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당연한 듯
우리 집은 침실과 거실이 유리문으로 분리되어 있다. 그래서 가족 중 누군가 “자야겠다”라고 말하면 자연스레 집안의 불은 전부다 다 끄고 모두가 침대에 누워야 한다. 남편과 나만 살 때는 어느 정도의 불빛은 개의치 않았는데 아이의 경우는 귀엽게도 작은 불빛도 도깨비라고 생각한다. 특히 컴퓨터에 연결되어있는 하드디스크에서 나오는 빨간색 초록색 불을 가장 무서워한다.
아이가 잠들면 몰래 침대에서 빠져나와 이불과 베개로 내 빈자리를 채워두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이는 엄마가 없다는 것을 빠르게 감지하고 일어나 버린다.
거실 책상에 스탠드의 불빛을 최소로 켜 두고 책을 읽고 일기를 썼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스탠드 조명에 볼이 뜨끈해져 버렸다. 얼굴에 수분도 쫙 빠진 듯 건조했다. 불빛을 이리저리 조절해 보고 해 보지만 얼굴 쪽은 어쩐지 계속 불편했다. 그래서 그냥 다른 걸 해야겠단 생각에 불을 끄고 아이패드를 켜려던 순간 나는 갑자기 한석봉이 생각이 난 것이다. 아... 왜 이러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이미 나는 깜깜한 상태에서 눈까지 감고 수첩에 글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눈까지 감으니 손의 움직임이 더 잘 느껴졌다. 마치 나의 것이 아닌 듯 한 손의 감각이었다. 언제나 손은 나와 하나로 움직였다. 손의 움직임을 의식한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눈을 감으니 내 몸에서 꼭 손만 살아있는 것 같았다.
내 필체는 워낙 못생겨서 사실 안 보이는 채로 글씨를 썼음에도 평상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얼마나 악필이기에..) 그러나 문제는 그림이었다. 눈코 입이 얼굴의 중심으로부터 비껴나가 버린 것이다. 귀도 머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자꾸 보니 왠지 정감이 간다. 눈코 입을 제대로 얼굴 안쪽에 그리겠다고 애쓴 흔적 하지만 결국 비껴나간 얼굴의 형태. 눈을 감았으니 더 망쳐도 상관없는 건데 내 무의식은 이렇게 항상 완벽하게 해내려는 듯 애를 쓰나 보다. 한 번도 내 무의식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내 무의식은 어느 때나 정신 바짝 차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괜히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