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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옥 리모델링 공사의 기록 (2)

by 김가현


시골 이주를 결정한 이후로 이어졌던 모든 순간은 녹록치 않았다.

한 단계의 퀘스트를 깨면 다음 단계에는 더 높은 난이도의 과업이 던져지는 경기. 제한된 시간과 예산, 그리고 에너지 속에서 최선의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시멘트가 고스란히 노출된 방에서 먹고자고 하던 시절, 예능프로 <강철부대>를 보며 투지를 불태우곤 했었다. 강철부대의 일원이라는 마음가짐이 꽤나 도움되었다.)


그랬던 시절에 우리를 지탱해준 존재들은 친구와 가족들.

우리가 살고자하는 삶의 모습을 재미있고 신기하다며 응원해준 (그리고 함께 벽지를 뜯어준) 친구들 덕분에 힘든 시기를 잘 건너올 수 있었다.


KakaoTalk_20231017_233641323_27.jpg 추운 겨울에도 반팔을 입게 만드는 벽지뜯기노동
KakaoTalk_20231017_234039510_04.jpg 그리고 친구들의 사랑이 담긴 페인트칠


2차선 도로에 접한 밭에는 별다른 경계가 없었는데, 시골에서 살아보니 뚜렷한 경계와 선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펜스담장을 설치했다. 사람과 사람이 제대로 만나려면 적당한 선과 경계가 필요하다.


KakaoTalk_20231017_233641323_28.jpg 미관을 해치지 않는 브라운 컬러 펜스 담장, 공사에서 가장 만족한 부분


구옥의 난방방식은 심야전기보일러였다. 예전에는 경제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합리적인 난방방식이었다고 하는데, 점점 전기요금이 오르더니 요즘에와서는 오히려 심야전기 방식의 난방이 더 비싸다고 했다. 게다가 옛날에 설치한 보일러인지라 엄청난 부피를 자랑하는 (보일러실에 탱크가 서 있는 줄 알았다) 디바이스.

보일러실에서 보일러를 꺼낼 수 없어서 보일러실을 아예 철거해버렸다. (이걸 꺼내려면 크레인을 불러야 한다고?) 대신 심야전기 보일러 온수통을 반으로 쪼개서 대문으로 활용했다.


KakaoTalk_20231017_233641323_29.jpg 빈티지한 매력의 대문, 우리 스튜디오와 잘 어울린다


펜스와 대문까지 설치가 마무리되자 전문가 공사팀은 철수하였다. 단열시공과 합판 작업부터 셀프로 진행.

테이블쏘와 컴프레셔, 각종 공구가 차곡차곡 쌓이자 여기가 철물점인가 싶은 기분이 들었다.


KakaoTalk_20231017_234039510.jpg 셀프공사의 모든 것, 스탠리 테이블쏘
KakaoTalk_20231017_234039510_01.jpg 단열시공 밑작업
KakaoTalk_20231017_234039510_06.jpg 눈이와도 비가와도 공사는 멈추지 않는다
KakaoTalk_20231017_234039510_05.jpg 창틀 나무판에 오일을 바르는 중
KakaoTalk_20231017_234039510_08.jpg 자취방에서 쓰던 공간박스를 활용한 빈티지 주방


중간과정을 후루룩 건너뛰었지만, 전체적으로 빈티지한 느낌의 공간이 연출되었다. 셀프로 다룰 수 있는 소재, 사이즈, 디자인을 최대치로 조합한 최고의 인테리어가 아닐까. 벽과 바닥이 제대로 마감되자 고양이들도 더 이상 재채기를 하지 않았다. 공사하며 가장 뿌듯했던 순간. 평온하게 물을 마시는 고양이.


KakaoTalk_20231017_234039510_09.jpg 너에게도 아늑한 보금자리이길
KakaoTalk_20231017_234039510_10.jpg 따로 또 같이 작업할 수 있는 공간분리
KakaoTalk_20231017_234039510_11.jpg 노출 벽돌을 그대로 살리니 독특한 분위기가 되었다


그리고 애증의 배추밭. 배추수확을 포기하고 비닐멀칭도 치우지 않는 이웃 주민 대신 우리가 밭을 정리하기로 했다. 앞으로 내 밭에는 절대 비닐멀칭을 하지 않을테다, 라고 다짐한 겨울 어느 날.


KakaoTalk_20231017_234039510_12.jpg 비닐멀칭을 치우며 내 밭을 꼼꼼히 돌아볼 수 있었다


스튜디오 내부가 어느 정도 정리되자 봄이 되었다. 시골의 봄은 분주하다. 그리고 식목일이 4월인 이유도 있다. 봄이라는 계절에만 할 수 있는 조경작업을 어서어서 해 두어야 1년동안 예쁜 것들을 보면서 살 수 있다.

KakaoTalk_20231017_234039510_13.jpg 큰 맘 먹고 산 문그로우
KakaoTalk_20231017_234039510_14.jpg 우리 밭의 시그니처 폭포
KakaoTalk_20231017_234039510_15.jpg 그리고 못다한 단열공사와 페인트칠
KakaoTalk_20231017_234039510_16.jpg 장마가 오기 전에 지붕낙엽 정리를
KakaoTalk_20231017_234039510_17.jpg 남아있는 스튜디오 공간에 큰 부엌이 들어온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쯤, 못다한 스튜디오 공사의 절반을 새로 시작했다. 단열공사와 합판, 타일, 바닥까지. 이제 일단락 되었나 싶었던 공사를 처음부터 다시 하려니까 몸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꾸역꾸역 정신력으로 버텨가며 스스로 멱살을 잡았던 여름.


KakaoTalk_20231017_234039510_18.jpg 시멘트타일과 나무가 제법 잘 어울린다
KakaoTalk_20231017_234039510_19.jpg 가끔은 나사 하나 쯤 풀어놓고 지내기도
KakaoTalk_20231017_234039510_20.jpg 창 밖으로 보이는 호밀밭이 위안된다
KakaoTalk_20231017_234039510_21.jpg 장판까지 깔아두니 공간이 훨씬 커 보인다
KakaoTalk_20231017_234039510_22.jpg 동네 싱크대매장에서 전시 상품으로 득템한 주방, 올해 최고의 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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