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탈출했다.
그림을 그리기로 마음먹었던 시기에
공교롭게도 아기천사가 찾아왔다.
어쩌면 그때는 내 삶에서 근심 없이 행복만 있던 시절이었는지 모른다.
작은 신혼집엔 우리 둘에겐 지나치게 큰 식탁이 있었다.
남편이 출근을 하면 커피 한 잔을 내리고, 종이를 펼치고 , 도구들을 꺼냈다.
포토샵책 한 권, 인물 드로잉책 두 권.
한 장 한 장 따라 그리며 매일 기초를 쌓아갔다.
그림은 언제나 부끄러웠다.
‘부족해. 부족해.’
하지만 그때 처음으로 용기를 냈다.
과정에 불과한 그림들을 조심스레 블로그에 올렸다.
꾸준한 시간에 응원을 해주는 친구들이 생겼다.
보이지 않는 온라인의 친구들이 눌러준 하트는 계속 그릴 수 있는 힘을 주었다.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멋진 무언가가 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었는지 모르겠다.
출산이라는 괜찮은 핑계가 있었고,
나를 위해 천천히 그릴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
함께 그리는 친구들을 만들고 싶었다.
그림 모임을 하고 싶다는 글을 올렸고,
세 명의 ‘일러스트레이터를 꿈꾸는 사람들’이 모였다.
우리는 매주 같은 주제로 그림을 그려
작지만 진심 가득한 온라인 전시를 열었다.
서툴지만 정직한 그림들이 쌓여갔다.
그중 한 친구와 나는 나이도, 결혼 시기도, 임신 시기도 비슷했다.
두 명의 임산부는 신나게 태교를 했다.
좋은 그림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걸어 다녔고,
맛있는 음식들을 함께 먹었다.
그림과 육아의 고민들을 나누고 또 나누었다.
이 행복한 시간들의 빈도는 줄겠지만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출산 후 내 삶은 완전 다른 방향으로 뒤집어졌다.
육아하는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아이를 좋아하는 나는 육아가 힘들지 않았다.
안고 업고 함께 눕는 그 시간들이 너무너무 행복했다.
머리를 며칠 감지 못해도, 잠을 못 자서 얼굴이 푸석해도,
옷들이 젖냄새와 아이의 토로 얼룩졌어도
“아이를 안고 있는 지금의 내가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겠지”라고 생각했다.
추리한 차림은 괜찮았지만 출산과 함께 바뀐 환경은 나를 너무 힘들게 했다.
아이를 출산하고 얼마 안돼서 18평의 빌라에서 실평수 10평이 안 되는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식탁을 놓을 수 없는 한 평의 주방, 거실 없는 두 칸의 방 그리고 아기욕조를 넣으면 문을 닫을 수 없는 화장실.
어디에 있는지 알 길 없이 꽉 들어찬 짐들. 옴짝달싹하기 어려운 공간 집에만 들어가면 숨이 턱턱 막혔다.
신생아와 나
외출도 어려운 나는 이 작은집은 늘 숨 막히게 느껴졌다.
그림은 답답한 현실이 아닌 꿈을 꾸게 했다.
비좁은 책상도 종이와 연필만 있으면 광활한 휴식처가 되었다.
육아를 하며 그림을 그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재료를 꺼내 놓을 수도 없었고, 언제 깰지 몰라 집중도 어려웠다.
그래도 아이가 잠들고 나면 무조건 책상에 앉았다.
그리기 위해 욕심을 하나씩 내려놓았다.
잘 그리지 않아도 괜찮다.
완성하지 못해도 괜찮다.
일단 그리자.
일단, 그려보자.
태교로 시작된 그림은 어느새 내 안의 중심이 되어 있었다.
그림은, 나를 가장 먼저 알아주는 친구처럼 조용히 그 자리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