

부정적인 감정은 부정적인 결과를 나오게 하니 행복한 삶, 성공한 삶을 살고 싶다면 감사일기를 쓰라고 책에서도 성공한 사람들의 입에서도 스쳐 지나가는 산들바람 같은 사람에게도 들었다.


이 좋은 말을 듣고 크게 감동한 나는 그 후 감사일기를 쓰기로 결심했다. 근데 첫날부터 ‘어... 뭐지... 땡스 한 일이 없다?’ 도대체 뭘 어떻게 써야 할지 난감했다. 그래서 책을 뒤지고 유튜브 영상을 뒤져가며 감사일기 쓰는 법까지 공부했다. 그렇게 해서 겨우 감사한 일을 찾아 쓰게 되었는데... 내용은.


“아침에 눈을 뜰 수 있어 감사합니다”였다.


그렇다. 맞다. 건강하게 눈을 떴으니 감사한 일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감사일기를 쓴 첫날의 기억을 꼼지락 꺼내보자니 뭔가 어색하고 쓰면서도 억지스러웠던 한마디로 부자연스러운 불편함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때는 아마도 이런 걸 해본 적이 없어서, 감사하는 방법을 몰라서 그런 것이라 여겼다.


‘그래 더 노력해야지.. 처음엔 다들 어색하다고 했어....’


근데 이거 뭐지...? 세 달이 넘도록 첫날 느낀 그 감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하물며 “난 왜 이러지... 이거 봐 이거 봐 또 부정적이야... 역시 내가 이래서 안 되는 거야...” 하며 나 자신을 탓했다. 근데 지금 돌이켜 그때의 감사일기를 꺼내보니... ‘쓰길 잘했다. 이런 사소한 일에도 감사할 줄 아는구나. 행복한 기운이 느껴져...’ 하는 게 아닌 여전히 거부감이 느껴지고 애썼다. 라는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결국 감사일기는 내 삶에 어떠한 의미를 주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그렇다면 다른 스타일의 일기를 써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사일기와 정반대인 어쩌면 불평불만이 넘실거리는 어두컴컴한 부정적 일기 말이다. (물론 이런 일기를 남기고 싶어 하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 같다.) 내 소중한 일기장을 욕보이는 게 아닐까? 감사일기처럼 잘 안 써지면 어떡하지? 했는데... 나... 최근에 불만이 많았나 봐... 펜을 꽉쥔 내손은 멈추질 않고 술술 써 내려갔다.


얄미운 남편. 나도 좀 돈 버는 일을 해보려고 일을 벌였는데 계속 적자다. 속상하다. 살이 쪄서 입던 팬티가 허벅지와 골반 사이에 낀다. 팬티 자국이 사라지질 않네 젠장.... 자동차 타이어 바람이 빠져 버렸다. 당황스럽다. 아이 학교에서 갑자기 내일 휴일이라고 연락이 왔다. 이런.. 내일 삼시세끼 차려야 한다. 나 빼고 다들 부자 같고 행복해 보인다. 난 뭐하나 싶어 우울하다. 이곳저곳 성한 곳이 없는 집수리라도 해야 하는데 돈이 없다. 이사 가고 싶다. 내방이 갖고 싶다. 아르바이트하려고 이력서 넣었는데 연락이 없다. 바보들! 나도 젊은이만큼 잘할 수 있다고!!..... 등등 등!!!


**사실 일기장에 쓴 건 좀 더 앞뒤 안 맞고 문장도 엉망에다 욕도 좀... 했다.


정말... 대단할 정도로 잘 써져서 갑자기 헛웃음이 났다.


나는 내가 느끼는 감정 그리고 머릿속에 뿅뿅 솟아나는 단어 들을 솔직하게 풀어낸 후 다시 곱씹어 읽었다. 그러자 또 다른 감정이 빼꼼히 올라왔다. 그건 내가 잘 이겨내서 잘 살아가길 바라는 희망적인 마음이었다. 난 일기를 쓰며 느꼈던 부정적인 감정과 글을 읽고 느낀 긍정적인 생각. 이 양방향의 마음을 번갈아 느꼈다. 그러고 나자 자연스레 내가 해야 할 일이 보이고 고마운 마음도 생겨났다. 그렇다. 난 이렇게 부정적인 감정들을 먼저 다 풀어내야 한다.


감사일기가 분명 어떤 이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나랑은 맞지 않는 방식이다. 나는 자연스러운 게 좋다. 감사일기를 쓰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 생각을 적는 방식이 잘 맞는다.

부정적인 감정이 삶을 망친다는 말이나 성공을 막는다는 소리나 가난한 사람들이 부정적이다라는 시선은 난 받아들일 수 없다. 그 감정이 있기에 삶이 변화하기도 한다. 그 감정을 통해야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이미 원하는 삶을 살고 있고 현재의 감사한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서 쓰는 감사일기라면 분명 삶에 더 좋은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이 부정적인 생각밖에 들지 않고, 엉망이고 우울한 상태라면 우선 불평스러운 마음, 부정적인 마음을 먼저 썼으면 좋겠다. 많이 외면되고 나쁘다고 하는 그 감정도 소중하게 대했으면 좋겠다. 그 감정을 통해 내가 좋은 모습으로 변화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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