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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햇 Mar 26. 2024

산 넘어 산, 미국 박사생 라이프

고군분투 생존기

   개강 12주 차, 남은 주수 4주, 페이퍼 데드라인 9개. 한 주에 2개꼴로 페이퍼를 써야 한다. 학기 막바지에 이게 무슨 날벼락이람. 누가 데드라인을 이렇게 짜는 건지, 페이퍼 공장을 가동해야 하게 생겼다. 정말 힘이 든다, 대학원생은. 


   이런 부침을 느끼는 게 비단 혼자만은 아니었으니, 동기들 모두 단톡방에서나 수업에서나 다들 죽어난다. 아래 사진은 흔한 미국 대학원생 동기의 다소 거친 감정 표현을 공유해 본다. 미국인 친구는 참지 않고 M***** F******을 시전했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성토하고 공감하면서 어찌어찌 버티는 것 같다.


  요즘은 밤낮이고, 주말이고 없이 계속 일한다. 사실 원래는 주말에 수영도 하고, 듄 2도 보러 가려고 했었으나 둘 다 못했다. 너무 화가 난다. 수강과목 4개에 티칭과 목 2개, 내담자 6명, 랩 연구를 저글링 하고 있다. 구멍만 내지 말자를 목표로 달리고 있는데도 너무 버겁다. 바로 지난 주말에는 '하기 싫어 병'에 걸려서 하루 종일 일하면서도 한숨 쉬고, 스트레스받아했다. 들숨에 한숨 날숨에 하기 싫어를 시전 하며 말이다. 스트레스가 너무 쌓여서 만사 제치고 글을 쓰러 들어왔다. 그나마 좋아하는 걸 하면서 스스로를 어르고 달래주어야 할 때가 되어서 그렇다.


 그 와중에 글쓰기만이 나를 기쁘게 한다. 첫 번째 경사 - 미국에서 첫 논문이 나왔다. 리뷰 논문으로, 긍정심리학이 개인의 웰빙을 강조하는 부작용으로 이기주의를 조장한다는 비판론에 대한 방어랄까, 반박을 메인 담론으로 하는 글이다. 주로는 사람을 대상으로 수집한 데이터와 통계를 위주로 한 연구 논문을 쓰는데, 이번 리뷰 논문은 교수님 찬스로 같이 껴서 작업할 기회가 있었다. 관념적이고 철학적이라 따라가기 어려웠지만 나오고 보니 뿌듯하다는 후문이다. 여름 방학에는 주 저자로 들어가는 프로젝트에 속도를 높여보아야겠다. 지금은 도저히 가속을 못하겠다.


    다음 경사. 칸쿤 여행기 1편이 다음 여행/맛집 탭 메인에 게시되었다. 논문도 그렇고 블로그/브런치도 그렇고 글이 잘 팔려서 기분이 좋다. 글쓰기는 할 줄 아는 몇 안 되는 재주 중 하나라서 꾸준히 잘 가꿔가 보려 한다. 사실 블로그나 브런치 포스팅은 커리어적인 목표라기보다는 힐링이나 여가에 가까운 느낌이라 10년 넘게 자발적으로 이어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다분히 자기 치유적인 글쓰기 활동을 구독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할 따름이다.

  




 삶이 바쁘고 고달파진 와중에도 먹고는 살아야 한다. 정크푸드와 나름 시간과 에너지를 써서 해 먹는 집밥을 균형 있게 잘 유지하려고 노력 중이나, 학기 중에는 먹는 음식의 질이 낮아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두 유학생 부부의 학기 중 생존 모드로 보내는 식사들이다. 쉽게 가고 싶은 주말 아침에는 일어난 차림 그대로 외투와 선글라스만 걸친 채 드라이브스루로 웬디스 모닝을 사 오곤 한다. 주말 아침 단잠을 자고 있는 남편을 위해 딱 모닝 세트를 사 와서 깔아놓으니 어딘가 미국인 다 된 것 같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아 참고로, 미국 사람들 주말 아침 어떻게 보내는지 모른다.


   유난히 추웠던 어느 금요일, 기념비적인 날이었다. 동기들과 글쓰기 모임을 하고 덜덜 떨면서 집에 들어와서 라면, 라면 노래를 불렀더니, 남편이 간식으로 라면을 끓여주었다. 춥고, 배고프고, 할 것 많아서 지쳐있었는데 남편이 끓여준 라면을 한 입 먹자마자 스트레스가 날아갔다. 요리는 하나도 못하면서 라면은 백종원 선생님보다 잘 끓이는 게 미스터리다. 짐작건대, 라면'만' 하도 많이 끓여 먹어서 그런 게 게 아닌가 싶다. 모쪼록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렇다고 매일 햄버거와 라면만 먹을 수는 없을 터. 특히 공부와 업무에 허덕이다 보면, 기력이 많이 달린다. 때때로 집밥으로 에너지를 보충해주어야 한다. 이번 주에 남편이 한국 음식 중에 가장 그리운 것으로 순대 국밥을 꼽아서, 집에서 한 번 구현을 해보려 하였다. 그러나 얼어있던 순대를 해동해서 팔팔 끓였더니 죄다 터져서 비주얼이 처참한 순대 죽이 되었다는 후문이다. 다만 부추와 대파까지 넣어 먹으니 맛은 꽤나 순대 국밥스러워서 맛 하나로 둘 다 싹싹 비웠다. 다음에는 돼지 앞다리살도 조금 사서 추가해서 먹어봐야겠다.


