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이주를 결정한 이후로 이어졌던 모든 순간은 녹록치 않았다.
한 단계의 퀘스트를 깨면 다음 단계에는 더 높은 난이도의 과업이 던져지는 경기. 제한된 시간과 예산, 그리고 에너지 속에서 최선의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시멘트가 고스란히 노출된 방에서 먹고자고 하던 시절, 예능프로 <강철부대>를 보며 투지를 불태우곤 했었다. 강철부대의 일원이라는 마음가짐이 꽤나 도움되었다.)
그랬던 시절에 우리를 지탱해준 존재들은 친구와 가족들.
우리가 살고자하는 삶의 모습을 재미있고 신기하다며 응원해준 (그리고 함께 벽지를 뜯어준) 친구들 덕분에 힘든 시기를 잘 건너올 수 있었다.
2차선 도로에 접한 밭에는 별다른 경계가 없었는데, 시골에서 살아보니 뚜렷한 경계와 선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펜스담장을 설치했다. 사람과 사람이 제대로 만나려면 적당한 선과 경계가 필요하다.
구옥의 난방방식은 심야전기보일러였다. 예전에는 경제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합리적인 난방방식이었다고 하는데, 점점 전기요금이 오르더니 요즘에와서는 오히려 심야전기 방식의 난방이 더 비싸다고 했다. 게다가 옛날에 설치한 보일러인지라 엄청난 부피를 자랑하는 (보일러실에 탱크가 서 있는 줄 알았다) 디바이스.
보일러실에서 보일러를 꺼낼 수 없어서 보일러실을 아예 철거해버렸다. (이걸 꺼내려면 크레인을 불러야 한다고?) 대신 심야전기 보일러 온수통을 반으로 쪼개서 대문으로 활용했다.
펜스와 대문까지 설치가 마무리되자 전문가 공사팀은 철수하였다. 단열시공과 합판 작업부터 셀프로 진행.
테이블쏘와 컴프레셔, 각종 공구가 차곡차곡 쌓이자 여기가 철물점인가 싶은 기분이 들었다.
중간과정을 후루룩 건너뛰었지만, 전체적으로 빈티지한 느낌의 공간이 연출되었다. 셀프로 다룰 수 있는 소재, 사이즈, 디자인을 최대치로 조합한 최고의 인테리어가 아닐까. 벽과 바닥이 제대로 마감되자 고양이들도 더 이상 재채기를 하지 않았다. 공사하며 가장 뿌듯했던 순간. 평온하게 물을 마시는 고양이.
그리고 애증의 배추밭. 배추수확을 포기하고 비닐멀칭도 치우지 않는 이웃 주민 대신 우리가 밭을 정리하기로 했다. 앞으로 내 밭에는 절대 비닐멀칭을 하지 않을테다, 라고 다짐한 겨울 어느 날.
스튜디오 내부가 어느 정도 정리되자 봄이 되었다. 시골의 봄은 분주하다. 그리고 식목일이 4월인 이유도 있다. 봄이라는 계절에만 할 수 있는 조경작업을 어서어서 해 두어야 1년동안 예쁜 것들을 보면서 살 수 있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쯤, 못다한 스튜디오 공사의 절반을 새로 시작했다. 단열공사와 합판, 타일, 바닥까지. 이제 일단락 되었나 싶었던 공사를 처음부터 다시 하려니까 몸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꾸역꾸역 정신력으로 버텨가며 스스로 멱살을 잡았던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