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땀 한 땀 자수로 그리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주머니가 너무 가벼웠다.
육아도, 가사도 버거워서 어느 날은 분식집에서 김밥과 국수 한 그릇 시키는 것조차 망설여졌다.
‘돈이 있으면 시간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숨통이 트이겠지.’
하지만 내 그림은 아직 너무 부족하다고 느꼈고,
그림으로 돈을 번다는 건 막막했다.
그날도 헛헛한 마음을 달래려 멍하니 웹서핑을 하다가
이니셜을 수놓은 자수 작품을 보게 되었다.
‘이 정도라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냥 해볼까?’
그 생각은 이미지를 더 찾게 만들었고, 찾다 보니 정말 해보고 싶어졌다.
문제는, 아무 재료도 없다는 것.
하지만 나는 가끔 결단력이 생기는 날이 있는데, 그날이 바로 그날이었다.
조금 남은 용돈을 털어 중고 자수실과 바늘, 원단을 샀다.
책 한 권을 사서, 거기 나오는 기법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 하며 자수를 시작했다.
‘부족한 나의 그림에 손재주가 더해지면, 나를 더 쉽게 알릴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자수 공방을 열었다.
자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주로 빈티지풍이나 컨트리풍을 선호했지만,
나는 조금 더 귀엽고 일러스트 같은 그림이면 눈에 띌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 땀 한 땀 자수를 놓고, 샘플도 만들고, 경험을 바탕으로 커리큘럼과 교재도 만들었다.
셰어 공방에 입점하고, 사업자등록증도 만들고, 네이버 클래스에도 등록했다.
그리고… 파리만 날렸다.
한 주, 두 주, 한 달.
수강생은 거의 없었고, 종종 수업을 하더라도
내 자수가 좋아서라기보다는 ‘가까워서’라는 이유가 더 많았다.
‘내 작업이 매력 없는 걸까?’
자신감은 점점 작아졌다.
그때, 시장이 좋아하는 주제를 무시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자수 주제가 꽃과 자연물이라는 사실도 인정하게 됐다.
문제는, 나는 꽃을 거의 그려본 적이 없었다는 것.
그날 이후 내 시선은 달라졌다.
가로수의 수형, 화단의 잡초, 아파트 울타리 위로 핀 작은 꽃까지 눈에 들어왔다.
꽃을 일부러 사서 화병에 꽂아두기도 했다.
그건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을 넘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자수 공방을 하지 않는다.
베란다 한편엔 자수실과 수틀이 여전히 있지만,
더 이상 그 수업이 그립지 않다.
잘 되지 않아서 그만둔 것도 있지만,
시간이 보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한 땀 한 땀 자수를 놓아 그림을 완성하는 일보다,
자수는 그림을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였던 것이다.
더 많이,
더 다양하게,
더 진심으로 표현하기엔
자수는 내게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요구했다.
그렇게 정리하고,
다시 그림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