   그다음은 집에서 짜장 소스를 볶아 만든 수제 짜장면이다. 한국 동네 짜장면집 기본 자장면이 그렇게 먹고 싶은데, 파는 곳이 없다. 그러면 어떡하느냐? 없으면 만드는 거다. 안 먹는 옵션은 없다. 춘장을 구해서 짜장 소스부터 볶아 만든다. 처음에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지난했는데 여러 번 하다 보니 이제 짜장면 정도는 40분이면 된다. 


   다음은 후다닥 볶아먹기 편한 김치볶음밥, 그리고 마트에서 할인해서 사 온 양고기 스테이크와 찹 샐러드다. 간단한 한 그릇 음식 위주로 조금씩 해 먹어 보았다. 머리에서 쉬운 집밥 레퍼토리가 술술 나왔으면 좋겠다. 그래도 이렇게 집밥을 인스턴트와 어느 정도 균형 잡아먹어야 이 길고 험난한 해외 유학 생활을 버틸 힘이 생긴다. 





   




  동기 중 한 명이 봄방학 동안 프러포즈를 받고 약혼을 했다. 하여, 바쁜 와중에도 동기들 모두 모여 약혼 축하 깜짝 파티를 해주었다. 다들 힘든 와중에 중대사는 넘기지 않고 함께 모여 최대한 축하하려는 마음이 기특했다. 또 결혼 준비를 하면서 학교생활을 하는 동기도 있는데, 어떻게 다 해내는지 존경스럽다. 모쪼록 아지트가 된 동기 집에 모여서, 프러포즈 이야기도 듣고, 봄방학 여행기도 나누고 단란한 시간을 보냈다. 


   아직까지 원어민 친구들의 슬랭이나 구어 표현들은 잘 못 알아들어서, 한국인 친구들을 만나는 것보다 동기들이랑 어울리는 것이 에너지도 더 많이 들고, 소통도 원활하지 않아서 힘이 든다. 동기들도 답답하기는 매 한 가지일 것일 진데, 인내심을 가지고 늘 알아듣기 위해 노력해 주어 고맙다. 동시에 부채감이 있기도 하다. 동기 중 유일한 외국인이라 나름의 고충이 많다. 


   언어도 언어지만 문화적인 부분에서도 다르게 경험한 것들이 많아서, 힘들 때가 많다. 미국인 동기들이 이야기를 나눌 때면 XYZ만 설명해도 서로 다 이해가 된다면, 내가 이야기를 할 때면 A to Z를 다 설명해야 해서 여간 버거운 것이 아니다. 다른 것이 너무나 많다. 


   예를 들어 이 날은 친구가 약혼을 했으니 약혼과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본 약혼식 중에 어떤 것이 베스트였고, 어떤 결혼식을 하고 싶은지 등을 이야기 나누었다. 미국 아이들은 나는 이러저러하게 약혼식을 했고/ 혹은 가보았고, 어떻게 결혼을 준비했다/ 하고 싶더라라고 하고 서로 다 이해를 한다면, 나는 우리나라에는 약혼식이 없고, 결혼식은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 진행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왜 약혼식은 없는지, 프러포즈는 어떻게 하는지 결혼식은 왜 이렇게 짧은지, 밤새 춤은 안 추는지 애프터 파티는 왜 없는지 등등 이해를 못 하는 부분이 많다. 목에 핏대를 세우며 차근차근 이야기를 하는데, 온전히 이해시키기가 여간 어렵지가 않다. 이 날도 진이 빠진 채 집에 돌아왔다고 한다. 








   외국인 친구들과 시간을 보낸 뒤에는 오랜만에 한국인 친구들과 테니스도 열심히 치고 왔다. 역시, 같은 언어와 같은 문화적 배경인 사람들과의 만남은 한결 쉽다. 즐거운 마음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왔다. 최근에 바쁘다는 핑계로 테니스를 치다, 안 치다 해서 안 그래도 못 치는데 실력이 더 퇴화한 것 같다. 그래도 언제부턴가는 실력보다는 공을 때리는 쾌감과 스트레스 해소에 집중을 하게 되어, 테니스를 치고 오면 기분이 마냥 좋다. 바빠도 최대한 일주일에 한 번은 꾸준히 칠 수 있으면 좋겠다. 매주 늘 자리를 지켜주는 크루들에게도 고맙다. 

 




    고단한 봄학기의 일상을 푸념하듯 늘어놓아 보았다. 글을 쭈욱 돌이켜보니 유학생 라이프의 여러 단면이 한눈에 들어와 좋다. 정신없이 바쁜 박사과정생의 본업부터 시작해서,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끼니 해결 문제들, 미국인 친구들과 어울리며 동시에 겪는 즐거움과 문화 차이 등 희로애락이 다 담겨있구나 싶다. 


     해외 살이 이토록 고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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