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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다시 그려보기로 했다.

그림책을 만났다.

by 송알송알

“그림이 있는 책은 어린아이들이나 읽는 거잖아.”


중학생이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사다 주신 『세계 명단편 그림책 전집』은 그 생각을 완전히 흔들어놓았다.

책을 잘 안 읽는 딸에게 좋은 책을 건네고 싶은 마음과, 어쩌면 그 아름다운 그림책들을 엄마 자신도 소장하고 싶으셨을 것이다.


그만큼 책은 화풍과 구성이 다양했다.

파스텔로 부드럽게 그린 그림, 미니어처를 찍어 구성한 장면,

세밀한 그림부터 추상적인 그림까지.


유명한 소설의 요약부터 결말이 반전인 짧은 이야기들.

그림과 이야기의 조합이 이토록 새롭다는 사실에 마음이 끌렸다


맨 마지막 두 권에는 그림책의 지은이와 그린이에 대한 소개부터 기법까지 나와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이야기에 그림을 그리는 직업이 있구나.”

그리고 ‘볼로냐’ 그림책상에 대해 알게 되었다.


‘유니콘‘ 이 책은 가장 인상 깊어 몇 번을 다시 보았다.

물감을 번지게 하는 선염기법, 4등신의 인물은 귀엽고 보드라웠다.

”내가 마당에서 유니콘을 발견했어! “

라고 말하는 주인공을 보고 아내는 미치광이 취급을 한다.

결국 정신병원에 신고하지만 ’ 유니콘은 상상에나 있는 동물 아닌가요?‘라는 대답으로 되려 아내가 잡혀간다.

따뜻한 분위기의 그림과 달리 이야기가 주는 여운은 강렬했다.


그때 처음 생각했다.

“그림책은 아이들만의 것이 아니구나. 정말 다양한 이야기와 그림을 담을 수 있구나.”


그리고 처음으로,

‘나도 그림책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그 마음을 꺼내진 못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아주 잘하진 못했다. 아빠는

“피카소처럼 그리지 않으면 미술로는 못 먹고산다”라고 말씀하셨다. 당시 어른들은 대부분 그렇게 생각했고,

나도 그게 진실인 줄 알았다.


중학생 시절 아이들과 얼굴 그리기를 했던 적이 있다. 약간의 자신감이 있었지만 그리면서 그 마음이 부스러졌다.

부분의 형태에만 집중하다 보니 그림의 인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나는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그런 내 안 깊숙한 서랍 속에는 여전히, 조용히 ‘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다.


친구를 따라 미대입시학원에 상담을 받은 날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평가되는 그림을 그렸다.

석고상을 어떻게 그릴지 알 수 없던 나는 지우고 또 지우며 그렸다. 그래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때 타오른 작은 불씨로 2년 반의 미대 입시 후 미대에 진학할 수 있었다.

가고 싶던 화화과 대신 취업이 잘되는 시각디자인과에 갔다.

복잡한 컴퓨터 프로그램보다 좋은 디자인이라는 답을 찾는 것이 더 어려웠다.

취향을 목적으로 바꾸는 일은 풀리지 않는 수학문제 같았다. 모두가 슥슥 문제를 풀어나갈 때 나만 백지장에 알 수 없는 숫자만 썼다 지우는 기분이었다.

결국 나는 박물관학을 복수 전공하고 미술관으로 진로를 선택했다.

미술사는 알 수 없는 그림에 정답지가 나와있는 느낌이었다. 명쾌했다.


미술관에서 교육프로그램을 제작하고 교재를 만드는 일은 정말 재미있었다. 작가와 관람객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일은 멋있고 보람도 있었다.

하지만 주 4일 9시부터 6시까지 일하고 한 달에 내가 받는 돈은 60만 원이었다.

유기계약직.

그나마 일을 계속하는 무기계약직이 되기 위해서는 대학원에 가야 했다. 그리고 나는 그때 가난할 수밖에 없는 직업을 가진 남자와 결혼을 했다.

현실적 문제 앞에 나온 질문에


“이렇게 적은 돈을 벌 거라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걸 하자.”


답을 내렸다.

미술관 에듀케이터라는 멋진 직업보다 그림책 작가라는 이름이 내 안에 더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그려보기로 했다.

잘하진 않더라도.

그림책이 꼭 아이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에.

그 매력이 내 안에 깊이 피어 있었기 때문에.


그림으로,

나를 생각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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