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읍인 강원도 영월 상동읍. 상동읍에 위치한 상동중학교에서는 8명의 전교생이 공부를 하고 있다. 올여름, 스튜디오어중간은 한 회사의 의뢰를 받아 상동중학교 아이들을 위한 미술수업을 두 달간 진행하며 시골에서 학생으로 사는 삶을 엿볼 수 있었다.
처음 수업이 기획했던 방향은 지금 내가 사는, 하지만 언젠가는 떠날 상동에 대한 기억을 그림으로 남겨보자는 것이었는데 아이들의 반발이 심했다. 중학생 아이들이 볼 것도, 놀 것도, 또 갈만한 곳도 없는 답답한 동네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니. 얼마나 지긋지긋한 주제인가! 허심탄회하게 수다나 떨자는 마음으로 아이들 옆에서 같이 그림을 그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외진 시골에서 중학생으로 산다는 게 어떤 일인지 알게 되었다.
이 마을에서 재미있게 살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그러던 어느 수업에서 아이들에게 지금의 상동읍이 아니라, 너네가 원하는 상동읍을 그려보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아주 의외의 대답들이 튀어나왔다.
상동읍에 마라탕집 하나만 생겨도 여기서 100년 넘게 살 수 있지!
코인노래방이랑 인생네컷 사진관도 필요해!
영월군이 우리 동네를 태백에 팔았으면 좋겠어요. 태백에 더 놀거리가 많거든요.
아주 솔직하고 발칙한 이야기. 상동읍에 사는 각자의 만족도를 높여줄 수 있는 바람이 이렇게나 평범하고 소박하다니? 어쩌면 인구소멸을 막는 건 마라탕이 아닐까 생각했다. 인구정책 담당자가 이 말을 듣는다면 (들을 수 있다면) 굉장한 충격이지 않을까. 지방소도시에 필요한 건 이런저런 축제나 행사가, 개성 있고 힙한 가게가 아니라, 그냥 프랜차이즈 마라탕집 일지도 모른다.
상동중학교 아이들과 완성한 마을 그림
어디든 정 붙이고 살면 다 고향이라는 말처럼, 사람이 어딘가에 정을 붙이는 데에는 대단한 무언가가 필요한 게 아니다. 안심하고 갈 수 있는 식당 한 군데, 마음 맞는 친구 한 명,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방 한 칸.
지방소도시들이 너도나도 젊은 인구를 유치하겠다고 재정보따리를 풀고, 엄청난 일을 해내겠다며 너도나도 손을 드는 젊은 창업가도 많아지는 추세이다. 힙하고 쿨한, 누군가의 개성이 담긴, 그런데 그런 말들은 무엇을 기준으로 한 걸까? 도시를 기준으로, 도시의 관점에서, 도시인이 한 번쯤 가기에 재밌을법하다는 의미는 아닐지. 지역에 더 필요한 건, 제때 문 열고 제때 문 닫고, 언제나 일정한 맛을 내놓을 수 있는 프랜차이즈 마라탕집일 수도 있다. 어쩌면 인구붕괴의 최전선을 간신히 막아내고 있는 건 그런 가게들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