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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햇 Jul 20. 2024

에필로그. 연어가 물을 거슬러 오는 곳

이방인의 영혼을 치유하는 것은 고향

    유학생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 있다. 바로 여름방학이다. 유학생들은 여름만 보고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 말이다. 대부분의 유학생들은 서너 달 정도 되는 여름에 한국에 들어간다. 우리 부부도 이번 여름, 그립던 가족과 친구들도 보고 한국 음식도 원 없이 먹을 겸 한국에 다녀왔다.


 

   몇 년 간 해외에 있다가 한국에 오니 세상 존재하기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뭐니 뭐니 해도 나고 자란 곳이 최고구나 싶다. 말 통하는 곳에서 비슷한 문화적 가치관 가진 사람들 틈바구니에 섞여있는 게 편한 일이구나 하는 것을 새삼 피부로 느끼고 있다. 사람들과 어울릴 때면 내내 문장을 만들랴 번역하랴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되고, 예의나 관습도 몸에 익어 긴장되거나 어려울 것이 없다.


    익숙함은 축복이구나 싶은 중이다. 나름 미국에서도 잘 적응하고 학교도 곧잘 따라가서 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알게 모르게 사소한 부분들에서 이질감이나 소외감을 느꼈던 것 같다. 특별한 무언가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서 비슷한 언어와 문화적인 전제를 가지고 생활할 수 있어 좋다. 확실히 사회 속에서 효능감이 있는 채로 사는 것은 다르다.




   한국에서 엄마가 해주는 집밥도 얻어먹고, 가족들과 시간도 많이 보냈다.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를 뵈러 대구에도 다녀왔다. 사실 이번 한국 방문에서 가장 중요한 일정이었다. 두 분 다 만 나이로 90대이신 데다가 건강도 최근에 급격히 안 좋아지셨다. 이번 여름에 한국 방문을 건너뛸까 하다가, 들어오기로 결심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이번 여름은 꼭 봬야 할 것 같았다.


   얼굴을 뵈니 두 분 다 너무 마르시고 늙으셨지만, 여전히 생기 있으셔서 마음이 놓였다. 할아버지는 무려 만 97세이신데, 인지 기능이 너무 좋아서 가족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다 꿰고 계신다. 할머니는 치매기가 있으셔서 만나는 내내 같은 말만 반복하셔서 조금 슬펐다. 그럼에도 그렇게 심한 편은 아닌지, 가장 최근에 대가족에 합류한 우리 남편을 비롯해서 모든 가족들을 아직은 다 잘 알아보셔서 다행이었다. 잊히면 너무 슬플 것 같아서 내심 마음 졸였기 때문이다. 말을 반복하는 거야 계속 처음 들은 것처럼 굴면 돼서 큰 문제가 아니다. 치매가 있었음에도 잊히지 않음에 그저 감사한 하루였다. 그거면 됐다.


    한국에서 너무도 좋은 시간들을 보내고 미국에 돌아오려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가족 친구들과 익숙한 언어, 문화를 떠나 타지에 가서 고생을 하나 싶어 돌아가기 싫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다 지락실 스핀 오프 편을 보는데, 어렵고 불편한 것에 계속해서 부딪혀야 성장해 나아갈 수 있다는 말이 퍽 인상 깊었다. 백날 천날 미국 유학 생활 힘들다고 토로하면서도 다시금 또 돌아가서 새 학년, 새 학기를 맞이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타지에 와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싶다가도, 새로운 세상에서 견문을 넓히고 배우고 얻어가는 것을 생각하면 다시 가야 할 마음이 생긴다.



   해외 생활은 누군가에게는 꿈이기도, 막연한 로망이기도, 배움이기도, 두려움이기도, 의무이기도, 숙명이기도,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타지에서 소수자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이런 어려움을 감수하고서 각자의 이유들로 해외 생활을 해 나아가고 있다. 780만 재외동포들이 각자가 있는 그곳에서, 각자의 이유들을 충분히 꽃 피우며 살고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하며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을 닫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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