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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현 Oct 19. 2023

면사무소에 스카우트될 뻔한 썰

지방소도시 공무원은 어떻게 일하고 있을까?

지방소도시, 특히 면 단위 시골은 공무원과 주민 간 거리가 아주 가깝다. 거리가 가깝다는 표현보다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해서 우선 이렇게 정리해 본다. 아무래도 시골의 절대적인 인구수가 적다 보니, 공무원 한 사람이 담당하는 주민 수도 적고 집집마다의 사정을 잘 알 수밖에 없는 구조이긴 하다. 서울에서 태어나 여태껏 서울시 행정만을 경험해 본 나로서는 시골의 공무원이 일하는 풍경과 마인드, 그리고 행정시스템이 무척 낯설고 신기했다.


면 단위로 이주를 하고 꽤나 신선했던(?) 경험 중 하나는 면사무소에 스카우트될 뻔한 사연이다. 귀농이나 귀촌을 한 사람에게는 지방 정부에서 빈 집을 고치는 지원금을 주거나, 새로 집을 짓는데 쓰일 건축비를 저렴하게 융자해 주는 등 여러 부동산 정책을 펼치고 있다. 노후주택수리비를 신청하려고 집 근처 면사무소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나이가 지긋한 한 공무원이 천천히 한글 파일을 읽어보며 내 지원서를 검토해 주셨다. 기본적인 인적사항을 적는 페이지 다음으로 현재 주택의 상태를 알아볼 수 있는 사진을 첨부하는 란이 있었다. 당연히 사진파일을 컴퓨터로 옮기고 한글 문서에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첨부한 뒤 지원서를 낸 상태였다.


그런데 담당 공무원이 내 지원서 파일을 보더니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이거 여기다가 사진을 직접 넣으신 거예요? 컴퓨터 잘하시네요!


컴퓨터를 잘 쓰지 못하는 노인 분들만 만나다가 오랜만에 젊은 사람을 보고 신기하셨나? 마을에 새로 들어온 젊은 사람이라 뭐든지 칭찬해주고 싶은 아저씨의 마음인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그 말을 흘려듣고 면사무소를 나왔는데. 그날 오후 내 휴대폰으로 따로 연락이 왔다.


컴퓨터를 잘하시는 것 같아서 연락드렸어요.
혹시 면사무소에서 일해볼 생각 있으세요?


오. 그냥 지나가는 칭찬이 아니었던 것이다. 진심을 담은 칭찬이었고 나를 눈여겨보던 이유가 있었다. 면사무소에사무를 보조해 줄 인력을 찾고 있는데, 한글이나 엑셀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 오면 좋겠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나는 공무원이 이렇게 직접 인재를 영업(?)하는 방식이 굉장히 놀라웠고, 내가 문의한 내용이 아닌 다른 용무를 위해 내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는 사실이 매우 신선했다. 처음에는 개인정보보호... 같은 생각이 떠올랐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면사무소의 업무를 원활하게 운영할 수 없는 마을의 환경을 떠올리며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https://www.insight.co.kr/news/440078


23년 5월 자 뉴스 기사를 옮겨왔다. 충북 단양군의 한 공무원이 오랫동안 출생신고 업무를 해보지 않아서 출생신고 방법을 몰라 애를 먹었다는 사연이다. 수도권이나 대도시는 공무원이 담당하는 행정 업무가 체계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는 반면, 시골의 행정은 특히 젊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행정은 수요가 적다 보니까 그 업무를 제대로 알고 있는 공무원 수도 적은 편이다. 이를테면, 전국적으로 시행하는 청년마음건강 관련 사업을 내가 사는 면사무소를 통해 신청하려 한다면 일단 그 사업이 무슨 내용인지, 어디에서 주관하는지, 언제부터 시행되었고 어디를 통해 신청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잘 조사해서 공무원에게 알려줘야 한다. 그래야 그 공무원도 내가 알려준 정보를 힌트 삼아 이 부서 저 부서 물어물어 담당자를 찾고 (혹은 만들고) 신청을 받아 중앙 조직으로 이관하는 작업들을 해줄 수 있다. 메일로 서류를 받지 않는 사업들도 있어서, 직접 신청처를 프린트해서 면사무소가 구청에 제출해야 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해당 직원은 "출생아 수가 워낙 적다 보니 업무를 익힐 기회가 없었다고 고백했다"며 "오전 방문을 미루고 오후에 면사무소에 들렸더니 직원 서너 명이 나와 출생신고와 함께 양육수당, 첫 만남 이용권 등 각종 서류 작성을 도와줬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공무원의 영업력을 뒷받침하는 재미있는 일본의 사례를 가져와보았다. 우리나라도 그렇고 일본도 공무원은 겸직이 불가하지만, 고령화가 더욱 심각해진 일본은 그 허들을 낮춰가는 모양이다. 일본의 지자체들이 공무원의 부업을 허용한다는 뉴스 기사가 나왔다.


  https://www.asiae.co.kr/article/2023073009334420284



일본 총무성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전국 지방 공무원에 대한 부업 허가 건수는 4만 1669건에 달한다. 부업의 분야는 대부분 농업으로, 현재 도·현 3곳, 시·정 7곳 등 10곳의 지자체에서 부업으로 농업이 가능하다. 기존에는 농업이 영리 사업에 포함돼 부업이 불가능했지만, 지역 주산업인 농업을 지키는 것이 지역공헌과 공공성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인정해 제도를 개정했다.


아무래도 지역의 주산업이 농업인지라 농업에 한하여 부업을 허가해 준 것 같지만, 식당이나 주점, 미용실 같은 소상공인 가게도 지역에는 너무나 필요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지방 공무원이 자신들이 담당하는 면 단위, 혹은 리 단위 마을에 프랜차이즈 가게를 개업하는 것도 인구소멸에 엄청난 도움을 줄 거라고 생각한다. 여름에 시원한 생맥주 한 잔 마시러 차를 타고 30분 넘게 (그것도 돌아올 때는 대리운전기사를 불러야 한다) 이동하거나, 정해진 영업시간을 지키지 않아 허탕친 경험이 몇 번 쌓이다 보면 도시로 나가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지방 공무원들의 어깨가 무겁다.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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