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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현 Oct 18. 2023

사옥 리모델링 공사의 기록 (1)

글을 쓰는 지금 이 시점에도 사옥 리모델링 공사는 끝나지 않았다.

우리의 손때가 묻은 공간을 만들겠다는 욕심은 딱히 없었는데, 우리의 주머니 사정과 비교하면 공사비의 규모가 천문학적인 수준이고 또 사옥에 처음부터 큰 투자를 하지 말자라는 전략적인 판단 하에 셀프 리모델링을 시작했다. 중장비가 필요하거나 공정이 까다로운 공사는 전문가를 믿고 맡겼다.


22년도 가을에 시작한 공사가 23년도 가을이 되어서야 일단락 지어졌다.

'일단락 지어졌다'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이다. 사옥 건물과 주변을 둘러싼 땅을 돌아보면 아직도 공사하고 손을 대어야 할 곳이 많다. 하지만 더 이상 시멘트 가루가 날리지 않고, 기둥과 지붕이 제대로 서 있으며, 사생활이 보호되는 창문과 안전한 현관문이 있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가 행복하다.


1년 간 리모델링 공사를 하며 틈틈이 찍어둔 사진첩을 열어보았다. 그새 늙었네, 라는 충격적인 깨달음과 함께 우리가 얼마나 멀리까지 왔는지를 알 수 있었다. 함께였기에 가능했다.


글로써 촘촘하게 기록할 내용이 많지만, 우선은 사진과 함께 바로바로 떠오르는 기억을 끄적여본다.

 


우리가 만난 구옥의 첫 모습


우리가 매입한 구옥은 넓은 밭을 품고 있었다. 생애 첫 부동산 거래를 땅으로 하게 될 줄 몰랐지만, 덕분에 세상사가 돌아가는 많은 이치를 배웠다. 부동산을 거래하던 과정에서 겪은 우여곡절을 말하자면 스크롤의 압박이 엄청날지 모른다. 추후 어느 챕터에서든 다뤄볼 예정.


구옥의 옛 주인이었던 할머니의 유품들
집 안을 샅샅이 뒤져서 쓸만한 물건을 골라간 사람들


공사의 계획을 세우기 전, 첫 번째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바로 유품정리였다. 집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물건들을 다 치워야 공간이 제대로 보일 것 같았다. 앞으로 시골에 내려와 필요한 물건이 많을테니, 버릴 것과 챙길 것을 하나씩 골라가며 정리해볼까 했으나 곧 포기했다.  


유품을 정리하던 날, 가을 하늘이 끝내주게 아름다웠다
짐을 치우니 공간이 보이기 시작했다
빈티지한 붙박이장
1990년대 잘 나가는 컬러는 옥색이었나?
집의 경관을 해치는 비닐하우스는 당근으로 팔았다(워후)


집 안의 물건을 다 치우니, 기다릴세라 집 바깥의 밭에서 소동이 일어났다. 하마터면 밭을 통째로 빼앗길 뻔한 사건이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우리 밭에 배추를 심어두고, 공사를 하면서 배추를 밟았으니 오히려 배추 값을 내놓으라는 황당한 요구를 시전한 것이다. 이런 게 시골의 텃세인가. 인생은 실전이고 이곳은 야생이라는 생각으로 우리는 전투를 준비했다. 이른바 '고추노끈대첩'  


집 안의 문짝을 뜯어와서 담을 만들었다
낡은 옷장과 철망, 그리고 고추노끈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그리고나서 이어진 벽지뜯기지옥.

30평 건물을 사방으로 둘러싼 모든 벽의 벽지를 직접 손으로 뜯어냈다. 벽지를 뜯는 기계같은 건 없었다.

많은 친구들이 도와주러 왔었고 하루치 작업이 끝나면 늘 도망치듯 서울로 떠났다. 친구들의 사랑으로 첫 스텝을 뗀 리모델링 공사의 시작.   


많게는 6겹까지 겹겹이 발라졌던 벽지, 안녕


그리고 이어진 철거, 철거, 철거. 시골집 뒷마당에는 그 무엇을 상상하든 다 있을 가능성이 크다. 가건물과 간이화장실, 닭장과 돼지우리를 치웠다. 어떤 어르신은 시골에 살면 다 필요한 것인데 왜 치우냐고 꾸중을 하고 가셨는데, 물론 일리가 있는 말씀이었지만 사람들은 각자의 이유로 시골에 온다. 그 이유에 따라서 필요한 것도 다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시골집 뒷마당은 또 다른 우주
여기서 일제시대 때 물건을 본 것 같은 느낌적 느낌


사옥 리모델링 공사를 하며 전문가에게 의뢰한 부분은 샷시/ 보일러/ 전기/ 수도/ 화장실/ 펜스담장이었다.

매일 밤 계산기를 두드리며 꼭 해야하는 공사만 추리고 추렸다(지만 많은 부분을 공사했다)


부엌타일을 제거한 벽면이 근사했다.
보일러 온수관 체크는 필수
강원도의 겨울을 대비한 보일러 공사


샷시교체와 보일러 공사를 끝내고 우리는 바로 입주를 결정했다. 공사가 진행될 때 읍내에서 월세를 얻어 살고 있었는데 양쪽으로 지출되는 비용이 아깝기도 했고, 공사가 제대로 되어가는지 체크하려면 어차피 현장에서 먹고자고 해야했다. 강원도의 11월, 시멘트 바닥 위에 은박돗자리를 깔고 난방텐트를 치고 난민같은 생활을 시작했다. 그때 어떻게 이렇게 살았지?

 

이사온 집이 어리둥절한 고양이
부엌이 없어서 햇반과 참치, 조미김으로 떼운 끼니들
추운 날에는 고양이도 이불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난민생활 한달 차. 시멘트가루가 풀풀 날리는 집 안에서 재채기를 하며 지냈던 날들.

마음의 각오는 했지만 주거환경이 열악해지자 몸과 마음이 쉽게 무너졌다. 무너지고 추스르고, 다독이고 위로하며 겨우 넘어갔던 하루하루. 그래도 낭만을 잃지 말자며 바베큐를 구웠다. 벽돌로 테이블을 만들고, 캠핑의자를 꺼내고, 종이박스를 뒤집어 쌈장과 상추를 올려두니 근사해진 저녁식사. 삶의 낙이라고는 1도 없었던 그날 하루가 우습도록 쉽게 아름다워졌다. 바베큐 한 점으로.  


우리 낭만을 잃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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